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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불출이 되어 나타난 선배

캐나다 이민살이 선배, 세계 어디를 가나 부모는 부모다

by 노고록

자식 자랑, 아내 자랑을 하면 팔불출이라고 한다. 근엄하고 겸손하던 조상님들의 이야기다.

요새는 차라리 팔불출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낯선 이국에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2시간여를 이야기 속에 빠져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섰다. 뒤끝이 있는 듯, 묘한 여운이 계속 남는다. "이런 사회도 있었구나" 하는 부러움인 듯하다. 내가 젊었으면 나도 이제라도 갔을 텐데....



1년에 몇 번, 잊을만하면 카톡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퇴직한 옛 직장 동료다. 첫 근무지에서 만난 사람으로 나와 1년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당시 초보 직장인인 나에게는 대단한 선배였다. 내가 입사하고 첫 상신에서 결재판이 날아가던 날, 그 결재판을 주워주면서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던 사람이기에 여전히 내 머릿속을 맴도는 사람이기도 하다.


카투사에서 군복무를 한 그 선배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다. 스마트하고 명쾌한 모습에 당시 직장에서도 여러모로 꽤 능력 있는 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사고방식과 행동은 우리와 조금은 달라서 어색하기도 했었다.

몇 년간 같이 근무하다가 이른 나이에 자회사 분리를 하면서 전직을 하고 얼마 없어서 퇴직했다. 해외 이주라는 뜻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말 가족들은 데리고 항상 노래를 부르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이민 간 지 18년이 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마 족히 20년은 된 듯하다.


지금은 캐나다 캘거리에서 살고 있다.

이민간 것을 후회는 하지않고 잘 살고 있느냐는 상투적인 첫인사에, "좋쑤다"라는 의외로 간단명료한 대답을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대기업 부장에, 아내는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라 꽤 안정적이었다. 그러한 경력이 인정이 안 되는 낯선 곳 타국에서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피자 배달, 마트 종업원 등 흔히들 이민 간 사람들이 많이 하는 허드렛일로 시작했다. 말 그대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생활도 문제였지만 자녀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고 한다. 일단 학교 시스템을 모르기 때문에 교사 출신의 부모라지만 직접적인 조언을 해줄 수가 없었고, 경제적으로 힘들다 보니까 자녀들이 편하게 학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할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것은 한국적 감성이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좋쑤다.."는 낯선 환경에서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성공적으로 제 갈 길을 찾아 나섰고, 그러기에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본인들보다는 자녀들 관점에서 이민을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의미였다.



IT 연구원이 된 딸은 억대의 연봉을 받고 있는데, 5년 정도있다가 미국에 백만 달러(13~14억) 연봉을 받을 연구소로 이직할 예정이라고 했다. 둘째는 약사로 억대의 연봉을 받는데, 공부를 더 해서 의사를 해볼지 고민 중이다. 막내만 아직 대학원에서 수학을 공부하는 중이다. 문제는 아직도 자녀들이 결혼할 기미가 없어서 언제 손자를 볼 수 있을는지 걱정이 된다는 투털이다.


3명의 자녀가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기간이 총 27년인데, 그 기간 자녀들에게 1원 한 푼도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 적이 없다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 이게 가능한지가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도 여러 가지 학문을 전공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한국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만약 본인이 한국에 있었으면 애들을 그렇게 뒷바라지는 못 했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1원도 보태주지 않았도 된다는 부모의 처지가 아니라,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제한 없이 할 수 있다는 사회제도가 의심스러웠고 부러웠다.

동년배 자녀들을 두고 있고, 자녀 교육에 진심인 나에게는 거의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에 비하면 거기 학생들은 공부를 안 합니다. 여기같이 공부하면 모두 장학생이라 마씸.."

장학금의 액수가 엄청 크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학교 등록금만 주는 수준이 아닌 생활비와 교재비를 하고도 남을 정도로 넉넉하게 장학금을 준다고 했다. 대학교 때 받은 장학금이 남아서 대학원을 갈 때 보탰다고 할 정도다. 그러니 장학생만 되면 공부하는 데 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다는 얘기다. 대학원 과정은 대학과 정부에서 지원이 되니 공부할 생각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만약 장학금을 못 받더라도, 학생 본인 이름으로 금융기관에서 직접 대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부모가 아닌 학생 이름으로 직접 대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갚은 조건일 뿐 다른 것은 없다고 했다. 대학원까지도 가능하고, 햇수 제한도 없다. 최근 우리나라도 한국장학재단 등에서 학자금이나 생활비 대출이 있기는 한데 무척 제한적이고 조건도 까다롭다. 물론 금액도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은 언제라도 전공을 넘나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의 유연성이다. 첫째는 의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2지망인 BIOLOGY로 합격을 해서 1년 정도를 다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해서 수학으로 바꿨다고 했다. 둘째도 약사를 하고 있는데, 몇 가지 과목을 추가로 이수하면 의사를 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놀라웠던 것은 첫째가 의대에 떨어진 이유다. 내신이 워낙 98점으로 최우수였고 에세이도 많은 대회서 수상을 했을 정도다. 자신 있게 의대에 지원했는데 낙방해서 당황했는데, 이유가 놀라웠다. 대학에서 에세이 내용을 보니까 의사로서 적합하지 않은 인성을 보였다는 게 낙방의 이유라고 했다. "그것까지 본다고..". 사실 첫째에게는 남다른 경쟁심이 있고, 뭐든 이기려는 경향이 좀 강한 전형적인 한국 학생이라고 하면서 웃어넘겼다. 그게 의사로서의 인성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슷한 연배로 비슷한 연령대 자녀 셋을 두고 있는 사이라 그런지 우리는 꽤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는 비슷한데 과정이 너무나 다른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많이 놀라기도 했다.

"난, 여기서는 도저히 그렇게 못 했을 것 같쑤다.. 제주에서 2명의 자녀를 서울에 대학교를 보낸다는 것은 웬만한 가정에서는 불가능하덴 허던데, 3명씩이다.... "다소 놀랍고, 안쓰러워하는 눈치다.


선배의 자녀들은 낯선 환경에서 그 시스템에 맞게 부모의 도움 없이 대학교부터 공부하고, 제 갈 길을 찾아갔다. 거기서는 애들이 성인이 되면 부모의 도움을 바라지도 않고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녀들이 자기의 책임으로 자기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이기에 부모들의 간섭은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부모가 자녀들이 대학생이 되건, 직장을 다니건, 결혼생활을 하건 경제적인 지원을 주고받는 경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경제적인 지원의 대가로 부모들은 자녀들을 통제하려 하고, 노후에는 기대는 경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 두 가지 현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지원은 받고 싶으나, 통제는 받고 싶지 않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요즘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자주 발생한다.


예전 직장을 같이 다닐 때도 성격이 유난히 개방적이었고, 서구적이었던 사람이었다. 다소 자유분방했던 그 선배의 성격이 카투사에 근무하면서 미군들과의 생활에서 익힌 사고방식일 거라고 우리는 추정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캐나다에 이민을 가려 했었고, 그곳에서도 그런 사고방식을 쉽게 익혀서 적응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자녀들의 성공을 도왔고, 오늘 이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하는 말의 중심은 자식들의 얘기다. 결혼했는지, 직장은 어디를 다니는지, 용돈은 많이 주는지 등의 얘기들이다. 사위가 며느리가 예약을 해버리니 할 수 없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적 정서에서나 오갈 수 있는 얘기다. 그것들이 요즘은 자칫 기댐과 간섭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오죽하면 사람인(人)은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라는 데서 서로 기대는 모습을 따서 만들었다고 하겠는가?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같이 사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피를 나눈 가장 가까운 관계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부모는 자식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어 한다.

자식도 그런 부모와 함께 할 수 있고, 부모에게 자랑거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은 부모들의 삶에 가치를 주는 것이다.


부모는 항상 팔불출이 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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