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깨어 화장실을 다녀오고 시계를 보니 02:39.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그런데 문득 행복하다고 느낀다.
골프공과 아들은 살아만 있으면 된다고 하던데 그 아들 둘이 모두 잘 지내고 있어서, 사랑하는 아내가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자고 있어서, 고향 계신 부모님이 보내드린 단감이 맛나다고 알려주며 잘 지내고 계셔서, 미국에서 주문받은 오더가 우여곡절 끝에 고객이 만족하다는 이메일이 내 받은 편지함에 한자리 딱 차지하고 있어서, 내 지금 있는 안방이 아늑하고 따뜻하여서.
이런 저런 여러 일들이 고만고만 고만하다. 톨스토이 안나까레리나의 첫 문장이 생각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Leo Tolstoy at “Anna Karenina”
중요한 조건들이 어느 정도 골고루 갖추어져야 비로소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 딱 그런 행복감이랄까. 김창옥 교수가 어느 강의에서 얘기한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그 많은 시간 거쳐서 여기까지 잘 왔다.”
앞으로도 여러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여기까지 좌절하지 않고 버티고 버틴 나에게 딱 하고 싶은 말이다.
<기문아, 여기까지 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