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익숙함, 올레 7코스에 두고 온 반세기

아들과 아내와 함께 걸었던 올레 7코스

by 노고록

기대반 걱정반으로 길을 나섰다.

기대는 아내와 아들이 동행한다는 것이요, 걱정은 13km나 되는 긴 구간을 아내가 무사히 걸을 수 있는지 하는 걱정이었다.



2년 전 아들이 입대하기 전 아들과 둘이서 함께 걸었던 올레길이 두고두고 추억에 남았다.

특별한 일이 있거나 재미있는 여정도 아니었다. 남자 둘이 걸으면서 무슨 다정 다감한 일이 있겠는가마는, 긴 여정을 함께했다는 전우애가 생겼는지 아들과 나는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는 동료애가 생겼다. 그 후 틈만 나면 다시 걸어보자고 약속을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어왔다. 아들이 복학을 위해서 떠나기 전 치러야 한다는 데드라인을 설정하니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아내도 동행하기로 했다. 아내는 걷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과 내가 같이 간다니까 분위기를 놓칠 수 없기에 같이 가기로 했다. 아들은 엄마와의 동행길이 무척이나 신나는 모양이다. 엄마가 어렵지 않게 함께 걸을 수 있는 짧고 쉬운 코스를 찾아야 한다고 며칠을 끙끙거렸다. 올레길은 대부분 10km를 상회하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오름이 포함되어 있기에 가벼이 나설 수 있는 동네 산책코스는 아니다.


군데군데 나의 어릴 적 추억이 묻어 있는 올레 7코스를 선택하다.


2년 전, 우리는 서귀포 동쪽인 6코스를 걸었기에, 이번에는 반대쪽인 7코스를 살펴보기로 했다. 코스가 13km로 긴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일단 모든 올레꾼들이 추천하는 아름다운 코스 1번이다. 오름이 없어서 코스 난이도가 전체적으로 평이하다고도 했다. 코스 주변이 주거지역과 멀지 않은 곳이라 언제든지 탈출을 할 수도 있었다. 코스 주변도 부분으로 나마 내가 한 번쯤은 다녀온 곳들이라 익숙하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가족이 부분적으로 걷다 말기를 반복한 미완성의 코스라는 것이다.


7코스는 서귀포 올레센터에서 월드컵경기장 까지다.


코스를 나서면 서귀포 서문로터리(6호 광장)를 지나면 '서귀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 남쪽으로는 천지연 폭포, 북쪽으로는 선반내라 불리는 연외천이 있다. 다리와 선반천 사이에는 당시 정부의 숙원사업으로 건설된 동양 최대의 고구마 가공 시설인 선일포도당 공장이 있었다. 최고높이 15m의 건물을 비롯한 공장 시설 11개 동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산업시설로 박정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68년에 준공이 되었다. 당시 국내 최대의 고구마 생산지였던 남제주군의 고구마 처리난을 해결하면서 포도당과 설탕을 만들고자 의욕적으로 추진한 산업단지다. 준공식 때는 대통령도 참석했을 정도다. 당시 이 공장은 서귀포의 랜드마크였다.


어렸을 적 이곳에는 동네에서 보기 드물게 크고 많은 건물들이 모여있어서 이 앞은 지나는 것조차 겁이 나서 멀리 돌아서 다녔었는데, 반세기가 지나 오늘 내가 찾은 이곳에 당시 그 거대함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는 소방서와 실내 게이트볼장이 보인다. 옆에는 축구장과 공원이라는 팻말도 있다. 공장 운영이 실패로 돌아 간 후, 행정에서 매입해서 서귀포를 대표하는 걸매생태공원과 축구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연외천과 어울리는 푸르름이 무척 전원적이다. 그러나 거대한 선일포도당 공장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회색빛 건물이 나의 방향 감각을 잃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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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선일포도당 공장(좌)이 2024년 축구장과 생태공원으로 바뀐 모습(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척이나 외형에 신경을 많이 쓴다. 무슨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상징이던 물리적 대상을 부순다. 일본의 잔재를 지운다며 중앙청을 부서 버렸고, 제주의 상징인 516 도로에서 군사 잔재를 없앤다고 도로명 변경을 두고 시끄럽다. 중앙청이 없어졌다고, 이름이 지워졌다고, 선일 포도당 공장이 없어졌다고 당시 아픈 역사, 어설픈 행정의 과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 눈앞에서 모습이 사라짐으로써 잊지 말아야 할 아픔을 잠시 강제로 망각시킬 뿐이다.


논밭이 사라진 상전벽해 남성리 마을입구


맞은편 남성마을로 들어서는 길, 지금은 외돌개 교차로라고 돼있다. 예전에는 논밭들과 과수원이 즐비하게 들어선 벌판이었다. 여기서 삼매봉까지는 학창 시절 소풍과 원보훈련으로 눈에 아주 익숙한 곳, 우리들의 즐거움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너무 변했다. 도로표지판이 있음에 그 길이려니 해서 따라감이지 전혀 다른 곳이 되었다. 낯선 익숙함에 고개를 자꾸 저어 보게 된다.


길 우측에는 예술의 전당, 도서관, 박물관이 들어서있다. 예전 상상도 못 하던 문화시설들이다. 위치와 주변배경에 맞는 시설들, 가끔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들어오는 길, 이쯤에 들어서면 왠지 내 고향 서귀포에도 이런 문화시설이 있음에 조금은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맞은편은 서귀포 칠십리 시공원이다. 이름이 착 달라붙지는 않는다.

공간 구성이나 시설물의 배치, 디자인 등이 공공 공원의 수준을 넘어선다. 단순히 도시공원이 아니라 서귀포의 정체성과 예술, 자연이 결합된 인문학적 공간이다. 사람이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자연공원이라고 해도 반박 댓글을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런 자연스러움이 연외천, 천지연과 어우러지고 서귀포 항의 조망권과 연결되면서 몇 번을 와도 지루하지 않은 곳이다. 크고 작은 다양한 수목들, 천연석에 새겨놓은 서귀포를 노래한 12기의 시비, 오밀조밀하게 조성해 놓은 산책길과 연못이 4만 5천 평이라는 대규모 생태문화공원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담하고 포근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공원 숲사이를 지나 몇 개의 나무를 건너면 두 개의 전망대가 나온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사이에 얼굴을 미쭉 내밀고 보는 기분이다. 천지연폭포 전경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천지연 전망대와 서귀포 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새섬 전망대다. 7코스를 찾은 이들에게 환영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곳으로 대자연속에서 자연의 호흡으로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잠시 멈춤의 공간이다.


지금은 세련된 시공원 자리로 오가는 시민들의 힐링과 휴식의 공간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던 삶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나에게 오늘 이 자리는 그 선배들이 후손들을 위해서 남겨준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숙연해짐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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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연 전망대와 새섬전망대에서 본 모습

예전에는 남성리, 지금은 남성마을을 가로질러서 삼매봉으로 간다. 남성마을은 80년대 프린스호텔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서귀포항의 가파른 절벽 위에 자리 잡은 호텔,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그 위에 빨간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철쭉 정원은 봄날 우리들의 단골 포토죤이었기도 하다.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으로 얼마 안 되는 가구가 있었는데, 몇 해 전 도시재생사업을 한다길래 놀랬던 기억이 있다. 천천히 걸어보는 길 누런 회색빛으로 사업의 잔재만 남아있고, 마을은 여전히 활기가 없다. 예전 고즈넉한 농촌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또 하나 지원진 나의 기억에 삭제키를 눌러본다.


삼매봉 팔각정, 친구의 입영전야를 떠올리며 올라가는 길


7코스 중 유일한 장벽은 삼매봉 정상이다. 그리 높지 않은 오름이다. 황우지 바닷가를 보면서 올라가는 길은 반세기전과 달라진 게 없다. 정상에 방송중계소가 있어서인지 길이 조금은 넓게, 아스팔트로 포장해 놓은 게 다를 뿐이다. 군대를 갓 제대한 아들은 묵묵히 오르막을 잘 걷는다. 단지 아내와 내가 올라가는 발걸음이 무디어졌을 뿐이다. 발걸음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내 젊음과 추억을 같이 싣고 가는 길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삼매봉 정상에는 팔각정이 있다. 국민학교시절 소풍 때는 헉헉대면서 놀라던 길이다. 80년대 초에는 서귀포 시내를 바라보면서 친구의 입영전야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거의 반세기반에 올라가는 길이다. 기대와 걱정을 가지고 올라간 길, 그 자리에는 지나간 세월이 무상하게 그날 그 밤의 팔각정이 그대로 나를 반긴다. 추억을 찾아 길 떠난 나그네의 피로를 걷어주는 기분이다. 기억 속에는 팔각정이었는데 지금 보니 이름이 남성정이다. 마을 이름에서 차용한 모양이다. 세월의 탓인지 그날 선명하게 보이던 서귀포 시내의 모습은 군데군데 자란 소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긴 세월 그 자리를 그대로 지켜준 덕에 나의 기억 속 추억하나는 그대로 남겨놓아도 될 듯하다.


20260220_124334.jpg 삼매봉 정산에 있는 팔각정, 이제는 남성정이라 한다

우리가 고향을 찾는 것은 그곳에 새겨진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함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그 장소에 내 추억의 매개체가 사라졌음을 알았을 때 우리는 허탈과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분노 버튼이 작동할 때도 있다. 이제 다시 찾아와야 할 이유는 없어지는 타향이 된다.


허르스름했지만 나름대로의 멋을 가지고 있던 '솔빛바다'는
초기 올레길의 느낌이었다.


삼매봉을 내려와서 황우지 해변으로 가는 길목에는 '솔빛바다'가 있었다. 서너 번의 변신을 하면서 장소와 콘셉트, 주인장이 바뀐 솔빛바다가 지금도 있기는 하나, 처음 그 느낌, 그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솔빛바다는 길가에 있었다. 얼른 눈에 띈다. 그냥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길가에 자리 잡은 허르스름한 가게다. 그 옆에는 우거진 소나무밭에서 나오는 솔내음과 솔빛이 가득한 노천 평상이 테이블이 있었다. 차 한잔을 사고 여기에 앉으면 솔밭사이로 황우지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 좋은 날은 서귀포항의 새섬이나 문섬까지 보이는 경우도 있다. 솔빛사이로 볼 수 있는 바다여서 솔빛바다였는지 모른다. 바다 내음을 담고 솔빛아래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2007년 올레길이 생기면서 아주 명소가 되었다. 올레길이 막 시작하던 시기 덜 세련된 투박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올레길과 닮은 곳이어서 더 친근하기도 했던 곳이다. 당시 올레 7코스 하면 솔빛바다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 후 시샘을 받은 건지 여러 가지 이유로 강제철거가 되고, 조금 아래에 규모를 갖춘 제2의 솔빛바다가 명백을 이어가는 듯했으나,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류는 원류를 흉내 낼뿐 따라잡지는 못한다.


서귀포에서 자란 이들에게 외돌개가 있는 삼매봉 잔디밭은 학창 시절 놀이터로 어린 시절 그 자체다. 삼매봉 잔디밭(동너븐덕, 무근덕)은 봄, 가을 소풍과 원보훈련의 단골 장소였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친구들과의 야유회나 결혼식 드라이브 때도 자주 찾았던 곳으로 서귀포 사람들의 영원한 뒷마당 같은 곳이다.

일제강점기 동굴진지가 있던 황우지와 선녀탕은 겁을 모르던 어린 시절 기정절벽을 타고 내려가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무르던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다. 이젠 모두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아예 내려갈 수도 없다. 내 기억 속에도 망각금지라는 팻말을 붙여야 할 듯싶다.


예전 이 길은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잡초 사이를 걸어야 하는 산등성이 소로였다. 이젠 무슨 편리를 위해서인지 산책로를 만들고 전부 나무테크를 만들어 놓았다. 흙을 밝고 나무 사이, 억새 사이를 헤치면서 걸어야 제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인데 나의 그런 낭만은 허락하지 않는다.


어릴 적 소풍 때 놀이마당이었던 잔디밭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잔디밭이었음직한 장소에는 무성하게 자란 잡초 만이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인적이 끊긴 지 꽤 오래된 듯 보인다. 보물 찾기를 하던 산담과 바위, 닭싸움을 하던 잔디밭, 도시락을 먹던 그늘자리를 찾았으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가시덤불 밭이 되었다. 추억은 이리 묻힌다.


외돌개를 지나 서귀포여고까지 가는 해안길은 처음이다. 해안 낭떠러지와 참 대조적으로 쌓은 돌담 사이 좁은 길,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길이다. 예전 과수원과 밭들이 조각조각 널려있던 이곳은 이제 아주 프라이빗한 대규모 리조트단지가 되었다. 높은 담벼락과 잘 만들어진 건물, 전기차 충전소와 인공 수영장 등 어색한 문물들이 내가 지금 올레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잊게 해 준다.


이곳의 예전 모습은 내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도로에서 해안가를 향해서 비스듬히 경사진 이곳에는 감귤 과수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감귤철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들어오는 길, 삼매봉 숲길에 막 들어서기 전에 나타나는 이 길은 내게 서귀포에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알람이었다. 파란 바다 위에 듬성듬성 던져놓은 듯한 노랗게 익은 감귤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한 수채화로 내게는 남아있다.


지금은 너무나 달라져 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프라이빗 한 리조트 단지가 되었다. 시원하게 열려있던 바다 조망은 여전한데, 노란 감귤이 익던 자리에는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과수원 방풍림이 있던 자리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든든한 담벼락이 서있다. 방풍림 사이로 넘나들면서 감귤과 자연을 숨 쉬게 했던 바람과 햇빛은 이제 흐르지 못하는 공간에 막혀있다. 이제 이 공간은 사람들을 위한 생산과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소비와 쾌락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던 공간이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누구에게만 하락되는 폐쇄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모두의 풍경이 사유화된 현장을 아쉬워하며 길을 재촉한다.

2024-.PNG 과수원을 밀어내고 삼매봉 공원옆에 들어선 대규모 리조트 단지

법환 포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태풍이 도착하는 곳이다.

1년 중 몇 번은 TV화면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곳으로 포구는 예전과 달리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포구를 지나면 강정포구를 지나서 월평포구까지가 원래 7코스였다. 그러나 그 길을 막혀있다. 두머니물 공원을 끝으로 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월드컵 경기장으로 돌아서야 한다.


에필로그, 돌아서는 길..


11시가 넘어서 나선길, 법환포구에 다다를 때쯤 오후 3시를 넘어섰다. 간식과 비상식량으로 요기를 하면서 걸었지만 이젠 배가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제주에도 낯선 문화가 들어왔다. 오후 3시가 되면 음식점들이 일제히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간다. 이 시간대에 문은 연 음식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내의 보폭과 리듬에 맞추어서 길을 걷다 보니 시간이 꽤나 지체되었다.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보니 여유롭게 좌우를 살피며 걸기도 했고, 예전 찾았을 때의 감성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아들은 무척이나 엄마를 챙기면서 엄마 보폭에 맞추어서 걷는 걸 보니 내가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우리는 법환포구에서부터 먹을거리를 찾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 아내와 함께 자리물회를 먹으러 왔던 식당을 찾았다. 그러나 운이 없게도 조금 이른 시간부터 브레이크 타임을 하고 있었다. 익숙히 않은 길 이리저리 찾았으나 쉽지는 않았다. 두 머니물레서 월드컵경기장으로 올라오는 길에서 운이 좋게 식당을 찾았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기에, 아니면 에어팟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아무런 장애물 없이 들을 수 있기에, 또는 거짓 없는 대자연과 같이 호흡할 수 있기에..


이유는 없을 때도 있고, 많을 때도 있다. 그저 혼자만의 노고록한 여유를 가질 수 있기에 좋기도 하다.


걷는 길이 혼자가 아니면 더욱 좋다.

일단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총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걷다가 다가오는 기쁨은 마주쳐서 합치니 두 배가 되기도 하지만, 힘든 것은 나눌 수 있으니 덜 아프기도 하다.


오늘은 셋이 함께 걸었다. 그것도 내가 제일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가는 길이었기에 13km너 되는 길을 힘들다 함이 없이 웃으면서 걸을 수 있었다. 오늘 우리는 알마 간을 더 버틸 수 있는 추억거리와 에너지를 얻었다. 내가 반세기 전에 경험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오늘을 걸을 수 있었듯이 말이다.


추억은 때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명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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