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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Nov 21. 2018

“우리 쉽고 재미있는 책 읽어요.”

교사들의 책 읽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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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은 끔찍했다. 듀이는 20대 초반 잠깐 교사로 지낸 적이 있었는데, 연애보다 기숙사 방에 앉아 철학 책 읽기를 좋아했을 정도로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쓴 글이니 딱딱할 만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글을 재미없게 쓸 수 있을까. <민주주의와 교육>은 책(번역본) 분량도 어마어마했다. 585쪽!     


나는 요즘 <민주주의와 교육>을 다시 읽고 있다. 여전히 끔찍한 대목이 많지만 감탄과 놀라움의 순간을 적지 않게 경험하고 있다. 지난 여름 교육 ‘환경’이나 그 ‘분위기’에 대해 서술한 제2장(‘사회적 기능으로서의 교육’)을 보면서 깊은 깨달음을 얻은 기억이 생생하다. 듀이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을, 그 이면의 모든 것을 샅샅이 훑어내는 방식으로 치밀하고 어렵게 말함으로써, 당연한 것을 표면만 훑으며 쉽게 말할 때 경험하기 힘든 통찰을 내게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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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 안팎에서 교사 책 읽기 모임을 직간접적으로 꾸리는 일에 꾸준히 참여해 오고 있다. 교사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 교육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언젠가부터 책 읽기 모임을 가질 때마다 내 귀에 반복적으로 들려오면서 생각 가지를 치게 만든,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말이 하나 있다.      


“우리 쉽고 재미있는 책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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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늘날 교사 책 읽기 모임에서 나타나는 어떤 ‘경향’ 같은 것을 살피기 위한 것이다. 과문함 때문이겠지만 교사들은 책 읽기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을 정할 때 ‘쉽고 재미있는 책’을 선호하는 것 같다. 나는 이를 “‘쉽고 재미있는 책’ 읽기 편향 현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와 같은 경향의 배경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먼저 교사들이 모임의 구체적인 성격이나 활동 방향을 명확히 하지 않고 활동을 시작하려고 하는 데 중요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사들의 ‘쉽고 재미있는 책’ 읽기 편향 현상은 책 읽기 모임이 최초로 꾸려질 때 비교적 강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쉽고 재미있는 책’을 골라 읽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가. ‘쉽고 재미있는 책’부터 선정해 읽어야 책 읽기를 싫어하거나 주저하는 교사들이 마음을 열고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쉽고 재미있는 책’에서 재미를 본 교사들이 ‘어렵고 재미없는 책’에도 눈길을 돌리는 여유를 갖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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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일리 있는 말들이다. 그런데 나는 최초의 ‘쉽고 재미있는 책’ 읽기 편향 태도가 교사들에게 편독(偏讀) 증세를 강화하면서 그들 각자가 자신의 독서력을 강화하는 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쉽고 재미있는 책’에 빠진 교사들은 ‘어렵고 재미없는 책’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더 나아가 그들이 이전부터 ‘어렵고 재미없는 책’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쉽고 재미있는 책’ 편향 현상은 교사들이 ‘어렵고 재미없는 책’을 영영 접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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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 마라. ‘쉽고 재미있는 책’과 ‘어렵고 재미없는 책’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나. 쉽고 재미있으면서 의미가 있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헛소리를 하나. 책 읽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교사들이 책을 손에 잡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힐난하듯 말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맞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점을 조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쉽고 재미있는 책’ 읽기 편향 현상이 우리 사회 전체의 어떤 ‘징후’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주장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면 나는 그 징후의 이면에 거창하게 ‘반지성주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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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고리타분한 일이나 사람들의 진지한 자세나 이성적인 태도 들에 대하여 대체로 상당한 거부감을 보이는 것 같다. 진지하게 세상 일을 논하거나 사리를 분별하여 조리 있게 말하면 ‘꼰대’라며 조롱한다.   

  

오늘날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티브이와 인터넷 매체 등의 대중문화는 진지함과 재미없음을 개그의 소재로 활용한다. 그들은 그럴 만하다. 진지함과 재미없음은 가벼움과 화려함을 지상의 명제로 신봉하는 대중문화에게 위협적인 적군이 된다.      


한 사람이 티브이 속 즐거운 대화 자리에서 따분하거나 근엄한 태도를 보이면 뿔 난 시청자들에게 ‘진지충’이나 ‘씹선비’나 ‘불편러’ 같은 말을 듣는다. 웃음과 가벼움을 우습게 여기는 그는 마치 이 시대의 불온한 아웃사이더, 사회 부적응자, 현실도피형 외톨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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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태도다. 나는 교사들이 ‘쉽고 재미있는 책’뿐 아니라 ‘어렵고 재미없는 책’도 넉넉히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쉽고 재미있는 책’이 우리에게 의미와 통찰을 줄 수 있다면 ‘어렵고 재미없는 책’ 역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때로 ‘어렵고 재미없는 책’에서 더 깊고 넓고 큰 의미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렵고 재미없는 책’을 읽으며 진지하게 사색하는 사람들이 한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나는 적어도 그 소수의 사람들이 조롱 받지 않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믿는다.    

   

영국의 인문사회학자 리처드 호가트가 오늘날 문화연구 분야의 고전 중 고전으로 평가받는 <교양의 효용>(2016, 오월의봄)에 남긴 ‘진지한’ 말 한 마디로 이 ‘진지하고 재미없는’ 글을 끝맺자.     


“나는 이 진지한 소수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들은 언제나 공부하려는 마음가짐을 갖춘 사람들이며, 대체로 퇴근 후 혹은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학습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모습이 종종 왜곡되어 그려지긴 하지만, 이들이 지식의 힘과 미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4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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