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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r 16. 2024

제주에서 누구나 3일간은 주인공이었다.

조카 결혼식을 보고 오는 길



조카 결혼식장을 다녀오는 길이다. 결혼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다.

요즘 결혼식은 예전하고는 아주 다르다. 기존의 틀을 많이 깨면서 당사자들이 편한 방식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낸다. 결혼식과 피로연을 같이 호텔이나 웨딩홀에서 한다. 결혼식은 대부분 오전에 치러지는 까닭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참석하는 경우도 흔치는 않다.




오늘 결혼하는 조카는 신부다. 사촌 처형의 딸이다. 신랑은 경상도 사람이라고 한다. 신랑이 제주에서 근무하던 중에 만나서 연을 맺고 오늘 결혼식을 한다.


제주와 육지(본토)사람이 만나서 결혼하는 경우는 난감한 일이 많다. 먼저는 결혼풍습의 차이다. 제주와 육지부의 결혼 풍습의 차이는 크다. 다음은 어디서 결혼식을 하느냐의 문제이고, 그에 따른 상대방 가족의 이동 문제다. 또한 한쪽에서만 결혼식을 하기에 결혼식을 하지 못한 곳에서의 피로연을 해야 할지의 문제도 생긴다. 


나도 오래전 여동생 결혼식을 주관하다가 결혼식장비용을 신부 측에서도 50%를 부담하라는 요구에 당황한 적이 있다. 당시 제주에서는 예식장비용은 모두 신랑 측에서 부담했기 때문이다. 제주와 육지 사람이 결혼하는 경우 그 디테일로 들어갔을 때 비용과 절차 등에서 더 복잡한 문제에 많이 생긴다. 서로가 편한 데로 쉽게, 형편에 맞추면서 할수 밖에 없다.



오늘은 신랑 측에서 결혼식을 서두르는 바람에 아마 제주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모양이다. 일단은 급한 쪽에서 양보하고 들어가야 하니 말이다. 신랑 측에서는 20여 명이 넘는 친족들이 식장에 참석했다. 요즘 주말에 제주로의 비행기편은 예약도 어렵지만 요금도 비싸다. 또 혹시나 하는 걱정에 대부분 전날 제주로 와서 숙박한다. 이 비용만 하더라도 적지 않는 부담이다.


오늘 결혼식장은 호텔 연회장이다. 주례도 없이 사회자가 성혼 성언문을 낭독하고, 신랑 아버지의 짧은 주례사, 신랑의 축가로 30분 만에 결혼식은 끝이 났다. 내가 하던 결혼식과 같은 모든 순서를 밟은 듯하나 뭔가 빠진, 조금은 가벼운 느낌이다. 피로연은 4시면 끝나기에 두 사람의 일생일대의 최대 축제는 이렇게 간단히 마무리가 된다.


나는 1990년에 좀 늦은 결혼을 했다. 당시만 해도 결혼식은 예식장에서, 피로연은 대부분 집에서 힐 때다.  나는 아파트에 살지만 주차장에 천막을 쳐놓고, 앞집과 위층을 빌어서 3일간의 일생 일대의 나만의 잔치를 잘 치렀다.

 

제주에서 결혼은 돼지 잡는 날, 가문잔칫날, 잔칫날해서 3일간이다.

결혼식 D-2일은 돼지를 추렴하는 날이다. 잔칫날 사람들이 먹을 돼지고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돼지를 직접 도살하고 잡는 것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동원된다. 축하객들의 수를 고려하여 돼지를 몇 마리 잡을지를 결정한다. 최소 1마리부터 3~4마리까지 잡아야 하는 집도 있다. 이때부터 잔치는 시작된다. 집 마당이나 공터에 천막을 치고 가마솥을 앉혀서 음식을 만들고 온 동네가 시끌벅적 이다.


밤새 이어지는 잔치는 다음 날 본격적으로 손님을 받는 가문 잔칫날로 이어진다. 제주에서의 잔치는 가문 잔칫날, 즉 결혼식 전달이 최대의 대목이다. 흔히들 먹는 날이라고 한다. 가장 많은 손님들이 왕래하고, 축하객들도 대부분 이날 방문을 한다. 저녁 시간 신랑과 친구들은 신붓집을 방문하여 내일 있을 결혼식 일정은 협의하고, 결혼식이 잘 준비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결혼식 당일은 신랑, 신부 양가 댁의 조용한 잔치다. 이날은 외부 손님들이 가급적 방문을 하지 않는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신붓집에 간다. 이때 함이 들어간다. 육지부하고는 다르다. 신랑은 신붓집에서 최대로 차린 한 상 대접을 받고 신부를 데려서 결혼식장으로 간다. 결혼식을 치르고 나면 인근 관광지로 드라이브를 나가서 신랑 신부 친구들과 같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드라이브하고 신랑집으로 돌아오면 양가 식구들이 모여서 인사를 함으로서 공식적인 결혼식은 종료가 된다.


이후부터는 신랑, 신부 친구들만의 시간이다. 흔히들 나이트클럽에 가서 신나게 즐긴다. 이때 신랑과 신부 측 친구들이 인사를 하고 즐기다 보면 다음 커플로 맺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제주에서의 결혼식은 당사자만을 위한 3일간의 준비된 축제다.

하루는 축제를 준비하고, 하루는 가문의 사람들이 즐기고, 하루는 신랑, 신부와 그 친구들이 즐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누구나 한번은 온전히 주인공이 될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그러기에 제주의 잔치는 신랑, 신부를 위한 축제다.           


요즘은 제주에서도 결혼식을 간단히, 편하게라는 생각으로 호텔이나 웨딩홀에서 모든 절차를 일사천리로 끝낸다. 굉장히 사무적이고 일시적인 이벤트가 되었다. 형식적인 절차를 마치기 위한 과정이다. 그렇다고 비용이 저렴한가? 아니다 몇 배가 더 든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길이다. 

제주에서는 잔치 먹으러 간다고 했었다. 

3일간 거나하게 먹고, 축하하고 즐길 수 있었던 1990년 12월 나만의 축제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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