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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31. 2020

신진화전(薪盡火傳)

교사의 공적 소명 의식에 대하여

1


교사로 살면서 내적 성장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일을 마주치기란 무척 어렵다. 학교 문화 자체의 보수성과, 학교 조직의 운영 기반이 관료주의와 효율적인 관리 기법에 따르는 현실 탓이 크다. 그런 현실에서나마 교사에게 성장과 변화의 경험을 안겨주는 주체들이 있다. 학생이다.


나는 위 문단 마지막 문장의 서술어에 있는 명사 ‘학생’을 폭넓게 정의하고 싶다. 더 솔직하게 말해 보라고 한다면 ‘학생 모두’라고 바꾸겠다. 교사들은 대체로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이끄는 학생을 공부를 아주 사랑(?)하거나 아주 싫어하는 두 부류로 나누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들 두 부류의 학생은 각기 다른 배경과 이유 때문에 교사를 시험(?)에 들게 할 가능성이 높으며, 역시 상이한 방법과 과정을 통해 교사가 자기 자신을 바꾸게 한다. 지적으로 게으른 교사는 자기를 연찬하고, 인격 도야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교사는 스스로를 성찰적인 삶으로 이끌어 간다.


2


《명예, 부, 권력에 관한 사색》이라는 고리타분한 제목의 책{*주}을 읽다 ‘신진화전(薪盡火傳)’이라는 낯선 한자어를 만났다. 장자가 말했다는 이 한자어는 스승이 제자에게 자기 학문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불을 전하려고[火傳] 땔감을 다 쓰듯[薪盡].


교사가 올바른 교육을 향한 소명(‘사명’이라고 해도 되겠다.)이나 자기가 맡은 교과(과목)에 대한 열정을 품고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의 ‘올바름’을 한두 마디로 명쾌하게 정의하기 힘들고, 교과에 대한 열정은 때때로 교사에게 지엽말단에 집착하는 꼰대나 협량한 전문가 이미지를 안겨 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땔감을 태우기는커녕 전하려는 불조차 제대로 품으려 하지 않는다.


3


교사는 부와 권력을 화수분처럼 쏟아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철밥통 교사’니 ‘학생들에게 군림하는 권력자’니 운운하며 조롱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학교를 발명한 인류 사회가 교사들에게 부과한 책임은 자신이 가진 땔감을 다 써서라도 학생들에게 불을 전하고야 말겠다는 집념과 의지를 발휘하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다만 그 불은 인류의 공공적 발전과 흥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겠다.



{*주} 제목은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책 내용은 아주 좋다. 인류의 자본주의 역사와 정치사에서 굵직하거나,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사건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종횡무진으로 들려 주면서 진정한 명예를 복원할 것을 외치는 저자의 꼬장꼬장한 기백이, 나는 무척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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