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Jul 13. 2016

1%가 99%를 이길 수 없는 조금 ‘특별한’ 이유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에게 보내는 편지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님께  

  

후텁지근한 장마철입니다. 안녕하신지요. 전북 군산의 조그만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는 교사입니다. 1980년대 후반에 대학에 입학해 교직을 이수한 뒤 2000년부터 교단에 섰습니다. 기획관님 나이가 48살이고 제가 46살이니 동년배라고 해도 되겠네요.


지난 7일 기획관님의 이른바 ‘취중 실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지 나흘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즈음의 엄청난 파장을 예상하셨는지요. 그렇지 않으셨을 겁니다. ‘사적’(교육부 대변인과 대외협력실 과장까지 배석했으니 마냥 ‘사적’ 자리라 하기 힘든 면도 있습니다.)인 술자리에서 내뱉은 말 몇 마디의 후폭풍치고는 솔직히 너무 거세 보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어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출석했더군요. 저처럼, 기획관님도 한 집안의 귀한 아들이자 믿음직한 가장이겠지요. 여느 날 같던 며칠 전 아침, 기획관님이 내뱉은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라는 발언을 신문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가슴이 떨리고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1%’인 국회의원들 앞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울먹이며 ‘해명’하는 기획관님 사진을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짠한 마음이 들더군요.


언론 보도를 통해 프로필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명문 중 하나인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더군요. 199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993년~2005년 사이에 부산시교육청, 교육부, 부경대학교에서 근무했습니다. 2005년에는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하셨지요. 그 해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로 국외 파견을 나가 2008년까지 3년간 체류하면서 고등교육 전공 박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의 이력입니다.


1989년에 대학에 입학했더군요. 그 뒤 1992년에 고시에 합격했으니 대학 4학년 때 고시 합격증을 거머쥔 셈입니다. 우리 같은 범인들의 눈에 탁월한 ‘능력자’로 보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기획관님 자신도 스스로를 능력자로 보았을 테지요. 그런데 최근 기획관님을 옥죄고 있는 이른바 ‘국민은 개‧돼지론’이나 ‘신분제 공고화론’의 근저에 이런 시각들이 깔려 있는 게 아닐는지요.


최고 학벌인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으로 기본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고시 합격으로 최고 능력자 인증을 획득했습니다. 이제 기획관님 눈에 ‘비스카이’나 ‘비고시파’는 ‘무능력자’, 곧 ‘개‧돼지’로 보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분제 시스템의 바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저는 기획관님 의식의 기저에 자리잡은 세계관이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와 “나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라는 발언에 응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언뜻 이들 발언은 모순적으로 보입니다. 운명론에 지배되는 신분주의 이념과 노력을 통해 1%가 될 수 있다는 계급론은 양립하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기획관님은 모순형용적인 이들 발언을 통해 내면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닐는지요. 이를테면 ‘1%가 되려고 노력하는 나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조만간 1%에 진입할 것이다(이미 진입했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때 나머지 99%는 개와 돼지 신분으로 살면 된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 세계관도 있을 수 있겠지요. 20대 초반에 고시에 합격해 승승장구하는 ‘엘리트’ 공무원의 삶을 살아온 배경을 놓고 보면 일견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각자가 품고 있는 세계관을 놓고 그 잘잘못을 따진다는 게 별로 바람직스럽지 않은 줄 알면서도 몇 마디 충심으로 전해드리고 싶은 말들이 있습니다.


책 한 권이 있습니다. <보보스>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뉴욕타임스> 기명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낸 <인간의 품격>이라는 책입니다. 지난해 연말, 평범한 듯 새삼스러운 삶의 통찰의 계기를 갖게 해 준, 매우 인상적으로 읽은 멋진 저작입니다.


저자 브룩스는 이 책에서 랍비 조셉 솔로베이치크가 <고독한 신앙인(Lonely Man of Faith>(1965)에서 나눈 인간(본성)의 두 가지 유형을 비중 있게 소개합니다. ‘아담 Ⅰ’과 ‘아담 Ⅱ’가 그것입니다.


브룩스에 따르면 아담 Ⅰ은 커리어를 추구합니다. 야망에 충실한 본성을 대표합니다. 이력서에 담길 덕목을 중시하는 외적인 아담으로, 무언가를 건설하고 창조하고 생산하고 발견하며 드높은 위상과 승리를 원합니다.


아담 Ⅱ는 내적입니다. 특정한 도덕적 자질을 구현하고 싶어 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내적 인격과 굳건한 분별력을 갖기를 원합니다. 선한 행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친밀한 사랑과 희생, 창조와 자신의 가능성을 귀하게 여기는, 내적으로 단단하게 결합된 영혼을 갖기를 열망합니다.    


아담 Ⅰ은 간단명료한 실용주의 논리를 따른다. 경제학의 논리다. 들어가는 게 있으면 나오는 게 있다. 노력을 하면 보상이 따르고, 연습을 하면 완벽해진다. (중략) 아담 Ⅱ는 이와 정반대 논리를 따른다. 경제학적 논리가 아니라 도덕적 논리인 것이다. 받으려면 줘야 한다. 자기 밖의 무언가에 스스로를 내맡겨야 내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 (중략) 자아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잊어야 한다.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을 잃어야 한다. 아담 Ⅰ의 커리어를 키우고 싶다면 힘을 길어야 하고, 아담 Ⅱ의 도덕적 고갱이를 성장시키고 싶다면 자신의 결함과 직면해야 한다. - 데이비드 브룩스(2015), <인간의 품격>, 부키, 7~8쪽.    


기획관님의 재직 부처인 교육부가 ‘파면’이라는 최고 수위 징계를 요구한다는 보도가 나오더군요.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진정한 1%에 들지 못해 이런 난관을 만난 것이라고 여기고 있을까요, 아니면 흔연히 과오를 인정하고 있을까요.


진정으로 바라건대 후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기획관님의 시선과 다를지 모르겠으나 99%를 이길 수 있는 1%는 없습니다. 그 1%가 힘이 부족하거나 완벽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브룩스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 인간 자체가 ‘뒤틀린 목재’, 곧 결함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동의하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인간이라는 뒤틀린 목재에서 곧은 것이라고는 그 어떤 것도 만들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뒤틀림’이 우리의 약점이자 숨기고 싶은 결함을 뜻하겠지요.


브룩스는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결함 있는 내면의 자아와 끊임없이 투쟁하며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겸손과 절제와 지혜라는 ‘고색창연한’ 덕목들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애롭게 마음을 달래 주는 반면, 자화자찬하는 사람은 취약하며 늘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입증해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만심에 빠진 사람은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이기심, 경쟁심, 우월해지고자 하는 욕구에 탐욕스럽게 허덕인다. - 위의 책, 31쪽.    


브룩스는 우리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본성에 있게 마련인 편견과 자만심을 어느 정도 극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어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인 “지적 겸손의 가장 완전한 의미”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그것은 “멀리서 바라본 자신에 대한 정확한 자각”이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아주 가까이에서 클로즈업해 보며 캔버스를 온통 자기 자신으로 채우는 청소년기의 관점에서 시야를 확대해 풍경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으로 삶이 이행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기획관님, 이 책에는 ‘뒤틀린 목재’ 8명이 나옵니다. 그들은 결함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내적으로 투쟁해 자존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들이 성취한 것보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기억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가시적인 성과와 업적에 매달려 있던 제게 큰 성찰의 실마리가 된 말이었습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각료였던 프랜시스 퍼킨스(Frances Perkins, 1882~1965) 전 노동부 장관의 이야기를 전하며 두서없는 글을 끝맺으려고 합니다. 퍼킨스는 “게으른 소녀에서 뉴딜의 막후 조력자로”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 제2장의 주인공입니다.


저자의 진단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는 ‘빅 미(Big Me)’, 곧 자기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자기탐구에서 시작해 자기성취로 끝나는, 자기에서 시작해 자기로 끝나는 방식입니다. 이때 삶은 일련의 개인적 선택으로 결정되겠지요. 이런 질문을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퍼킨스는 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물었다고 합니다. 삶이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나를 둘러싼 이 상황은 내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가? 기획관님은 지금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으십니까? <인간의 품격>이 방황하고 계실 기획관님께 귀한 길라잡이의 하나가 되길, ‘같은’ 시대 ‘다른’ 사회를 살아가는 동년배의 하나로서 진심으로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6년 7월 12일 전북 군산에서 어느 ‘뒤틀린 목재’가 씁니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뉴욕타임스> 기명 칼럼니스트이자 <인간의 품격>의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다. 인터넷 <동아일보> 사이트(http://news.donga.com/3/all/20110221/35012424/1)에서 빌려왔다.

작가의 이전글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사회의 ‘괴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