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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이 너무나 당당한 사회

우리 사회는 제대로 가고 있는지?

by 노고록

항상 만원인 아파트 주차장, 주차 때문에 상상도 못 할 온갖 일들이 다 벌어진다.

거의 1,000세대가 사는 아파트다. 입주 당시 주차장은 세대수를 넘어서 방문객까지 수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여 년 사이 우리의 교통문화는 참 많이 변했다. 세대당 한대가 아니라 세대원 수만큼 차량이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저녁 퇴근시간, 조금이라도 늦으면 내가 세울 주차장은 없다.

빈칸을 찾아 아파트의 모든 주차장을 찾아다녀야 한다. 예전에는 아파트 근처 노상주차장도 있었으나, 별로 사람도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인도를 만들고 가로수를 심어버렸다. 할 수 없이 아파트 내 빈 곳이라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개구리 주차를 하고 이중, 삼중주차를 해버린다.


때문에 난리인 것은 아침 이른 시간이다. 빈 공간마다 세워 놓은 차들 때문에 아침 출근 시간은 전쟁이다. 차들 간 교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좌, 우회전시 차가 오는지 가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경비 아저씨들이 부지런히 교통정리를 하지만 앞선 정리가 안되기 때문에 서로가 뒤범벅이다.


밤늦은 시간 주차할 곳이 없어서, 더 이상이 이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을 하고 이중, 삼중, 개구리 주차를 할 수밖에 없음을 백번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아침 일찍 다른 사람들의 차가 이동할 시간이 되기 전에 차를 이동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예의다. 그러나 오후 늦은 시간까지 거의 길 가운데 차가 버젓이 세워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차 앞 운전석창에는 "차를 이동시켜 달라"는 경비들의 메모가 놓여있다. 다들 소용없는 일이다. 언젠가 경비들한테 부탁한 적도 있다. "낮시간 텅텅 비어 있는 주차장으로 차를 이동시킬 수 있도록 차주에게 전화를 해달라"라고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왜, 경비가 차를 옮기라 말라 얘기를 하느냐"는 반박을 한다는 얘기다.

그 말을 듣고서는 입주민으로서 갑자기 부끄럽고 창피함을 느껴서 더 이상의 얘기를 할 수 없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남이 불편하든 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극강의 개인주의 소유의식을 느꼈다. 불편하면 당신이 하든지, 돌아가든지 하라는 생각이다. "아쉬우면 너네가 직접 뛰든지..."라고 했던 어느 축구선수가 일화가 떠올랐다. 그게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그 세대들의 공통된 생각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여 년 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을 했었다.

지금도 아파트 곳곳에는 나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러기에 가끔씩 마주치는 아파트의 지금 모습은 내게 좀 다르게 다가온다. 혹시나 내가 회장을 할 때 조금 부족한 결과가 지금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보이지 않는 죄책감이다. 아파트의 입주자들이 2020년을 전후로 대폭 바뀌었다. 아마도 20년 전 우리의 세대인 것 같다. 30~40대 정도로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었기에 아파트를 보는 주민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진 듯하다. 그러기에 그냥 그렇게 무심하게 살아가는 아파트의 일상이다.



오늘은 비교적 아침 이른 시간에 차를 움직일 일이 생겼다.

어제는 지하주차장에 모처럼 칸막이가 된 개별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행운이다. 아침 일찍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으나 내차가 보이지 않았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면 칸막이 주차장이 한눈에 보이는 구조다. 그러니 척 보면 착 눈에 들어와야 하는데 내차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가운데 주차장을 넘으니 낯선 모습으로 주차한 차가 있었다. 개별 주차장 앞을 정면으로 막고 이중주차를 하고 있는 차였다. "누가 이런 주차를 하지.." 잔뜩 호기심과 화난 기분으로 차 뒤를 넘겨보니 그 뒤에는 내차가 있었다. 앞에서 내 차가 안 보일 정도로 정확히 개별주차장을 완벽하게 막고 있었다. 가끔 뉴스에 나오던 원한이 있는 사람들의 차를 막는 주차장의 모습 그 현장이었다. "미쳤나?" 혼잣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unnamed.jpg 이 황당한 모습.. Gemini가 수정한 이미지(20205.11.08), 가로막은 차가 좀 큰 차로 칸 전체를 막고 있었다.


황당할 정도의 주차 모습, 이건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내차가 못 나가도록 정면을 막아버린 그런 것으로 밖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주차였다. 도대체 정상인의 주차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차를 보니 내가 아는 차는 아니었다. 다행히 전면에 연락처가 있어서 전화를 했다. 아침시간이고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 언성을 높일 수도 없는 일이다.

"xxxx 번 차주 님이시죠? 차 좀 빼주세요.." 하고 나지막하게 얘기를 했더니 걸걸한 목소리로 남자가 "네"라고 얘기했다. 그래도 오면 미안하다고 겸언쩍어 하면서 차를 빼겠지 하는 나만의 생각이 잠시 잠겼다. 그리고 몇 분 후 차문을 여는 전자키 소리가 삑삑 울렸다. 이윽고 중년이 넘은 남자가 와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차문을 열고 "쌩" 나가버렸다. 내가 차옆에 있는 것을 보면서도 말이다. 닭 쫓던 게 지붕 쳐다보는 격이다. 그냥 아무 일없이 정상주차 했다가 나가는 모습 너무나 당당함이었다. 차에도 안 들어가고 인사라도 하면 받아야 한다는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따라가면서 사과를 받을 수도 없는 일이다.


아니 그렇게 정면으로 차를 막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런 감정은 덜했을 것 같다. 사실 그 차주가 나오는 몇 분 동안 생각이 복잡했다. "왜! 이렇게 차를 세웠냐고, 나하고 무슨 감정이 있느냐고.." 한번 들어보고 싶은 아주 불쾌한 심정이었는데, 그런 기회도 없이, 미안한 표현도 없이 아주 무시를 당했다는 기분에 허탈 그 이상이었다.


" 참, 세상이 가관이네.." 허탈, 분노에 찝찝한 마음은 혼자 삭일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나이도 꽤 있는 중년 이상의 사람, 세상의 도리를 아는 나이가 됐을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입틀막이 되어가고 있다. 어른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예전 동네에서 나쁜 일을 하다가도 동네 어른이 지나가면 안 하는 척 숨겼던 적이 있다. 지적을 받을까 봐 겁이 나서다. 당연히 동네 어른들도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지적을 했고, 우리들도 그 지적을 부끄러워했다.

부모님들도 이런 간섭을 해주고 올바르게 살도록 얘기를 해주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게 우리 세대는 사회라는 또 하나의 학교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와 예의를 배우면서 자랐고, 그것을 토대로 살고 있다.

부모님들이 항상 당부하던 가르침의 끝은 "남 부끄럽지 않게 살라는 것이었다"


반칙이 너무나 당당한 사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어감에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아픔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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