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의 학교 민주주의 지수 ‘실험’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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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점. 경기도교육청이 2015년 11월 16일부터 경기도를 A권역과 B권역으로 구분해 실시한 ‘학교 민주주의 지수’ 조사 결과다. 질적・정성적 차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를 정량적인 ‘숫자’로 표시하는 일이 학교 민주주의의 실상을 과연 얼마나 드러낼 수 있을지 솔직히 의구심이 든다. 그럼에도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공교육을 책임지는 교육청이 학교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평가와 성찰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 아니할 수 없다.
학교 민주주의 지수는 자율과 자치 중심의 학교문화 구현을 위해 단위 학교의 문화(생활양식), 구조(제도), 민주시민교육(실행)을 진단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졌다. 이를 활용해 경기교육청이 지난해 경기도 전체 지역 학생과 학부모와 교원 37만여 명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했다. 조사 전후로 이런저런 잡음이 없지 않았으나 경기도 내 교육 주체들에게 학교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크게 환기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평가한다.
학교 민주주의 지수 산출을 위한 주요 지표 체계는 3영역 9개 중분류(아래 가~다)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등학생 고학년용 39개, 중고등학생용 41개, 학부모용 39개, 교원용 44개, 교직원용 29개 지표를 선정했다.
가. 학교문화: 민주적 가치체계의 형성과 공유, 민주적 소통과 수평적 관계 맺기,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나. 학교구조: 학교 민주주의를 위한 인적, 물적 자원과 토대, 민주적 리더십 구축하기, 민주적인 의사결정 체제 구축하기
다. 민주시민교육 실천: 교육과정 속에서의 민주시민 역량 함양, 학교생활 속에서의 민주시민 역량 함양, 학교 안과 밖의 연계를 통한 민주시민교육
학교 민주주의 지수 개발의 방향과 기본원칙과 관련하여 경기교육청이 초점을 맞춘 지점은 “학교의 민주적 재구조화”[장은주 외(2015), <학교민주주의 지수 개발 연구(Ⅱ)>, 경기도교육연구원, 45쪽.; 아래 ‘연구(Ⅱ)’로 지칭함.]였다. 학교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가치와 원칙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인권’, ‘자기-지배’,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 들이었다.
연구(Ⅱ)는 인권을 “민주주의의 필수적 전제이자 최우선적 가치”로 규정한 뒤 2가지를 강조했다. ▲ 민주적 학교는 학생의 인권을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최대한으로 보장해야 한다 ▲ 학교의 제도와 교육 활동이 학생(및 학부모)들을 부당한 지배의 관계(억압/배제/낙인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제반 권리를 보장하고 배려해야 한다 등이다. 민주적 학교에서 이러한 인권 원칙을 살리려면 강제적인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 학생을 수동적인 객체로 보면서 관리하고 통제하는 학교 내의 다양한 습속과 기제를 손볼 수밖에 없다.
자기-지배는 모든 시민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의사결정의 과정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자치의 원칙, 참여의 방식과 관련된다. 연구(Ⅱ)는 학교를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민주적 삶의 양식이 경험되고 실천되는 장소로 보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공정한 절차가 준수되고 다양한 주체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 관점 등이 검토, 고려, 청취, 배려되는 관계가 일상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학급 및 학교 전체 차원의 자치활동 시간 보장, 규율 제정 과정에서의 학생 참여 보장, 가능한 수준에서의 ‘학생참여예산제’ 보장 등을 강조한다. 특히 자치로서의 민주주의 원칙이 학교 운영의 일반 원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학교는 관리자(사학의 경우 재단)의 전제 영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장과 교감은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민주적 ‘대표자’로 이해되어야 하고, 모든 이해당사자(교사/학생/학부모 포함)에 의한 숙고에 따라 필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통제하고 지시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지지하고 격려함으로써 조직의 활성화를 꾀하는 수평적 리더십이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 한 마디로 권한을 공유하는 리더십이어야 한다. - 연구(Ⅱ), 47쪽.
연구(Ⅱ)가 주목한 마지막 원칙은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를 하나의 정부 형식, 지배의 형식으로서뿐 아니라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학교는 민주주의적인 삶의 양식을 경험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의사결정이나 지배의 형식과 관련된 외형적인 제도적 장치 같은 것만 아니라 학교 안의 모든 교육의 과정과 생활에서 ‘존엄의 평등’, 상호 인정, 포용, 배려, 연대 등과 같은 민주적 가치, 그리고 그에 따른 민주적인 태도와 관계 맺기가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연구(Ⅱ)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학교 문화’를 매우 중시한다는 점이다. 연구(Ⅱ)는 학교를 하나의 ‘정치공동체’로서보다 “일상적으로 민주주의를 살아내는(living democracy) 작은 공동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학교 문화를 민주적인 가치와 삶의 양식의 실현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본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학교 문화를 돌아본다. 아이들과 교사들은 “일상적으로 민주주의를 살아내는 작은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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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인권. “일상적으로 민주주의를 살아내는 작은 공동체”를 위한 기본 전제다. 오늘날 620여만 명의 학생들이 제대로 된 인권을 누리고 있을까. 학생들이 학교 문화의 중심이자 주체로 서 있을까.
학생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동적 주체가 아니다. 가령 방과후 학습이나 (야간) 자율학습은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 ‘선택권’이 있어도 명목으로만 존재한다. 학교의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담임 교사가 ‘강제’와 ‘필수’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2000년대 이후 학생 인권을 강조하는 전반적인 추세로 인해 교칙에 체벌 허용 규정을 갖고 있는 학교가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체벌 금지 규정이 명시적으로 있는 학교는 드물다. 공공연히, 혹은 은밀하게 다양하고 교묘한 형태의 체벌이 살아있는 이유다.
용의 복장 문제는 단위 학교에서 학생들의 자기 결정과 자기-지배 정도를 가늠하게 하는 핵심적인 척도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머리 길이와 모양에 대한 세세한 제한 규정이 있는 학교가 많다. 교복 착용 시기마저 규칙으로 존재한다. 양말, 스타킹, 신발, 외투, 장신구, 화장 등에 관한 규정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겨놓고 있다.
사생활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 자치 활동, 표현의 자유, 징계와 상벌 들에서 학생 인권에 반하는 규정들이 온존해 있다.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함으로써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습관을 그리기 힘들다. 양심에 반하는 내용에 대한 반성이나 서약 등을 ‘반성문’이나 ‘서약서’의 형태로 강제 진술하게 한다.
학생 중심 학교 자치 활동의 핵심 조직체인 학생회에 대한 시선을 보자. “자치 능력의 배양으로 민주 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게 하자는 목적에 불구하고 학교(장), 학생부(장)의 ‘전위 조직’으로 전락해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기총회와 같은 전체 회의가 학교장 승인에 따라 이루어진다.
학생회 회원인 학생이 휴학 중이거나 징계・선도 처분을 받고 있으면 회원 권리가 제한된다. 정당 가입, 정치적 목적으로 설립된 사회단체 가입이 금지되며, 정치 활동을 일체 금한다. 전시,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효력 및 활동이 정지된다는 ‘1960년대’ 식 무시무시한 규정도 있다.
징계와 상벌 규정만큼 학생들이 ‘대상화’하는 부문이 없다. 교사와 교직원에게 언행이 불손하거나 불경하거나 불량한 학생은 징계를 받는다. 교사에 대한 불손한 반항이나 지도 불응 역시 최소 ‘주의’에서 최고 ‘출석정지 및 전학’ 등의 징계 처분 대상이 된다. 불손과 불경과 불량의 ‘기준’은 어른(교직원) 입맛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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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점. 절반인 50점보다 높으니 형편 없는 점수가 아니라고 보아도 될까. 확신하기 힘들다. 71.4점의 의미를 ‘해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점수에 따른 상대적인 ‘해석표’가 있을지 모르겠다. 있더라도 과연 얼마나 엄격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
궁금한 점이 또 있다. 경기도를 제외한 나머지 16개 시도교육청에서도 이와 비슷한 점수가 나올까. 장담하기 힘들다. “일상적으로 민주주의를 살아내는 작은 공동체”의 삶을 보장하는 학교, 그런 공간에서 인권과 자기-지배의 정신을 바탕으로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심스러워서다.
교육 주체들의 의식과 태도의 변화만으로 교육이, 학교가 변하기는 힘들다. 제도와 정책의 뒷받침 없이는 개혁과 변화 노력이 공염불에 빠질 공산이 크다. 칸트의 말을 빌려 보면,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경기교육청의 학교 민주주의 지수 ‘실험’이 실험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 학교 민주주의 문화와 제도를 확산・발전시키는 데 귀한 들무새가 되었으면 좋겠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다. 다음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A7%88%EB%88%84%EC%97%98_%EC%B9%B8%ED%8A%B8)에서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