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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16. 2024

멀고 먼 거리

1


용담은 작년 초겨울 아내와 함께 화원에 가서 처음 만난 꽃들 중 하나였다. 우리는 진해서 더 화려해 보이던 파랑 색깔의 용담을 보자마자 두 손에 번쩍 들었다.


이미 꽃이 피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따로 특별하게 관리하여 꽃을 피우거나 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서 좋았다. 꽃은 보름을 훌쩍 지나도록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이렇게 기특한 꽃이 있을까 싶었다.

2


작년 연말께였다. 이런저런 일로 번다한 나날을 보내다가 한동안 물을 주지 못했다. 그제서야 물은 2주에 한 번 정도 주면 된다던 화원 주인의 말이 퍼뜩 떠올랐다.


물을 만나지 못한 용담의 모습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형형했던 청색 꽃잎이 이미 거무튀튀한 갈색으로 변했다. 기름을 칠한 듯 윤기 나고 생생했던 잎들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고사할 것 같았다.


나는 부랴부랴 용담 화분을 쪽마루로 옮겨 물을 잔뜩 뿌려 주었다. 제발 살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듯 오 분여를 지났을까. 용담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와 비슷한 식겁한 일은 몇 번 더 있었다. 물 주는 주기를 2주로 말해 준 화원 주인만 믿고 있다가 예의 잎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목숨이 경각에 달린 듯이 시무룩하게 있던 녀석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부랴부랴 물세례를 주었다.


3


몇 번 호들갑을 떨고 나서야 용담이 평소 물을 많이 먹을뿐더러 무척 좋아하는 식물임을 알았다. 그렇다기로소니 물을 주자마자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나를 호기롭게 바라보는 재롱과 재치와 의기를, 나는 다른 식물들에게서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언뜻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용담을 보며, 나는 내 무심과 방관에 금방 풀이 죽어 있다가 내게서 조그마한 시선을 받자마자 온갖 생명의 기운을 잔뜩 안겨 주는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4


지금 우리들 사이에는 너무나도 멀고 먼 거리가 있다.


[덧붙임] 본문 행간에 있는 사진이 우리 집에서 키우는 용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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