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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28. 2016

학교 관료주의와 교사의 ‘무기력’

“교사는 기계 안의 톱니바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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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의 관료화는 냉정한 규칙과 규제 장치의 부과를 의미한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학교 교수가 <관료제 유토피아>에서 한 말이다. 그레이버 교수에 따르면 이들 규칙과 규제 장치는 감시와 힘의 위협으로 뒷받침될 때 작동한다. 보안 카메라, 임시 신분증 발행자를 구체적인 수단의 예로 들었다. 물리적인 폭력 행사를 위한 전술을 익혀 공적이거나 사적인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제복 입은 사람들을 예시했다. 그들이 운동장과 초등학교와 대학 캠퍼스에 출몰한다고 꼬집었다.


감시와 규칙과 규제를 통한 삶의 관료화, 각종 다양한 방식으로 행사되는 힘과 폭력의 기제들이 교육 시스템을 지배한다. 학교 현장에는 시시티브이(CCTV) 만능주의가 넓고 깊게 자리잡고 있다. 행동을 점수로 재단하는 상‧벌점제가 하나의 ‘문화’처럼 통용된다. 제복을 입은 학교폭력 전담 형사가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


아이들과 교사들이 각종 평가 기제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이런저런 잡다한 ‘성과’와 그것을 정량적으로 표현한 수치로 서로 비교당한다. 책무의 압박을 받는다. 결과는 자율성 상실과 무력감이다. 이제 규칙과 규제가 위력을 발휘하는 악순환이 펼쳐진다. 존 맥베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는 이런 현상을 ‘문화적 무력화’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트로엔과 볼스[Troen and Boles(2003), <Who’s Teaching Your Children? Why the teacher crisis is worse than you think and what you can do about it>, Yale University Press.]는 푸코의 근대감옥(Panopticon) 감시체계의 특징을 인용한다. 모든 방향에서 항상 감시당하면 저항이 줄어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효과를 지속시킬 수 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교사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그런 무기력 상태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를 자신이 내면화한 근시안적이고 관료적인 규칙으로 옭아맨다.” - 국제교원노조연맹보고서(2015), <교사의 전문성, 어떻게 만들어지나>, 살림터,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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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육학부에서 영국 초등교육의 환경과 미래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관련 내용은 위의 책 139쪽 참조) 학교 교육구마다 총 87회 찾아다니면서 수행한 조사 연구였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교실 안에서 어린이들을 직접 만났다. 교실 밖으로 나와 학교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주변 지역을 훑었다. 보고서의 결론 중 일부는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 어린이는 정책의 요구에 발맞추려는 학교와 상업적 이윤 동기에 지배되는 사회 양쪽 모두로부터 밀도 높은, 아마도 감당하기 어려운 압력을 받고 있다.
▲ 가족생활과 지역사회는 해체되고 있다.
▲ 세대 사이에 그리고 세대 내부 모두에서 존중과 공감이 누구랄 것 없이 사라지고 있다.
▲ 학교 교문 밖의 삶은 점차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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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관료주의화와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교사들의 ‘불만’을 키운다. 맥베스 교수는 국제교원노조연맹보고서(2015)에서 교사들 사이에 불만족이 커지는 이유를 다섯 가지 핵심 요인에서 찾았다. 통제 강화, 역할에 대한 과부하, 탈전문화 들이었다.


통제 강화가 맨 첫 자리에 놓인 사실이 인상적이다. 맥베스 교수는 통제 강화가 다양한 지역, 국가, 세계 수준에서 전문가로서의 교사의 자율성, 효능감, 자신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통제 강화가 자율성 상실을 일컫는다는 일본 시마하라(Shimahara)의 말도 인용한다.


맥베스 교수에 따르면 통제 강화의 원인은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와 교사가 수행하고 있는 역할의 복잡성과 다양성에 있다. 이는 과거에 부모, 조부모, 지역사회 공동체, 교회, 기타 사회기관에서 수행했던 책임을 학교가 떠맡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교육과 돌봄(보육)의 ‘풀 서비스’를 요구하는 오늘날의 교육 시스템에서 교사들은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호주 정부의 보고서는 교사가 수행하는 역할을 13가지로 분류했는데, 그중 많은 수가 중첩된 영역에서 수행된다고 한다. 뉴질랜드에 대해 OECD가 낸 보고서에서는 적절한 자질을 갖춘 교사가 부족한 원인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버린 직업적 요구에서 찾고 있다. 역할의 혼돈이 심해짐에 따라 전문적인 역할과 관계없는 부수적인 기능을 줄여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 위의 책, 145쪽.


교사들에 대한 통제 강화와 이에 뒤따른 교사들의 자율성 상실, 과도한 역할 부여 등은 교사의 탈전문화를 가속화한다. 교사들은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명예를 스스로 내려 놓는다. 교육 개혁 과정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교사의 노동에서 최근에 매우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세부지침이 마련된 배경에는, 교사가 자신의 일에 대해 제안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그들이 전문가로서 내리는 판단이 중요하지 않다는 가정(달리 말하면 전문가에 대한 신뢰 축소와 일치함)”(위의 책, 152쪽)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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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교육 개혁 운동가인 교사 윌리엄 에어스는 민주주의 사회의 교사상을 강조하며 이렇게 외쳤다. 관료주의적으로 돌아가는 기계 안의 톱니바퀴나 비인간적 시스템 안의 부속이 될 수 없다!


그는 교사를 스스로 아이들의 성정을 돌보고 지원하는, 유연성과 자율성을 지닌 윤리적 행위자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려 깊음과 돌봄의 본보기, 문제 해결과 의사 결정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연관관계를 만들어나가고, 교실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것, 뜻밖의 것, 새로운 것을 통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실과 학교를 편협하고 일방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시험 공장이 아니라, 아이들이 전체적으로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게 하는 좋은 환경이자 공동체로 만드는 일이다. 교실이 아이와 교실 공동체에 맞추어져 있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교실은 아이들 삶의 특질에 초점을 맞추고, 상상과 표현, 실험의 기회를 주는 안전하고 활기 넘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 윌리엄 에어스(2012), <가르친다는 것>, 양철북, 14쪽.


시장주의가 교육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 이익이 첫머리에 놓인다. 경쟁과 효율성과 성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소비자로 자리매김 된다. “교육이란 교육과정이라고 불리는 꾸러미를 간단히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점이 영향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지배적인 상황”(위의 책, 53쪽)이 돼버렸다.


에어스는 이런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교사를 사무원, 생산 라인 노동자, 관리인에 빗댔다. 전문가와 학자와 정책 입안자의 지혜와 생각을 전달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교육계 위계질서의 거의 가장 아래에 있는 존재로 묘사했다. 그 위계질서의 맨 밑바닥에 학생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교육은 근본적으로 사랑의 문제라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스승 맥신 그린 콜럼비아대학교 교수의 스승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교육의 위기: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The Crisis in Education: Between past and future)>(2006, Penguin, 196쪽)에서 한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교육은 우리가 세상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 만큼 세상을 사랑하는지 결정하는 순간이며, 그런 책임감을 지니고 재생이 이루어지거나 새롭고 젊은 것이 오지 않으면 피할 수 없을 쇠락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순간이다. 또한 교육은 우리가 아이들을 세상에서 쫓아내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도록 방치하거나 새롭고 예측하지 못한 것을 할 기회를 아이들 손에서 빼앗지 않고, 세상을 새로이 만드는 일을 아이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만들 만큼 사랑하느냐를 결정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 윌리엄 에어스(2009), 위의 책, 57쪽에서 재인용함.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한나 아렌트다. 인터넷 <위키피디아>(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B%82%98_%EC%95%84%EB%A0%8C%ED%8A%B8)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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