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체류자
11월 어느 날 집주인 마가레타-성씨가 곰을 뜻하는 뵨(björn)과 산을 뜻하는 베리(berg)를 합친 뵨베리였고, 그녀 집의 와이파이 이름은 Nallekulle, 즉 스웨덴 아동의 언어로 '곰산'이었다-보낸 한통의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아파트에 발코니를 설치할 예정이고 해당 기간에 아파트에 거주할 순 있지만 나의 불편함을 감안하여 월세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메일 말미에는 내년 봄에 발코니를 갖게 되니 멋진 일이 아니냐는 말을 덧붙이며...
내가 월세를 살던 집은 1960년대에 지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7층짜리 아파트였다. 아파트라고 하지만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빌라라고 보는 게 더 유사했고, 1개 층에 있는 6가구의 공간 구성이나 면적이 각기 달랐다. 잘 모르던 사실이었는데 이웃이 집을 팔기 위해 부동산에 경매로 집을 내놓고 비즈닝(visning)이라 불리는 입찰자를 위한 집 공개를 안내하려고 엘리베이터에 붙여놓은 집 사진을 보고 내 원룸과 다른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파트 현관의 자동도어락-각 가구 현관문은 철저히 도어락이 아닌 열쇠를 고수한다-최신형 엘리베이터, 한 겨울에도 우수한 단열성능을 자랑하던 창호.. 내가 살기 전부터 많은 수선을 했음이 분명한 이 집에 또 발코니를 설치하게 되는 것이고, 그게 어떻게 거주와 양립이 가능한 작업인지 무척 궁금하였다. 물론 낯선 작업자들이 나의 공간에 드나든다는 불안감이 다소 있었지만...
모든 작업일정은 현관문에 있는 우편물용 개구부를 통해 전달되었다. 열쇠를 아파트 조합 우체통에 넣어놓으면 공사기간 중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인부들이 수시로 집을 드나드는 방식이었다. 하루는 라디에이터를 떼어놓고 간다든지, 더 짧은 라디에이터를 설치하고 비어버린 벽에 발코니로 나가는 문을 설치한다든지, 아파트 외벽에 발코니를 매어단다든지 하는 것들이 작업의 내용이었다.
간단한 작업을 하는 시기에는 작업자들이 드나드는 시간에만 왕립도서관에 가서 보고서를 쓰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본격적으로 벽을 뚫고 발코니를 메어달던 시기에는 마가레타가 보내준 절반치의 월세를 밑천 삼아 따뜻한 이탈리아로의 외출을 하기도 했었다. 스웨덴의 모든 근로자가 행복할 수 있는 근간은 결코 빠르지 않은 작업과 절차이다. 11월에 시작한 발코니 공사와 자그마치 석 달을 동거한 끝에 나는 '봄의 발코니'를 갖게 되었다. 계속...
사진: 봄의 발코니가 탄생하는 과정. 총 작업 기간은 길었지만 과격한 공정은 또 나름 인텐시브하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