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헌법의 풍경》(2011, 교양인)을 읽으면서 ‘리갈 마인드(legal mind)’를 비판적으로 살핀 대목을 인상적으로 보았다. 리갈 마인드는 법률가들의 직관적이거나 주관적인 법 감각을 뜻한다. 김 교수의 취지는 리갈 마인드가 법률가들의 주관적인 가치 판단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쓰이는 것을 경계하자는 데 있었다.
법률가들은 엄격한 선발 절차와 수련 과정을 거쳐 법률 현장에 입문한다. 높은 자존감으로 무장하고 있어 스스로 무오류주의자를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리갈 마인드는 법률가들의 그런 ‘자뻑’ 경향을 강화할 수 있다. 나는 김 교수의 비판을 이런 차원에서 이해했으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공감이 많이 갔다.
물[氵]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듯[去] 만들어진 게 법(法)이다. 그리고 이법위인(以法爲人)이라고 했다.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법률가는 인간 세상의 상식과 보통 사람의 삶을 헤아리면서 법을 다루면 된다. 고유의 법률적 직관이나 감각을 따로 설정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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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 마인드를 기억 창고에서 다시 꺼낸 것은 요며칠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마련한 인권교육 직무연수에 참여하게 되면서였다. 첫날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 계시는 선생님과 잠깐 대화를 나누다 ‘리갈 마인드’가 떠올라 몇 마디를 건넸다.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처럼 군림하는 검찰의 행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이었다.
그런데 리갈 마인드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책에 관한 기억을 소환해 비판적으로 발설한 탓이었을까. 연수 내내 강사들과 동료 연수생 사이에서, 무엇보다 내 입에서 자주 나온 ‘교육적’이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인권을 ‘교육적으로’ 바라본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권 문제는 ‘교육적인’ 문제입니다.” “<학폭법>은 학교폭력을 ‘교육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게 하는 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징계든 생활교육이든 그와 관련된 모든 절차와 과정에서 ‘교육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두가 ‘교육적’이라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썼다. 자문해 보았다 ‘교육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상식에 준하면 되지 따로 ‘법률적(legal)’인 것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나의 비판적 공감의 논리가 타당하다면 저 문장들 속의 ‘교육적’이라는 말 역시 그와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교육적인 마인드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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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복도를 지나가던 한 학생이 복도 한쪽에 세워져 있던 쓰레기통을 발로 차 쓰러뜨렸다. 그 바람에 쓰레기통에서 쓰레기가 흘러 나와 복도에 좍 퍼졌다. 우연히 교무실에서 나오던 교사가 그 광경을 보았다. 쓰레기통을 발로 차 쓰러뜨린 학생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교육적인’ 생활교육일까.
보통의 교사라면 호된 꾸지람 몇 마디를 건넨 뒤 쓰레기를 원래대로 쓰레기통에 주워 담으라고 하는 정도로 마무리할 것이다. 학생이 이유 없이 쓰레기통을 발로 찰 리 없으므로 차분하게 이유를 묻고 대답 여하에 따라 위로나 조언이나 훈계를 한 뒤 쓰레기를 주워 담게 할 수 있다. 혹은 학생에게 다시 쓰레기를 주워 담게 하는 것은 체벌일 수 있으므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학생을 지도한다.
요즘 한국 교사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몽둥이나 회초리로 학생을 훈육하는 교사들도 있겠다.) 세 번째 유형은 덴마크에서 학생 체벌 이슈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됐던 사례라고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어떤 것이 ‘교육적’인가. 복도 쓰레기통 사안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학교에는 교사의 ‘교육적 마인드’를 시험하는 사례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학생 몇 명이 학교 밖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다 인근 주민에게 발각되었다. 주민이 학교에 자초지종을 ‘신고’했다. 몇몇 학생들이 특정되었다. 이들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교육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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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쓰레기통 사안의 처리 유형에서 ‘몽둥이 훈육법’은 ‘교육적인’ 것의 목록에서 제외하자. 나머지 처리 유형에 대해서는, 내가 그것들을 ‘교육적인’ 접근 방식에 포함하더라도 여러분이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 유형에 대한 적극 찬성과 소극 찬성, 호오의 정도 차이 등은 있을지라도 말이다. ‘교육적’이라는 말은 수준이나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일까.
많은 사람이 교육을 말하면서 철학, 원칙, 본질을 강조한다.(실제 교육이 ‘현실 논리’에 따라 굴러가지 않는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하자.) 아마 그것들은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공통적으로(또는 암묵적으로) 합의한 교육의 좌표 구실을 할 것이다. 그런 교육의 후보 표현 목록에 ‘공교육’, ‘민주시민교육’ 같은 말들을 집어넣을 수 있을 것 같다. ‘교육적인 마인드’를 이들에 기대 이해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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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갈 마인드는 비판적으로 보면서 교육적인 마인드는 우호적으로만 보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고 비난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리갈 마인드의 의의나 쓰임새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 리갈 마인드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법률가는 분명 문제지만, 리갈 마인드는 전혀 도외시한 채 상식으로만 법률을 다루는 법률가 역시 신뢰를 주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법률이든 교육이든 상식으로 처리할 수 있거나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섬세한 ‘법률적‧교육적 마인드’가 필요한 일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교육적인 마인드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섬세하게 다듬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
* 본문에 예시한 ‘복도 쓰레기통 사안’은 이번 연수의 마지막 강의 일정을 이끌어 준 허창영 광주시교육청 학생인권 구제 담당자의 연수 자료에 실려 있었다. 이 문제가 체벌과 관련하여 덴마크 사회에서 논란이 된 뒤 어떻게 결론이 나왔는지 물었는데, 후속 언론 보도가 없어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도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는데, 특별히 참고할 만한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알고 계시면 댓글로 남겨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