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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l 12. 2016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사회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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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향욱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떠올린다.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1992년 행정고시 합격. 1993년~2005년 사이 부산시교육청, 교육부, 부경대학교 근무. 2005년 서기관 승진.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밝힌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 프로필이다.[<머니투데이> 7월 11일자 기사(“‘개·돼지 민중’ 세금으로 美 대학 박사 수료한 교육부 간부”) 참조]


나 기획관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 국외 파견을 다녀오면서 박사 과정(고등교육 전공)을 수료하기도 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이때 나 기획관이 서기관 직급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던 학비와 체제비가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국외훈련비 지급규정에 따라 공식적으로 학자금만 2년간 3만6000달러(약 4138만 원), 최대 5만4000달러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 기획관의 프로필과 국외 파견 관련 기사를 보며 우리나라의 ‘세속적인’ 관료들이 거치는 어떤 ‘라이프 사이클’이 그려졌다. 뜨겁게 준비한 한 번의 시험으로 상층 관료 집단에 진입한다. 주요 기관들을 거치며 승진을 위한 이력을 성실하게 쌓는다. 마침내 고위 관료 집단에 편입되어 승승장구한다. 10대식 어법을 빌려 ‘고시충 → 승진충 → 관료충’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고등교육(대학교육)을 전공한 나 기획관이 최근 맡고 있던 업무는 ‘정책 기획’이었다. 언론에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누리과정, 대학구조개혁 등 교육부의 주요 교육 정책을 기획하고 타 부처와 정책적으로 조율하는 주요 보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 마디로 대학교를 포함한 모든 학교교육 현장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제반 정책을 주무르는 일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에게 그럴만한 능력이나 실력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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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는 부, 권력, 명예 등과 같은 사회적 재화를 어떤 사람의 타고난 혈통이나 신분, 계급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능력에 따라 사람들에게 할당하자는 이념을 가리키는 말이다.[아래 ‘메리토크라시’에 관한 내용은 장은주 외(2014), <왜 그리고 어떤 민주시민교육인가>, 경기도교육연구원 참조] 일종의 능력주의, 실력주의다. 사회 전체에서 능력이나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부와 명예를 가지며, 또 그런 식의 분배가 ‘정의롭다’고 정당화되는 사회체제에 대한 이념이라는 것.

 

메리토크라시가 정당성과 합리성을 가지려면 몇 가지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기회를 균등하게 갖는다. 경쟁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제도다. 유교적 동아시아 사회를 특징짓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과거제는 관료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기제이자 사람들의 욕망을 통어하는 지렛대였다.


유교적 조선 왕조의 정당화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던 이 메리토크라시 이념은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퇴조하기보다는 오히려 신분제의 철폐라는 조건 위에서 더욱 더 강력하게 사회적 주체들의 실천적 상상력을 사로잡으면서 우리의 근대 사회 형성에 구성적으로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념은 무엇보다도 주체들의 ‘자기계발의 의지’ 같은 것을 강력하게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우리 근대성의 문화적 중심축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 위의 글, 17쪽.

   

고시와 시험이 강력한 영향력을 지배하는 우리나라는 메리토크라시 사회다. 성적과 학력이라는 잣대로 사람들을 ‘등급화’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위계적인 능력주의를 구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교육이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장은주 외(2014)에 따르면, 이때 교육은 기본적으로 ‘능력자를 추려내는 경연’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교육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사회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이제 사회는 성적과 학력(및 학벌)을 확고부동한 능력의 증거로 여긴다.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자연화’함으로써 정당화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자연화’는 불평등을 사회 구조와 과정의 귀결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타고난 능력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 문제의 차원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 문제로 협애화한다는 것.

 

나 기획관이 내놓은 ‘국민은 개‧돼지론’이나 ‘신분제 공고화론’의 근저에 이런 시각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그는 최고 학벌인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으로 기본 능력을 인정받았다. 고시 합격으로 ‘능력자’ 인증을 획득했다. 이제 그에게는 ‘비스카이’와 ‘비고시파’가 ‘무능력자’, 곧 ‘개‧돼지’로 보인다. 그들은 신분제 시스템의 바닥에 있어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 ‘개‧돼지’들이 메리토크라시의 신화를 철저하게 신봉한다는 것.

   

이 메리토크라시적 교육 패러다임은, 분배 정의에 초점을 둔 그 진보적 버전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사회적 경쟁 체제에서 승리한 자들의 이데올로기이기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승자독식을 정당화하고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만들어 낼 우려가 있다. 메리토크라시적 이상은 너무 쉽게 경쟁의 승자들이 갖춘 어떤 지위에 대한 형식적 자격(qualification)을 높은 사회적 지위와 재화 같은 것을 마땅히 독차지해도 되는 ‘도덕적 자격’ 또는 ‘응분’(desert)으로 바꾸면서 사회적 분배 체계의 극심한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다. - 위의 글, 19쪽.    


능력과 실력을 키우라는 말을 가장 즐겨 하는 곳 중 하나가 학교다. 능력과 실력을 가늠하는 지표는 아주 단순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들, 가령 수치로 형상화한 성적이나 점수, 등급과 등위로 매겨지는 상장들이 그것이다. 이런 식이다. 성적이 높으면 실력이 있다. 상을 받았으니 능력자다.


아이의 성적이나 점수가 부모의 경제력이나 가족(구성원)의 사회‧문화적 배경 조건 들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한다. 사회에서 진짜 필요한 능력과 실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은 별로 하지 않는다. 메리토크라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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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기획관은 1989년에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1992년에 고시에 합격했다. 그 중간에 군대 복무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4년만에 고시 합격증을 거머쥔 셈이다. 탁월한 ‘능력자’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1989년은 이른바 1980년대식 민주화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한 해다. 그런 해에 대학에 입학했으니 80년대 민주화 세대의 막내뻘이라 할 만하다. 고시를 준비하고 합격한 뒤 차근차근 교육 관료의 길을 밟을 수 있었던 배경에 당대 민주화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안정기가 가져온 혜택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


능력의 탁월함을 인정받아 교육 관료의 삶을 성공적으로 쌓아온 그가 이제 자신을 그렇게 만든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를 그렇게 만든 이 나라와 사회의 주인들을 향해 ‘개‧돼지’라고 조롱한다. 드디어 최상층 ‘1퍼센트’에 진입했으니 (이동 가능한 계급이 아니라) 고착적인 신분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외친다.

 

‘나향욱’은 우리가, 우리 사회가 만든 ‘괴물’이다. 고시충에서 승진충을 거쳐 관료충이 된 나향욱식 ‘괴물’이 너무 많다는 게 너무 우울하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다. 2009년 8월 교과부 교직발전과장 재직 시절 학습보조인턴교사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강연 모습이라고 한다. 이날 주제는 ‘놀랍게도’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교육정책’이었다고 한다. 사진은 <헤럴드경제>(http://media.daum.net/society/education/newsview?newsid=20160709104012224)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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