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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y 25. 2016

전교조 '사랑론'

전교조 미복귀 전임자 '직권면직' 사태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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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어른은 ‘골수’ 기독교인이시다. 보수적인 기독교 교단에 속해 있는 교회의 은퇴 장로로 지내면서, 정치․사회적인 현안에 보수적인 색깔을 드러내신다. 가령 장인은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바라신다.


그런 장인이 유일하게 지지(?)하는 ‘진보 조직’이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다. 이유는 한 가지다. 당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둘째 딸의 남편, 곧 둘째사위가 전교조 조합원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둘째 사위가 나다.


아내 집으로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였다. 장인께서 대뜸 전교조에 가입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전에 아내와 전교조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딸에게 그 말을 듣고 나를 ‘추궁’하거나 전교조 탈퇴를 ‘회유’하려고 그러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장인께서 말씀하셨다.


“전교조가 한 일이 많지. 이런저런 말이 많아도 전교조 덕분에 학교와 선생님들이 변한 건 사실이야.”


긴장감 속에서 다음 말씀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입한 지 17년째이자, 조합원 수가 200명이 훌쩍 넘는 지역을 대표하는 지회장으로 살고 있으니 나름 ‘전교조 활동가’라 할 만하다. 그런데 나는 대체로 우리 조직에 비판적이다. 조직 문화가 은근히 관료적이다. 의전 문제, 호칭 문제 등으로 보이지 않는 긴장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내부 정파 간 갈등과 대립, ‘투쟁’만을 외치는 활동 들을 묵과하기 힘들다. 전교조가 약해지기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왜곡과 편견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일부 극우 언론의 탓이 크다. 그런데 전교조 내부적으로 혁신을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솔직히 많다. 학교 현장에는 그 거친 언어와 밀어붙이기식 전술 때문에 전교조를 부담스러워하고 무서워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교조를 ‘사랑’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전교조만큼 공교육의 원칙과 철학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실천하는 교원단체는 없는 것 같다. 그를 관철하기 위해 강대한 정부와 맞서는 교원단체 역시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 전체 40여만 명의 교원 중 전교조 조합원은 약 6만 명이다.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12만 명 정도의 교사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그런데 전교조의 2배나 되는 규모를 자랑하는 교총이 어떤 교육적 원칙을 갖고 활동하는지 알기 힘들다. 심지어 그들은 정부의 ‘친위조직’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비난을 받기도 한다. 교장, 교감 등 이른바 학교관리자 중심의 조직 구성에 말미암은 바 크겠지만 교사 단체로서의 확고한 철학의 부재가 더 큰 이유라고 본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전교조의 ‘투쟁 정신’이야말로 내가 전교조를 아끼는 가장 큰 이유다. 사람들은 흔히 전교조가 이른바 과도한 ‘정치 투쟁’을 일삼는다고 말한다. 전교조 바깥의 제3자들에게 과도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침묵과 굴종의 그늘 아래서 살아야 하는 다수의 약자들을 위한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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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사랑론’을 펼치는 까닭이 있다. 비판과 저항의 주요 근거지였던 전교조가 10여년간 이어지고 있는 보수정권 아래서 타력에 의해 법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보수정권과 이들의 충실한 ‘법률 대리인’인 사법부는 국제 기준과 일반인의 상식에 맞지 않는 법령 해석을 도구 삼아 전교조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예 2016년 1월 21일 전교조는 서울고등법원 결정에 따라 법외노조가 되었다. 


서울고등법원과 더불어 헌법재판소라는 최고 권위의 법률기관 등 이 나라의 사법부 상층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한 것은 해직 교사 9명을 품고 있는 6만 명의 교원노조가 관계 법령에 어긋나는 내부 규약을 갖고 있으므로 ‘법외’로 밀려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전교조 합법화와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등의 조건으로 오이시디(OECD)에 가입한 우리 정부는 과연 어디로 갔는가.


전교조는 전체 전임자의 절반 정도인 35명이 법외노조화에 뒤따르는 현장 복귀를 거부했다. 교육부는 후속 조치를 재빠르게 취했다. 새 학년 새 학기 첫날인 지난 3월 1일 브리핑을 통해 각 시도교육청에 현장 복귀 거부 전임자에 대한 직권면직 등 후속조치를 강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3월 8일, 학교법인 영신학원이 전교조 본부 김용섭 부위원장에게 직권면직을 통보했다. 이후 대전, 대구교육청 등이 직권면직 절차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김용섭 부위원장, 이용기 본부 정책실장, 손호만 대구지부장, 지정배 대전지부장, 권정오 울산지부장, 김명동 경북지부장 등 6명에게 직권면직 통보가 이루어졌다. 


전라북도에는 미복귀 전임자가 모두 3명 있다. 윤성호 지부장, 김재균 정책실장, 노병섭 본부 사무처장이다. 사립학교 소속 교사인 윤 지부장을 제외한 2명에 대해 전라북도교육청이 제3차 징계위원회를 열어 직권면직 결정을 의결했다. 지난 5월 19일이었다. 타 지역 미복귀 전임자들에 대한 징계위원회도 속속 마무리되었다.


교육부가 정한 직권면직 이행 결과 보고 1차 시한은 4월 20일이었다. 그때까지 대다수 교육청은 직권면직 절차를 완료하지 않았다. 전북교육청의 경우 4월 20일 이전까지 두 차례 징계위원회를 열었을 뿐이다. 그 전후로 전북교육청은 직권면직 결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교육부의 직권면직 강행 압박에 저항했다. 


교육부는 미복구 전임자를 직권면직시키라는 직무이행명령 시한을 5월 20일까지 연기했다. 이후 대다수 교육청들이 속속 직권면직을 위한 절차를 시작했다.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엇비슷한 시기에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직권면직을 강행했다. 교육부와 교육청 사이, 또는 각 시도 교육청들 간에 어떤 보이지 않는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충분히 살 만했다. 어제 13개 시도교육감 명의로 나온 성명도 그 방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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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헌법재판소(헌재)는 교원노동조합(교원노조)의 조합원 자격을 현직교사로 제한한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한법결정을 내렸다. 지난 1월 항소심 재판부도 전교조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쟁점은 헌재와 항소심의 판결 논리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교조는 조합원이 6만 명이나 되는 실체적 조직이고, 1999년 합법화한 지 17년 동안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던 합법적 법내노조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내세운 단서 조항도 이를 뒷받침한다. 헌재는 조합원 자격 제한이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해서 이를 이유로 이미 설립신고를 마치고 정당하게 활동 중인 노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항상 적법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은 지난 22일자 사설에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법외노조는 전임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명문 규정도 없으며 전임자 임금 지급은 어렵더라도 전임자 휴직은 얼마든지 노사자율로 결정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의 근거가 된 <교원노조법>에는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는 제2조 말고도 독소조항으로 볼 만한 규정이 몇 가지 더 있다.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제약하는 제3조, 노조의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제8조, 단체협약의 효력을 제한하고 있는 제17조 등이 구체적인 사례다. 교원(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정치중립 의무의 미명 아래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하는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 등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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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폰 예링(1818~1892)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독일 법학자다. 그는 주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라고 말했다. “법이 불법적으로 침해되고 있는 한, 그리고 세상이 존족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계속된다. 법은 이러한 투쟁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나는 현재 전교조를 옥죄는 법률적 근거가 되고 있는 <교원노조법>이, 교사의 정치 참여와 사회적 발언에 극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일부로부터 “불법적으로 침해”를 당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전교조가 교원의 노동․정치 기본권을 획득하기 위해 ‘투쟁’하고, 이를 통해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 법외노조라는 황야의 ‘망루’에 오른 것은 정당하다.


우리는 ‘법치주의’와 ‘준법정신’ 등의 이름으로 법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받는다. 미국 예일대학교 로스쿨의 프레드 로델 교수가 명저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에서 “부족 시대에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법률가가 있다”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법은 신성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다. 로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반인이 오늘날의 법 제도에 대해 존경심을 품고, 그의 삶을 법률가가 신비한 방식으로 다스리도록 기꺼이 내맡기는 이유는, 법의 원리에는 전혀 오류가 없고 그것이 법률가의 손에 가면 정의로운 결과를 낳는다는 세심하게 양육된 신화에 완전히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만약 일반인이 법률가와 그들의 법에 대한 냉엄한 진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지에 사로잡히면 공포를 갖게 된다. 공포를 갖게 되면 경외심을 품게 된다. 이리하여 진실로 의심할 바 없이, 저주받으리라, 법률가들이여!” -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274쪽.


전교조는 헌법노조다. 현재 법외노조가 되어 있으나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으로서의 합법적 위상을 갖고 있다. 나는 조만간 전교조가 법내노조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법에 대한 ‘공포’와 ‘경외심’을 갖지 않는 35명의 미복귀 전임자가 그 생생한 증거다.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이와 비슷한 글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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