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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Dec 01. 2016

“내가 명령하면 이 목도 잘려 나갈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수하 무리들의 ‘운명’에 대하여

1


진실한 ‘우정’은 신비롭다. 우리에게 내면의 충만감과 생의 안정감, 끊기지 않는 용기를 준다. 그것은 천금의 돈으로 살 수 없다. 절대 권력으로 빼앗아 가질 수 없다. 우정은 진실한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한 경험을 공유할 때 생겨난다.

  

우정은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만 싹트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통해서만 자란다. 우정은 물질적 호의가 아니라 고결한 삶의 태도에 의해 유지된다. 친구 간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정직함을 알기 때문이다. - 에티엔 드 라 보에시(2015:125), <자발적 복종>, 생각정원.


2


박근혜 대통령과 그 수하 무리들의 ‘관계’를 생각한다. 길게는 40년, 짧게는 10유여년의 세월이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다. 진실한 우정이 있을까.


보에시는 잔혹함과 배반과 불의가 판치는 곳에서 우정은 싹틀 수 없다고 말했다. 악인들이 모이면 그들 사이에 동료는 없고 음모만 생겨난다고 보았다. 그는 덧붙였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심하고 겁내는 그들은 친구가 아니고 공범들이다!


박근혜가 ‘혼군(昏君)’이라고들 한다. 최순실이 진실한 우정을 키우고 싶었다면 ‘혼군’의 ‘혼’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어야 한다. 김기춘이 진정한 ‘비서’였다면 때로 가르치고 때로 대화하며 내면이 충일한 지도자가 되도록 했어야 한다.


최순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김기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 보에시가 정확하게 말한 바 공범들이었다.


3


독재자들은 그 수하를 믿지 않는다.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은 수하들 역시 독재자를 늘 의심한다. 보에시가 갈파한 것처럼 그들은 독재자들의 근성을 잘 알았다. 독재자들이 자신들의 권세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수하들도 독재자의 마음을 믿지 못한다.


역사상 많은 독재자들이 측근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우리는, 이 땅에서 18년 철권 독재정치를 일삼은 박정희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던 측근 중의 최측근 김재규에게 총살을 당한 사실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4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고 본다. 그가 의심과 불신의 화신이라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과 김기춘, 우병우, 김종 따위의 발호가 모두 거기에서 나왔다.


박근혜가 그들에게 사랑을 주고, 진실한 우정을 나눴을까. 그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터이니 난망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퇴진에 관한 셈법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주변을 보면 폐족 처지에 놓인 친박의 마지막 발악에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공작정치와 모반과 술수가 100만, 200만 촛불의 함성을 무위로 만들어버리는 게 아니냐며 진심으로 걱정한다.


그러나 나는 낙관한다.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래서 그 깊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제대로 주어 보지 못한 박근혜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어떤 헌신적인 ‘친구’의 우정이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촛불과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로마 폭정의 시대였다. 애절하게 사랑하여 그녀 없이는 못 살 만큼 소중한 여자를 어루만지며 폭군 칼리굴라(12~41)는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내가 명령하면 이 목도 잘려 나갈 수 있다.”


그의 명령 한 마디에 “목도 잘려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늘 되새겼음직한 수하들이 지금 그의 목을 겨누려 하지 않을까. 운명이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칼리굴라다. 인터넷 <나무위키>(https://namu.wiki/w/%EC%B9%BC%EB%A6%AC%EA%B5%B4%EB%9D%BC)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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