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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Nov 25. 2018

나는 자발적인 교사 연구 결사체가 좋다

2018 학교학회 집담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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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11월 24일) 오후 충남 천안교육지원청 1층 강의실에서 교사 집단연구 모임 학교학회 집담회를 가졌다. 함께하기로 한 이들이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수도권 일대에 첫 눈이 제법 소담하게 내렸다. 참가자들 모두 집담회 장소까지 오는 길이 두루 여의치 않았다. 예정 시각인 오후 1시를 넘겨 이야기하기를 시작한 우리는 5시 40분까지 4시간여 동안 열띤 대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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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담회에는 모두 10분의 교사님이 함께하셨다.      


충북 괴산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계시는 박** 교사님은 6년 간 육아 휴직을 한 뒤 올해 복직하셨다고 한다. 여전히 후진 학교 문화에 답답함을 느끼다 집담회 소식을 듣고 “좀 더 예리해지고 세련되어지고 싶어서” 오셨다고 했다.     


교직 12년차 중학교 국어 교사인 박** 교사님은 충북 청주에서 자율 휴직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올 한 해 쉬지 않으면 앞으로 교직 생활을 하면서 영원히 못 쉬게 될 것 같은 생각에 휴직을 결행했다고 한다. 학생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인, 감성 충만한 교사님이었다.     


광주에서 오신 배** 교사님은 89년 교직 입직 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태’로 해직되었다가 복직하신 파란만장한 이력의 소유자이시다. 후진 학교가 익숙하면서 늘 낯설고, 그 낯섦이 칼에 살갗이 베이는 아픔과 같다는 역설과 비유를 통해 오늘날 학교 문화에 대한 단상을 묘사해 주셨다.     


인천에서 오신 이** 교사님과 이** 교사님은 천안에서 가까운 한국교원대에서 교장, 교감 연수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 교장이나 교사라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다 보면 각자 이야기가 붙어 있는 줄기가 달라 터 놓고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바로 그런 것들이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 의사소통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3     


이날 집담회에서는 원래 7명이 주제 발표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서울 이부영 일놀이교육연구소 대표님이 합류하여 8명이 되었다. 이 중 6명이 미리 원고를 정리해 보내 주셨다.      


대전 동서초에 계시는 강정숙 교사님이 <우리는 왜 통제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첫 발표를 했다. 집담회에 오기 전 원고에 담은 내용을 놓고 후배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큰 지탄을 받았다고 했다. 후배들은 이야기의 요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비현실적이다 등등의 이유를 댔다고 한다. 그들은, 내가 보기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원고의) ‘비현실적인 대안’ 같은 제목에 이끌려 지레 그렇게 판단한 게 아닐까.     


강 교사님의 주장은 분명했다. 학생들을 통제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규칙과 법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것. 강 교사님은 발표 원고의 제목을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인가” 정도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소통의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학교 안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며,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 아래는 강 교사님의 원고에서 가져온 한 대목이다.     


“학교는 자연스러운 말을 거부한다. 학생들의 입말을 통제하고, 행동을 제약하며, 교사가 만든 통제 시스템에 모든 아이들을 구겨 넣는다. 지식을 가르친다는 미명하에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토의하며 치열하게 고민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중략) 교사는 학생들을 도와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학생들을 온전히 믿어 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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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 서화초의 안상태 교사님은 <누구나 의심해야 하는 7가지 언어>를 나눠 주셨다.(갑작스러운 집안 일정 때문에 집담회에 참석하지 못하셨다. 내가 대신하여 골자만 간단히 말씀드렸다.) 나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다는 안 교사님의 “허술한 글”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무릎을 치고, 가슴이 울컥해졌는지 모른다. “아이들을 싸 안는 옷 한 자락 같은 선생”이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철학도 출신 안 교사님의 한숨과 고함 소리가 그대로 들려 왔다.   

  

학교에는 ‘텅 빈’ 기표들이 많다. 그것들은 평소 교사들이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고 자연스럽게 쓰인다. 그런데 그것들은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순적이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며, 의미가 왜곡되어 있다. 그 공허한 언어들은, 안 교사님 표현을 빌리면 “학교 문화의 독(毒)”이다.     


안 교사님이 ‘의심’할 것을 주문한 말 7가지는 ‘실적’, ‘교장선생님’, ‘교육전문직’, ‘교원능력개발평가’, ‘출석인정’, ‘소프트웨어교육’, ‘혁신학교’ 들이다. ‘교장선생님’과 ‘혁신학교’ 꼭지에 특히 공감이 많이 갔다. 나는 ‘교장선생님’이 ‘교장님’으로 불리고, 교사들을 부르는 호칭이 ‘선생님’이나 ‘샘’이 아니라 ‘교사님’이 될 때(나는 이 글에서 ‘선생님’ 대신 ‘교사님’이라고 써 보았다.) 우리 사회에서 학교가 차지하는 위상이나 구실, 학교 문화의 적지 않은 부분이 바뀌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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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일놀이교육연구소 대표(전, 서울 강명초 교사)는 <초등학교 안 조형물에 나타난 교육>을 준비해 주셨다.(이 대표 역시 수도권에 내린 눈 때문에 함께하지 못해서 내가 대신 원고를 소개했다.) 학교 환경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는 학교 안 조형물들은 학교 분위기나 문화를 감지하게 하는 중요한 디딤돌이다. 민족 영웅 이순신 장군이나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버티고 선 교정 잔디밭과 알록달록 원탁과 나무 의자가 자연스럽게 놓인 잔디밭을 비교해 보라.     


환경이 학생을 가르친다! 존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사람을 달라지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 그것이 그의 진정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학교가 어떤 시각 환경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달라지게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막막했다. 다음은 이 대표가 10여 년 넘게 전국 초등학교에서 조사한 조형물들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 세종대왕 동상, 신사임당 동상, 독서하는 남매상, 독서하는 소녀상, 유관순누나상, 반공소년 이승복상, 단군상, 동물상(기린, 호랑이, 사자, 물개, 캥거루, 사슴 등등), 체력은 국력상, 남궁억선생상, 화랑상, 국민교육헌장 탑, 충효 탑, 새마을운동 탑, 명예의 탑, 홍익인간 탑,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탑, 시계탑, 각종 기념 탑, 스승과 제자상, 오줌 누는 소년상, 교가 비석, 공덕비, 노인 강령, 각종 기념 식수 비석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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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규율 신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제목의 원고를 발표했다. 전라북도 내 342개 중고교의 학교생활규정 전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생활규정의 이면에 숨은 학교 규율과 학생 훈육의 문제를 살폈다. 학교 분위기와 잠재적 교육과정, 학교 환경과 학생 훈육, 학교에서 규율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학교 규율의 역사적인 탄생 과정 등도 훑어 보았다.  

   

학교생활규정은 학교 규율 권력의 색깔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잣대다. 학생을 훈육하여 학교에 엄격한 규율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학생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데 핵심적인 수단으로 쓰인다. 나는 이와 같은 학교생활규정의 위상과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학교 문화가 규율과 훈육이 우리나라 학교교육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일제 강점기부터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나는 결론 장의 제목을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위하여”로 붙였다. 그리고 상호 대척적인 ‘관리 학교’와 ‘민주 학교’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민주적인 환경과 분위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였다. 학교 규율 문화의 통시적인 변천상과 실태에 대한 객관적인 조감이 차후 보완해야 할 과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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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 석현초에서 오신 지항수 교사님은 <학교 문화와 생태계의 변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처음 제목은 <문화 권력의 변화를 이끄는 문화 투쟁의 방향과 실천적 방책>이었다. 둘 모두 학교 문화의 변화 방향이나 원리를 모색해 보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을 말씀해 주셨다.      


지 교사님이 출발점으로 삼은 이야기는 목포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초등 지회장을 하면서 강고한 교장 카르텔 문화를 약화한 사례였다. 불행한 개인사로 끝날 수 있는 문제를, 당사자 ‘개인’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조직이나 집단이나 지역으로 확장해 풀면 큰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 교사님 사례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나는 지 교사님이 고프먼의 교육사회학이나 미시적 사회학 등을 끌어 와 ‘질서’에 관해 설명하는 대목에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두 사람이 모여도 질서가 만들어지며, 아주 작은 집단에도 거기만의 독특하면서 벗어나기 힘든 질서가 만들어진다는 점, 그런 질서 체계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를 미시적인 차원에서 고민하다 보면 실천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이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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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발표 꼭지는 강원 홍천 남산초에 계시는 배희철 교사님의 <학교 문화 연구 방향 모색>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올해 학교학회 집단 연구 주제의 총론적인 방향을 살펴본 글이다.(배 교사님은 첫 번째로 발표하기로 했다가, 눈길을 달리는 버스가 거북이걸음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늦게 도착해서 후반 끄트머리에 하셨다.)     


나는 ‘2014 핀란드 핵심 교육과정을 중심으로’라는 부제가 달린 배 선생님의 원고를 처음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학교생활규정에 숨은 규율 문제를 잠재적 교육과정이나 학교 환경과 분위기로 풀어 가고 있던 내게 큰 자극을 주는 내용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2014 핀란드 핵심 교육과정에서 ‘환경’과 ‘분위기’는 ‘학교 문화’를 이루는 5가지 요소 중 하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배 선생님은 입말 한 조각에서 의식의 소우주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학교 현장에 흘러 다니는 입말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과, 최종적으로 그러한 (입말) 낱말들에 그 자신의 뜻과 입장과 권력 의지를 담은 인간 주체들의 의식을 분석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어제 집담회에 미처 오시지 못한 김양선 선생님의 테마(“학교 권력의 계몽 언어들”)가 그런 작업과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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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발표는 강광훈 천안교육지원청 장학사가 해 주셨다. 강 장학사는 학교폭력과 생활지도와 안전, 인성 업무를 맡고 있다. 일을 하면서 답답함보다 안타까움을 많이 느낄 때가 많았는데, 그 안타까움을 덜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집담회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강 장학사는 학교폭력 언어들의 폭력적 측면을 고민하고 있었다. 학교폭력 사안을 다루다 보면 사소해 보이는 ‘언어’ 하나 때문에 단순하게 마무리할 만한 사안이 ‘사태’로 비화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초등 아이들의 숨바꼭질은 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적인 ‘감금’이 될 수 있다!  

   

강 장학사에 따르면 이해 당사자들 간 갈등 조정 모임이나 자치기구(학교폭력전담기구)를 통해 ‘학교장 종결’로 끝낸 사안을 ‘은폐, 축소’로 몰고 가 재점화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학교폭력책임(!)교사 일을 맡고 있는 나는 올해 학교폭력 접수대장에 40건 가까운 사안을 접수했는데, 그 중 90퍼센트 이상을 학교장 종결 사안으로 처리하였다. 강 장학사가 전해 주는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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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학회와 같은 자발적인 교사 연구 결사체(?)가 좋다. 우리는, 푹 쉬어야 하는 주말 시간을 반납하고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도 4시간 가까이 지친 기색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처음에 시간 일정을 더 넉넉하게 늘려 잡았다면 그 늘어난 시간만큼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자발성의 힘이리라.     


학교학회는 ‘교사 집단 연구 모임’이다. 바로 앞 문단 첫 문장에서는 ‘교사 결사체’라고도 했다. 굳이 이런 말을 쓰는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 온나라 학교들에서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라는 말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내 눈에는 ‘전문적’과 ‘학습’의 결합이 엉뚱해 보이고, ‘공동체’라는 아름다운 말이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강조하는 교육 당국의 삿된 욕망을 분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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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학회는 내년 1월이나 2월쯤에 집담회를 한 번 더 가질 계획이다. 1박 2일 일정까지 고려하고 있다. 학교 문화와 학교 언어에 관심 있는 분들의 동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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