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의 ‘합리성’이라는 허상
1
관료제는 인류 역사와 함께 출발했다. 일단 만들어지고 나자 사실상 그것을 없애기가 불가능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관료제 유토피아>에서 인류 초창기의 관료제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존재했다고 보았다. 당시 관료제는 왕조나 지배 엘리트들이 교체되는 동안 거의 변함없이 수천 년에 걸쳐 이어졌다.
중국 관료 조직에 관한 그레이버 교수의 기술은 관료제의 끈질긴 속성을 잘 보여준다. 외래 침략자들조차 중국 관료 조직을 축출해 내기에 충분치 못했다. 사무실과 보고서와 시험 시스템을 갖춘 그 관료 조직은 천명(天命, Mandate of Heaven)이라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 언제나 제자리에 확고히 머물러 있었다.
그레이버 교수는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논리를 빌려 중국 관료 조직이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을, 외래 침략자들에게 더 필요했던 것이 토착 지배자들보다 중국 관료들에 의해 빈틈없이 보호받아온 기술과 지식이었다는 데서 찾고 있다. 그 실용성과 효율성이 관료제의 생존 비법이었던 것.
관료제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간단했다. 그레이버 교수에 따르면 로마제국에서 고트족 왕 알라리크나 징기스칸이 중동의 특정 지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냥 그들 모두를 죽이는 것뿐이었다. 그레이버 교수는 상당수의 관료들을 살려두면 그들은 몇 년 안에 반드시 누군가의 왕국을 관리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관료제의 끈질긴 생명력을 짐작할 수 있다.
관료주의가 갖는 생명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레이버 교수는 그것의 ‘비인격적 냉담함’이라고 보았다. 그는 관료주의적 일처리 방식이 가진 매력을 현금 거래와도 같은 비인격적 냉담함에서 찾는다. 그의 말처럼 이들 둘은 영혼이 없어 삭막하지만, 단순하고 예측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해 보인다.
2
관료주의의 비인격적 냉담함은 합리적인 효율성으로 연결된다. 문제는 합리적인 효율성에 관해 말하는 것이 그 효율성이라는 게 실제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변한다는 것. 합리적인 효율성은 궁극적으로 비합리적인 목표인데, 이를 인간 행동의 궁극적인 목적일 것이라고 가정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최고 가치는 합리성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최고 가치가 실제로 무엇인지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2016), <관료제 유토피아>, 메디치, 62쪽.
그레이버 교수의 논리를 빌려와 말하면 관료제의 효율성이나 합리성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허상의 이미지다. 실제 효율성이나 합리성과 무관하므로 그것과 연관되게 보이게 만드는 평가가 중대한 일이 된다. 그래서 그레이버 교수는 관료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 무엇인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관료들-필자 주)은 각각 다른 계획, 제안, 신청, 행동받침 또는 승진 후보자들의 상대적인 장점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감사하고, 측정하여 그 무게를 달고 있다. (중략) 평가의 문화는 오히려 전문가 계층의 과도한 자격편중주의적인 세계에 훨씬 더 널리 퍼져 있다. 그런 곳에선 감사(監査) 문화가 지배한다. 그리고 계량화할 수 없거나 통계 일람표로 작성될 수 없거나, 컴퓨터 인터페이스나 분기보고서에 입력될 수 없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위의 책, 69쪽.
3
2013년 9월 프랑스 마르세유 외곽의 차(tea) 공장을 방문한 그레이버 교수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그곳은 당시 최근까지 소속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여 1년 이상 지방경찰과 대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공장 이전 여부가 표면적인 문제였지만 실제 현안은 이윤의 배분에 얽힌 논란이었다.
그레이버 교수와 동행한 중년 노동자가 사정을 들려 주었다. 그에 따르면 최고령의 노련한 1백여 노동자들이 티백을 포장하는 데 쓰이는 거대한 기계를 손질하고, 그 기계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평생을 보냈다. 이에 따라 생산량이 늘고 이윤이 증가했다고 한다. 기업 소유자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거나 더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대신 중간관리자들을 고용했다.
그 공장에는 수년에 걸쳐 딱 두 명의 경영진-사장과 인적 자원 담당 임원-만 있었다고 했다. 이윤이 늘어나면서 ‘정장차림’의 양복쟁이들이 점점 늘어나 10명을 훨씬 웃돌게 되었다. 그 양복쟁이들은 모두 복잡한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단지 노동자들을 노려보면서 작업 통로를 돌아다니고, 노동자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을 세우며, 계획서와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더니 마침내 그 양복쟁이들은 공장 전체의 해외이전을 고안해 낸 것이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위의 책, 72쪽.
4
학교는 각종 위원회로 굴러간다. 교사들은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공문에 매달린다. 교육 활동이 수치화되고 개조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보고서에 담긴다. 그것은 위계적인 순서와 절차에 따라 지정된 결재 라인을 타고 교육청과 교육 당국으로 올라간다. 교사들은 알게 모르게 관료주의적인 관행과 습속과 감성에 길들여진다.
나는 학교를 관료주의의 소굴로 만드는 데 이 나라 교육 관료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보는 사람이다. 교피아(교육부+마피아)로 불리는, 퇴직 후에 대학이나 관련단체에 낙하산처럼 재취업하면서 유착관계를 갖는 교육 관료 집단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관료를 죽이는 방법 외에 그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다는 게 앞에서 살핀 역사의 교훈이다. 교피아가 사라져야 교육 개혁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교피아의 출발지인 교육부를 없애야 하는 이유다. 역사적인 사례가 있다. 명분과 당위성이 충분하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막스 베버다. 한국어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B%A7%89%EC%8A%A4_%EB%B2%A0%EB%B2%84)에서 빌려왔다.
* 이어지는 글에서 교피아를 통해 교육부 혁파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