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찾아나선 버스여행, 낭만이 없다
아주 오래전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 달에 두어 번. 강의가 일찍 끝나는 날에는 어김없이 당시 일주도로를 달리는 시외버스를 타곤 했다. 일종의 주말 버스여행인 셈이다.
성산포를 지나 동으로 가든, 한림읍을 통과해서 서쪽으로 가든 서귀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2시간 하고도 40분여를 달려야 한다. 말 그대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 한라산을 횡단해서 서귀포로 가는 시간보다 배이상이 소요된다. 시간을 다투는 사람,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하는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나는 버스를 타면 풀풀 새어 나오는 휘발유 냄새가 좋았다. 우당탕탕 달리던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노래를 들으면서 차장에 기대어 밖을 무심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한 주일을 힘들게 보낸 나에게 주는 나만의 힐링 방법이기도 했다.
매표소, 조그만 구멍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종이로 된 버스표를 구매하던 시절, 그 옆 구멍가게에서 꼭 스포츠신문을 한 장을 산다. 당시 매표소 옆에는 대부분 가판신문을 팔았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신문을 펼쳐드는 것은 일종의 여유이기도 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최대 관심사인 어제 경기결과를 알려면 오늘 아침에 나온 조간인 스포츠신문을 봐야 한다. 처음에는 일간스포츠가 유일했으나, 나중에는 스포츠 서울이라는 신문이 생겼다. 스포츠서울이라는 신문이 생기고서는 주로 이 신문을 샀다. 활자가 보기에 좀 편했던 기억이다.
차에 오르고 출발하기 전까지 신문을 본다. 볼 내용이 많지 않기에 출발하기까지 10분여면 신문은 이미 완독 한 상태다. 신문을 구깃구깃 앞에 집어넣으면 차가 달리는 3시간 동안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차창밖을 보면서 멍 때리는 일과 버스를 오르내리는 삼촌들을 구경하는 일이 전부다.
그 시절 버스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사람이 이동을 하든, 짐을 나르던 교통수단은 버스가 전부인 시절, 그래서 버스기사의 힘은 막강했다. 가끔 아는 분이 운전하는 버스가 걸리는 날이 있다. 그냥 슬쩍 타라고 손짓을 한다. 이미 버스표를 구입한 경우는 매표소에서 환불해다 주기도 한다. 운수 좋은 날이다.
2~3시간 동안 제주도를 반바퀴 도는 동안, 버스 안은 사람과 짐들이 범벅이 되는 체험 삶의 현장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단막극처럼 펼쳐진다.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는 사람, 밭에서 일을 하고는 포대에 짐을 지고 오르는 사람, 학교 다녀오는 학생, 옆동네 오일장을 다녀오는 사람들 짐반 사람반이다. 이쯤 되면 버스 안은 왁자지껄이다. 한 사람 건너 얘기는 수신불가다. 이때쯤은 혼자 하는 여행이라기보다는 동네 사거리나 시장통에 놀러 온 사람의 모습으로 생각을 바꿔야 견딜 수 있다.
그렇게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2~3시간은 금방이다. 버스를 내리는 시간, 지루하지 않게 조금 긴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보고 극장문을 나서는 기분이다.
추억을 찾아나선 시외버스여행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그때같이 이유 없이 버스를 탄 건 한 40년 만인 것 같다. 세상이 바뀌듯 버스를 둘러싼 환경도 많이 변해있었다.
일단 버스표가 필요 없었다. 행선지를 미리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 가다 싫으면 내리면 그만이다. 타면서 카드를 쭉 내밀고 단말기에 접촉을 하면 끝이다. 승객이 어디를 갈 건지, 요금이 얼마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없는 기사님은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한다.
지금까지 버스요금을 계속내면서 다녔으니 이젠 버스요금을 안내도 된다고 한다. 얼마 전 발급받은 교통복지카드를 오늘 처음으로 사용을 해보는 날이다. 버스는 상상외로 만원이다. 자가용이 북적거리는 시대 왜 대중교통인 버스가 만원인지 모르겠다. 의외의 결과다. 저 멀리 뒷자리에 비어있는 한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비틀거리면서 가서 앉았다.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에 동석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색하다. 살짝 눈치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실 그 자리는 아무나 앉으면 되는데 우리네 감정이 그렇지 앉다. 마치 전세방에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들어가는 기분이다.
버스는 정적이 흐를 정도로 조용하다.
예전 시외버스는 흥겨운 달리는 음악다방이었는데 영업을 멈춘 지 오랜 모양이다. 라디오 소리도 나지 않는다. 쥐 죽은 듯 정적만이 흐른다. 마치 학교 다니던 시절 자습시간 같다. 떠드는 사람을 잡아낼 분위기다. 버스 안 40여 명의 사람들 중에는 책 읽는 사람이 한둘 있고 신문을 펼쳐두고 조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옆사람하고 얘기를 하는 승객도 없다. 모두 60도로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만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따금씩 정적을 타고 들리는 목소리는 낯설다. 언어가 다르다. 요즘 버스의 주 이용객은 중국인 관광객이라고 한다. 휴대폰에 의지한 체 버스를 타고 관광을 한다고 한다. 내리는 지점을 찾기 위해서 그들끼리 하는 대화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다.
예전 달리는 버스 창문을 열고 밖의 시원한 공기를 맞는 기분 역시 버스여행의 즐거움이었다.
창문을 열어서 머리를 내밀고 손짓을 하는 모습이 광고영상으로 나올 만큼 시그니쳐 장면이기도 했다. 문을 열고 닫는 일과 커튼 때문에 가끔은 앞뒷자리 승객과 싱거운 말다툼을 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도 큰 통창으로 차창밖 시원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음에 그런 좌석을 차지하는 것은 좌석 선택의 중요한 포인트였다.
정적만이 흐르는 버스 안, 버스 창문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안전을 위해서 그런지 창문은 상하 두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아래칸은 다시 작게 2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문을 열 필요도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커튼도 없었다. 늦은 오후 부서지는 햇빛은 얼굴로 직접 맞이해야 했다. 버스에 냉난방이 빵빵하니 굳이 자연풍을 맞기 위해서 문을 열 필요가 없다는 신호인 것 같았다.
버스를 탈 때 내가 선호하는 자리는 기사님 바로뒤 1번 자리다.
혼자 가는 길 시원한 차창밖 풍경을 전면으로 맞으면서 갈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기사님을 만나면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자리다.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기에 당당히 앉는다.
오랜만에 타는 버스, 1번 자리의 낭만과 특권은 없었다. 그 자리는 버스 정면으로 다가오는 풍광을 아무런 장애물이 없이 파노라마처럼 직접 맞이할 수 있기에 버스좌석 1번이다. 그러나 변해버린 버스 안, 운전석과 1번 자리 사이에는 마치 철책 같은 장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탁트였던 자리가 꽉 막힌 공포의 공간이 돼있었다. 굳이 번호를 붙인다면 예비석 정도다. 운전석 주위에는 여러 개의 기둥이 있었고, 그 기둥에는 전자장비가 부착되어 있었다. 마치 버스 안에 탄 사람들을 감시하는 센서를 보는 기분이다. 그 센서는 오늘 내가 이 버스 안에 있었던 것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추억을 더듬을 수 없는 버스, 그나마 간직하고 있는 추억을 더 이상 뺏기고 싶지 않았다.
애월을 벗어나기 전 하차를 했다. 수십 년 만에 달려본 길, 익숙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로도 차창밖 모습도 달랐고, 차 안의 모습과 분위기도 익숙하기보다는 아주 낯선 이국여행처럼 느껴졌다.
인간들의 무분별함이 덜컹거리는 버스 안의 낭만을 통제와 관리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버스는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행하면 되는 하나의 운송수단이다.
운송의 객체인 사람을 아무런 손상 없이 최대한 빨리 목적지까지 배달해 주면 되는 택배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