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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an 02. 2024

작심삼일(作心三日)의 의미론

2024년 1월 담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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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담임입니다. 청룡 해라는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용만으로도 상서로움이 가득한데 푸른 색깔의 용이니 그 상서로움과 영험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올 한 해 가정 안팎에 상서로움과 영험함이 내내 이어지길 빕니다.


2


2023년 한 해 동안 ‘담임 편지’라는 제목으로 모두 9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학급 담임이 학급 학생의 학부모나 보호자에게 편지를 전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닙니다. 이런 유의 편지가 담임이든 학부모·보호자든 편한 마음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각자의 세계관이나 교육관이 상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제 시선이나 관점을 일방적으로 담아 전달하는 일이 한편으로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 해 동안 꾸준히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은 학부모·보호자님들의 한결같은 응원과 지지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마지막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물론 학부모·보호자님들께서 제 관점과 철학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하신 것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의 학급 운영 관점이나 방법에 동의하기 힘들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더 자유롭고 솔직한 소통의 장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혹여 제가 현재의 1학년 학생들을 2학년 진급 후에도 만나고 학년 담임을 맡게 된다면 더 적극적이고 솔직한 상호작용의 장을 꾸려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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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우리 반 수업이 있었습니다. 막바지 수업이어서 한 해 수업을 정리하는 ‘수업 평가’ 활동을 했습니다. 2023년 두 학기 동안 공부한 국어 과목에 대해 자신의 성취 수준을 학생 스스로 평가해 보고, 두 학기 전체 18개 소단원을 돌아보면서 인상적이었거나 어려웠던 단원, 배우고 나서 특별한 의미를 찾았거나 보람을 느꼈던 단원들을 이유나 근거와 함께 선정해 써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학년 때 접했으면 하는 국어 수업의 방향이나 방법에 관한 의견도 정리하게 했습니다.


토의나 면담 등 직접적인 활동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단원에서 재미를 느끼고 의미를 찾은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45분 내내 조용히 책을 읽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특별한 의미와 보람이 있는 수업으로 꼽은 학생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평가지에 쓴 내용은 새 학년도 국어 수업의 방향과 방법을 고민하는 데 귀한 참고 자료로 활용하면 의미가 커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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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한 해 수업을 마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때마다 이런저런 소회에 젖습니다. 괜찮았다고 자부하는 수업이나 특별한 의미와 보람을 느낀 장면보다 아쉽고 부족했던 시간이 먼저 떠오릅니다.


학생들은 저와 달랐으면 합니다. 학생들이 보기에 아쉬웠거나 부족했던 수업이나 활동이 없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렵고 싫었던 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묘하게도 우리 삶은 아쉬움과 부족함, 어려움과 싫음의 경험을 계기로 변화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실패와 실수조차 삶을 살아가는 데 귀한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에 동의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우리 1반 학생들이 아쉽고 부족하고 어렵고 싫었던 시간을,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낯설거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긍정적인 차원의 것으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교육의 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과 발전이 감정의 진통과 이성의 동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5


해마다 새해 즈음이 되면 사람들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을 즐겨 말하고 듣습니다. 작심삼일이란 말은,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꼭 그렇게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가 ‘삼일’보다 ‘작심’이라는 말에 눈길을 더 준다면 작심삼일에 조금 새로운 의미를 덧붙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심이라는 말은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작심하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작심의 결과가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마련하거나 펼쳐나가는 데 밑절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작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 전반을 살피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상호 대비해 가면서 조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는 상당한 수준의 종합적 사유를 전제로 합니다. 천천히 작심하는 시간이 우리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유의미한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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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작심삼일이라며 지레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심의 결과로 나온 어떤 계획이나 다짐을 3일에서 5일과 1주일로, 1개월에서 1년과 10년으로 확장하여 실천하는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단단한 작심과 꾸준한 실천을 함께하는 겨울방학을 맞이할 수 있도록 댁에서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짓고 베풀고 받는 시간 꾸려 가시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4년 1월 2일 화요일

1학년 1반 담임 정은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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