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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Apr 01. 2017

위로가 먼저다

실패보다 위로받지 못해 망한다

그가 왔다. 오랜만의 저녁이다. 모셨던 직장상사. 2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만나 옛일을 되새기고 웃고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힘들었던 지난 몇 개월간의 일에 대해 말했다. 법은 법이라 소송엔 졌지만 잘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다 잊어버리라고. 동의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를 뽑은 건 너니 너 탓이 아니냐고 했다. 역시 동의되지 않았다. 그럼 항상 내 잘못이고 내 탓이 될 것이었다. 배신감과 일련의 사건으로 안간힘을 쓰고 버티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서운했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뽑은 것 맞지만 그렇게 행동할 줄 어떻게 사전에 알 수 있냐? 잘 근무하다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돌변하는 것을 무슨 수로 사전에 알 수가 있겠냐?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 아니냐? 그리고 잘못은 그가 했는데 내 탓이 웬 말이냐?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내가 결정하고 판단할 일이다. 나 스스로 용서는 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내가 그를 용서하는 것이지 내가 잘못했다고 나를 자책하며 나를 용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는 공허하게 들렸다. 그로부터 필요한 것은 옳고 그름의 충고가 아니었다. 사과는 더욱 아니었다. 나는 위로가 필요한 거였다.


힘든 삶의 여정에서 사람은 실패 그 자체로 망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실패를 위로받을 사람이 없을 때, 그때 망하는 것 같다.


<위로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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