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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l 03. 2016

“그 여자를 내버려 두시오”

방관자 효과와 동기화 맹시라는 ‘헛소리’

1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는 뉴욕 주 퀸스 지역의 한 술집에서 일하던 28살의 여성 지배인이었다. 1964년 3월 13일, 야간 당번을 마치고 귀가하던 제노비스는 한 남자의 공격을 받아 자상을 입었다. 그는 큰 목소리로 구조 요청을 했다.(아래 제노비스 사건에 관한 내용은 한국어 <위키백과>를 참조해 정리했다.)


근처 아파트에 살던 동네 사람들이 불을 켜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범인 모즐리는 훗날 법정에서 집집마다 불이 켜졌지만 사람들이 사건 장소로 내려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지켜보던 사람 중 한 명이 “그 여자를 내버려 두시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모즐리는 바로 도망을 쳤다. 제노비스는 난자당한 몸을 이끌고 어느 가게 앞으로 가 드러누웠다. 그새 다시 나타난 모즐리가 제노비스의 온몸을 칼로 찔렀다.


제노비스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아파트에 불이 다시 켜지자 모즐리는 또 도망을 갔다. 제노비스는 간신히 자신의 집이 있는 아파트 건물 복도로 걸어갔다. 하지만 몇 분 후 모즐리가 다시 나타나 제노비스를 강간했다. 사건은 새벽 3시 15분에서 3시 50분까지 약 35분 동안 일어났다.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1면 하단에 제노비스가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37명(이후 38명으로 수정되었다고 함.)이 어떤 신고를 하거나 도움도 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37 Who Saw Murder Didn't Call the Police(살인을 본 37명이 경찰에 전화하지 않았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심리학에서 ‘방관자 효과’, 또는 ‘구경꾼 효과’라는 개념이 정립되는 데 영감을 주었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거나, 어떤 일이 발생했을 경우 곁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2


주변에서 다른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잘못된 행동이 되풀이되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의 고통이 점점 늘어나는데도 그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방관한다. 그 사람들이 특별히 부도덕하거나 비양심적이어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미식축구팀 전직 코치 제리 샌더스키(Jerry Sandusky)는 1994년부터 2009년까지 13세 이하 아동 8명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2011년 11월 5일 체포되었다.[아래 샌더스키 사건에 관한 내용은 맥스 베이저만(2016),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하버드 관찰 수업>, 청림출판, 43~45쪽 참조] 샌더스키는 이듬해 6월 22일 45건의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샌더스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대배심 보고서 내용이 충격적이다. 맥스 베이저만이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샌더스키는 봉사활동을 통해 범행 대상 소년들을 끌어들였다. 몇몇 직원들은 샌더스키가 소년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광경을 목격했으며, 다른 직원들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범행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행동윤리학 분야에서 이뤄진 연구는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에 처하면 아무리 도덕적 나침반이 잘 조정되었다고 믿어도 편향 없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녀와 배우자가 지닌 최선의 모습을 생각하려 하며, 사무실과 일자리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 맞서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 맥스 베이저만(2016), 위의 책, 51쪽.


베이저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모른 척할 동기가 있을 경우 그 사람의 비도덕적 행동을 볼 가능성이 훨씬 낮아진다고 말한다. 이른바 동기화 맹시다.


베이저만 교수에 따르면, 우리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의 비도덕적 행동을 인지하지 못하는 체계적인 실패를 가리키는 용어가 동기화 맹시다. 어떤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는 데 따른 인센티브가 있다면 그 사람의 행동이 지닌 윤리성을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3


방관자 효과에 따르면 악행의 현장에서 우리가 져야 할 도덕적 책임이 함께 있는 사람들의 수에 비례해 줄어든다. 우리는 동기화 맹시의 원리에 따라 경력과 일상에 문제가 예상될 경우 비도덕적인 결정을 내린다. 방관자 효과와 동기화 맹시는 도덕적으로 별다른 흠결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악’의 편에 서게 되는 이유를 말해 준다.


우리는 모두가 불법적이거나 최소한 비도적인 말과 행동을 숱하게 보고, 듣고, 목격했으면서도 대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또한 문제의 행동이 겉보기만큼 나쁘지 않고, 도움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으며, 그저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는 믿음과 충성심을 내세워 무대응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비도덕적 행동을 진정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중대한 인간적 한계다. - 맥스 베이저만, 위의 책, 59쪽


방관자 효과와 동기화 맹시는 우리 인간에게 불가피한 ‘한계’인가. 베이저만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수많은 내부고발자들은 우리가 방관자 효과나 동기화 맹시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최근 방관자 효과의 모티프가 된 키티 제노비스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다. 키티의 동생 빌 제노비스는 누나가 연루된 비극적인 사건의 진실을 2004년부터 파헤치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40년이 지난 시점인 그해 <뉴욕타임스>가 해당 보도 일부가 과장됐다는 보도를 하면서였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제임스 솔로몬이 빌이 ‘진실’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찍어 <목격자>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6월 29일 <목격자>와 빌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당시 정황을 전했다고 한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목격하거나 들은 사람은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이 중 한 명은 “여자를 내버려 둬”라고 범인을 향해 외쳤다. 경찰 기록엔 나오지 않지만 2명 이상이 경찰에 신고했다. 소피아 파라라는 여성이 키티에게 달려와 숨을 거둘 때까지 곁을 지켜줬다. 이웃의 죽음을 방관했던 38명은 없었던 것이다. 당시 NYT 사회면 담당 에디터였던 A. M. 로즌솔도 38명이란 숫자는 근거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이 보도의 공익성을 강조했다. - <동아일보> 7월 1일자 기사 “1964년 뉴욕 노상살인사건 누명 벗은 ‘38명의 방관자’”


빌은 인터뷰에서 “머릿속 헛소리를 현실처럼 만들어내면 사람들은 그걸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면서 그럴 만하다고 믿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게 진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방관자 효과나 동기화 맹시가 “머릿속 헛소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뉴욕타임스> 1964년 3월 14일자의 1면이다. <한겨레> 6월 30일자 기사 “52년 전 ‘방관자 효과’, 모티브 사건은 ‘뉴욕타임스’ 왜곡보도”(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750404.html)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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