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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누가 기록해야 하는가?

모두가 기록자가 될 수 있는 시대

by 노고록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것을 우리는 흔히 마을지, 향토지라고 한다.

도서관 향토자료실에나 가면 볼 수 있는 재미없을 것 같은 책 1번이다. 책은 두껍고, 책표지는 어두운 색으로 좀 고리타분하게 돼 있어서 여간해서는 손이 가지 않는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볼 일이 없는 장식품이다. 그러나 마을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가장 애타게 찾는 도서가 되었다.


" 향토지에 나오겠지.." 마을을 방문하다가 궁금한 게 있을 때 하는 생각이다. 그때까지는 당연히 모든 마을에는 향토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마을을 공부하다 뭐가 궁금하면 도서관을 찾았다. 답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마을지는 있는 마을보다는 없는 마을이 더 많았다. 그때 그 이유가 많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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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는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는 마을지, 향토지를 편찬하는 마을이 많이 생겼다.

풀뿌리 자치를 하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우리 마을이 언제, 왜 생겼는지가 궁금했고, 혹시 모를 우리 마을 출신의 유명인사나 숨겨진 비밀이 있을지도 궁금했다.

마을에서는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기록함으로써 주민들의 자부심과 일체감을 일깨워주고 마을의 정체성을 정립해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어느 마을이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매년 마을들이 돌아가면서 마치 윤번제이듯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추진하는 과정은 마을마다 제각기다. 어떤 마을은 출향인사를 포함한 수십 명으로 편찬위원회를 꾸리고 성대한 출범식을 하면서 마을에서 직접 집필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경우는 마을에 여기저기 현수막이 내 걸린다. 마을의 자료와 기억을 공개적으로 수집하는 과정이다.

어떤 마을은 이 작업을 이장과 몇 사람의 유지만이 알고 있는 마을도 있다. 일반 주민들은 모른다. 마을에서 자칭 마을의 역사를 꾀고 있다는 유지분이 전담하거나, 아예 외부에 위탁을 하는 경우다. 방법은 마을마다의 현실에 따른 선택이고, 반드시 이래야 맞다는 원칙은 없다. 마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을 기록하는 게 정확할지, 마을을 모르는 외부인이 조사를 하면서 사적인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공정하게 기록하는 게 정확할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 우리 마을에 대해서 뭐를 알안 역사를 쓰젠 햄쑤과?"

마을지 제작에 대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인터뷰를 요청하면 불쾌하다는 듯이 툭 던지는 말투다. 마을지를 만드는 작업에 대해서 모르거나, 현재 마을에 대해서 조금은 불만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다, 그게 맞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마을을 모르는 사람이 일일이 인터뷰를 하면서 남의 마을의 역사를 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단은 그 마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기에 일단은 주제를 모으는데 한계가 분명히 있다. 아니면 이미 다른 마을지를 만든 경험으로 주제를 보편화해서 사용하는 오류를 범할지도 모른다. 분명히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마을의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마을 하고는 비교적 자유롭다. 냉정하고 공정한 시선으로 사실을 찾아서 기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종종 마을에서 어렵게 원고를 다 만들어 놓고 출판이 지연되는 마을도 있다. 대부분 사실관계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각자의 주장만을 카더라로 얘기하고, 이를 뒷받침해 주는 문서나 서류는 없다. 이때는 진실게임이 된다. 어떤 마을은 수년째 편집작업을 하다가 중단하다가 쉬다가 다시 하는 마을도 있다. 조상 대대로 집안 물림으로 내려온 묵은 감정이나 관계를 몇 줄의 글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내부집필을 하는 경우,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마을 구석구석을 알고, 조상들이 살아온 과정을 일일이 꾀고 있기에 집필하는데 좀 수월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는 게 병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알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검증 없이 각자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서술해 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다툼이 생길 여지다. 이렇듯 마을과 사람에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람들이 글을 쓰려니 힘이 들 수도 있고, 객관적으로 쓴다지만 다른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고 볼 수도 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의심하는 경우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원고의 최종 검수는 마을에서 하는 것이니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는 하다. 대립 끝에 결론이 안 나면 아예 그 부분을 들어내거나, 이미 배부된 책을 회수하고, 출판을 중단해버리기도 한다. 하여튼 이미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면서 다시 기록한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일이다.




해방 이전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1930년대 이전에 출생한 사람 정도다. 해방되는 해, 15살을 넘은 나이였으니 학교생활도 했을 것이고, 어른들의 심부름도 했을 것이다. 보고 배운 게 있어서 많은 것을 알고 기억할 수 있는 나이 때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제주 최대 비극인 4·3은 그보다는 몇 년 후에 출생한 어른들까지도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1930년대 출생했으면 지금 나잇대가 90대 중반을 넘었다. 1940년대 출생했으면 80대 중반을 넘는다. 아무리 생활수준이나 좋아지고, 의료기술이 좋아져서 평균수명이 늘었다 하지만 80~90살의 중반을 넘는 나이에 기억이 온전한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아픈 기억은 잊히지 않고 지금도 생생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쉬 털어놓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만 아프면 된다고, 나만 알고 가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최근 마을에서 마을지 편찬을 서두르는지도 모르겠다. 더 늦기 전에 그분들의 기억들을 모아보자는 노력이다. 편집은 후에 하더라도 이분들의 기억을 모아두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시의성이 적절하다.



연구자들은 보통 많은 사례에서 공통된 이론을 뽑아내려는 일반화의 노력을 많이 한다. 그렇지 않다면 비슷한 것끼리 묶어내는 그룹화라도 한다. 그래서 세상사는 것은 모두 비슷비슷하다는 결론을 만들어낸다. 물론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 근본을 찾아보면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과 모습은 저마다의 특징과 지역과 연계한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마을기록이다. 그러기에 그 내용은 마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음은 확실하다. 마을기록은 마을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다.


그러나 마을에는 그들의 얘기를 뒷받침해 줄 객관적인 자료들이 없는 곳이 많다. 문서도 없고, 기록도 없고, 자료도 없다. 설령 있더라도 관리를 하지 않고, 오래된 캐비닛에 박아두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객관적인 자료가 없으면 서로가 맞다고 주장하는 선에서 진실게임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 간혹 마을에 남아있는 호적중초나 호구단자, 고문서들이 그 마을을 기록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도 마을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행정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행정체제가 잡히면서 만들어진 행정의 공문서들이다. 이 자료들은 행정이 전산화되면서 대부분 문서고로 이관되어 있어서 민간에서 열람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자료 들은 마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뒷받침해 줄 수 있거나 견해차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자료들이다. 마을기록에 필수적인 자료임에도 행정의 무관심으로 그리 많이 활용되고 있지 않아서 아쉽다.



우리는 조선 시대의 역사적 사실은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다. '사초'라는 공식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해석은 달라질 수 있어도, 사실관계를 왜곡할 수는 없다. 사관이라는 전문가가 기록을 맡았기에 공정성도 보장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누구나 쉽게 기록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갖춰졌다. 굳이 문자로 어렵게 정리하지 않아도, 영상과 녹음만으로도 충분히 기록이 가능하다.


오늘 집으로 가는 길, 항상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로 마을을 기록해 보자. 셔터를 누르는 횟수만큼 마을은 기록된다. 오늘 내가 한 잠깐의 노력이, 훗날 우리 마을을 기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이제 마을은, 우리가 직접 기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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