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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29. 2016

미국 사학은 ‘공영사학’...한국 사학은?

사학의 공공성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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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사립대학교인 서남대학교 설립자 이홍하 씨가 화제다. 한국어판 <위키 백과>는 이 씨를 ‘대한민국의 교육자 출신 학교설립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전라남도 고흥 출신이다. 조선대학교 동생물학과를 졸업(연세대편입학)한 뒤 순천고등학교와 광주고등학교에서 생물 과목을 가르쳤다. 고등학교 가정 교사였던 부인 서복영(전 한려대학교 총장) 씨와 함께 광주광역시에서 목욕탕을 운영해 돈을 모았다고 한다.


평범한 부부 교사였던 이들이 ‘학교 사업’에 뛰어든 해는 1977년이었다. 부동산 투자로 모은 돈 5천만 원으로 자신들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홍복학원’을 설립한 뒤 여러 학교를 만들기 시작했다. 1979년 옥천여자상업고등학교, 1991년 서남대학교, 1993년 광주예술대학교, 1995년 한려산업대학교(현재의 한려대학교) 등 3개 고등학교와 5개 대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문어발식 학교 확장 사업을 벌이던 그는 설립 학교들에서 1천억 원이 넘는 교비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현재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그렇다. 그에게 교육 분야는 일종의 ‘사업’ 영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교는 사적 재산에 불과했던 듯하다.


나만의 삐딱한 시선일까. 오늘자(2015년 6월 29일) 신문 지면에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내 학교 나무 한그루도 손대지 마라”…1000억 교비 횡령 이홍하의 옥중 편지>가 제목. 복역중인 이 씨가 홍복학원 산하 광주서진여고 교장에게 A4 용지 1장 분량으로 보낸 ‘옥중 편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제목이 ‘서진여고의 체제 변경 및 시설물 용도금지와 교내수목 이식과 절단에 따른 원상회복 2차 지시’다. 일부를 보자.

 

“설립자의 동의 없이 체제를 변경하거나 불법집단에 가입하여 학교의 명예를 훼손시켰거나, 교내 건축물의 용도를 변경시켰거나, 교내수목(정원수 포함)을 임의 이식 및 절단했을 때에는 하계방학을 고려하여 2016년 7월 31일까지 원상회복할 것을 본교설립자로서 엄중히 지시합니다. 만일 위의 기일까지 원상회복되지 않았을 때에는 의법조치 및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임을 통지합니다. 끝.”


이 씨의 주장은 명확하다. ‘내가 설립한 학교는 내 재산이니 절대 건들지 마라’. 현재 서남대 홈페이지의 ‘학교 소개’ 코너에 들어가 보면 복역중 ‘범죄자’인 그의 이름이 다음 문장에서처럼 엄연하게 살아 있다.


“본 대학교의 설립자인 이홍하 박사께서 일찍이 육영사업에 뜻을 두시고 이 지역의 발전을 주도할 인재를 양성하고자 진리 창조 봉사라는 교시를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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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 사례는 오늘날 우리나라 사학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 전체 학교에서 사립학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교육부 <교육통계서비스>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국 초‧중‧고등학교 2,0729개교(초등학교 5978개교, 중학교 3204개교, 고등학교 2344개교) 중 초등학교 75개교(1.2퍼센트), 중학교 641개교(20퍼센트), 고등학교 950개교(40퍼센트)가 사립학교다. 학교 수로 1600개교가 넘는다. 사립 대학 비중은 85퍼센트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공교육 체제에서 사학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은 나라로 정평이 나 있다. 구미 권역에서 사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0~30퍼센트 정도다. 사립학교인 상지대학교 교수로 사학 민주화를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정대화 교수는 한 언론 기사에서 이런 현실의 배경을 우리나라 사학의 ‘독특한’ 설립 목적에서 찾고 있다. 아래는 그의 말이다.    


우리 사학의 다수는 사학의 본고장인 미국과는 달리 교육을 위해서 설립되기보다는 처음부터 사익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던 극소수의 사학을 제외한다면, 다수의 사학은 해방 직후 토지개혁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다시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의 온갖 특혜와 묵인 속에 산업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교육기관인 사학은 법적으로는 사유재산이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간주되었고, 사유재산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묵인되었으며, 최대한의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족벌체제가 형성되었다. - 2015년 10월 28일자 <프레시안> 기사, “‘머나먼 쏭바강’ 상지대, 한국 사학이 문제다”    


정 교수의 논지를 더 빌려 보자. 미국에서는 유럽 이민자들이 유럽에서 받은 공교육을 기대할 수 없는 식민지 상황에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유럽 전통을 이어받아 개신교가 중심이 되었는데, 주로 목회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들이 설립되었다.


그 뒤 정부가 지원하고 사회적 기부금이 보태지면서 교육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한다. 오직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되고, 처음부터 설립자 개인의 독단이나 전횡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는 것. 정 교수는 이들 미국 사학이 사학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사회적 공공기관으로 설립되고 발전했다고 하면서 이들 사학을 ‘공영사학’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한국 언론이 통상 비리 사학을 가리킬 때 쓰는 ‘족벌사학’이라는 말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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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는 ‘사유재산’인가 ‘공공재’인가. 사학은 학내에 문제가 생겨 법정으로 가더라도 제반 권한을 보장받는 사례가 태반이다. 사학의 사적 성격을 보장하는 게 우리나라 사법부가 내리는 법률적 판단의 지배적인 기조라는 것.


최근 ‘사학 비리의 종합선물세트’로 불리는 상지대 사태의 장본인 김문기(84) 씨와 관련한 법원 판결에서 김 씨의 총장 복귀 발판이 된 2010년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상지학원 이사 선임이 위법하다는 결정이 나와 주목을 끌긴 했다.


하지만 ‘사적 재산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사학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훨씬 더 일반적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이런 경향이 <사립학교법>의 ‘목적’에 명시된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말미암는다고 본다. <사립학교법> 제1조에 규정된 ‘목적’은 다음과 같다.   

 

이 법은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함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조문의 전‧후절에 깔린 논리를 면밀하게 살펴보기 바란다. “사립학교의 특수성”을 전제로 “자주성을 확보하”는 일이 먼저 나온다. “공공성을 앙양”하는 일은 그다음이다. <사립학교법> 제1조의 기저 논리를 기계적으로 따진다면, ‘자주성’과 ‘공공성’이라는 의미상 배타적인 개념이 하나의 목표 안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모순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온전히 ‘자주적’이어야 할 사학은 ‘자주적’이지 않다. 가령 사학들이 ‘사립(私立)’이라는 명목을 스스로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인부담금이 있으나 그 부담 수준이 극히 미미하다. 최근 국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법인부담금 비중이 2011년 21퍼센트에서 2014년 17.5퍼센트로 내려앉는 등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10개 학교 중 3개 학교가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이 20퍼센트에도 안 된다는 자료도 있다.


이쯤에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사실이 있다. 사립학교는 공교육 체제 안에 포함되어 있다. ‘설립’ 형태만 ‘사립(私立)’이지 실제 운영과 관리는 거의 대부분 공공의 재원인 세금으로 충당다. 학교 운영의 목표를 ‘특수성’이나 ‘자주성’이 아니라 ‘공공성’을 앞세운 기조 위에 바로 세워야 하는 까닭이다. 사립학교는 결코 사유재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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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의 공공성은 하나의 법률적 규정으로서 ‘사실적 차원’에서 기술되어 있다. 우리는 <교육기본법> 제9조 제2항의 “학교는 공공성을 가지며, 학생의 교육 외에 학술 및 문화적 전통의 유지·발전과 주민의 평생교육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을 근거로 사학의 공공성 확보에 대한 정당성과 당위성을 찾는다.


나병현 서울대학교 교수는 교육의 공공성을 사실의 문제로 보고 사학 교육의 공공성을 사실의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법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는 바, 이 때문에 사학의 공공성이 문제로 부각될 때가 있다고 보았다. 왜 그런가.


나 교수는 사실의 차원에서 국가 사무의 특성으로서의 공공성 개념에 기반해 공립학교와 동일한 기준을 사학에 적용하는 논리를 허종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의 논문(<사립학교 교육의 공공성 보장과 그 비판>, 《교육비평》 6, 2001)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국‧공‧사립학교에 공통된 설립기준을 적용하고 또 졸업자에 대해서도 동등한 자격을 부여한다. 둘째, 교원의 자격과 종별을 국‧공‧사립학교에 동등하게 규정한다. 셋째, 교육의 내적 조건인 교육목적, 교육과정, 교과서 등에서 차이를 두지 않고, 교육의 외적 조건인 인적‧물적 조건에서도 차별을 두지 않고 있다. 넷째, 학생선발제도에서 국‧공‧사립학교를 동일하게 취급한다. 다섯째, 공납금 및 물적‧인적 시설의 균등한 유지와 향상을 도모한다. 여섯째, 국가는 사립학교의 운영에 대해 국‧공립학교와 동일한 감독 및 통제의 권한을 가진다. - 황원철 외(2004), <공교육: 이념‧제도‧개혁>, 원미사, 23쪽.    


그런데 나 교수는 설립, 비용, 운영, 대상의 측면에서 볼 때, 사실적‧기술적 차원에서의 사학 교육의 공공성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사학이, 개인이나 사적 단체가 개인의 재산을 출연하여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받은 납입금과 재단수익금으로 운영한다는 점, 학생을 선별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공공이 세우고 운영하는 공립학교와 다르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하지만 사학은 설립을 제외하고 비용, 운영, 대상 등의 측면에서 공공적 시스템을 통해 굴러간다. 의무교육 단계로서 국가 세금으로 운영, 유지되는 사립 초‧중학교는 물론이고, 교원 인건비나 운영비 등 대부분의 재원을 지원받는 고등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학이 자신들의 공공성을 더욱 굳건히 견지해 나갈 수 있도록 법률적‧제도적 차원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립학교법>의 전향적 개정, 사학의 공공성을 위한 학교 민주주의의 강화 등이 있어야 한다. 이 씨와 김 씨가 신망 있는 ‘교육자’로 대접 받아서야 안 되지 않겠는가.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천지일보>에서 가져 온(http://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33676) 우기곤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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