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파견 계약직 2년, 그리고 또 2년
매일 1등 하는 사람과 살다 보니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언니와 나는 이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말한다. 두 살 터울의 나의 언니는 똑똑한 두뇌를 갖고,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자기 관리가 철저하니,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시험 기간에 함께 독서실에서 새벽 2시까지 똑같이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도 우리 둘의 성적 차이는 분명했다. 그런 학창 시절을 겪고, 열심히 공부한 언니는 소위 SKY 대학 중에 본인이 가고 싶어 하던 대학교에 진학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향은 언니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살짝 추측해 본다. 그리고 새벽 2시까지 똑같이 공부를 해도 우리 둘의 성적 차이가 분명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언니는 목표 의식을 갖고 공부했지만, 나는 그냥 했던 것 같다.
나는 언니가 수험생의 신분으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했는지를 알았다. 그래서 언니의 합격 소식에 나도 함께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내심 부모님의 기대가 내게는 높지 않음에 안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중간만 하자는 생각을 하며 대학 수학 능력 시험 보는 것에 대한 큰 부담감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2008년, 처음 마주한 진로 선택의 길에서 갈림길을 만나다
그리고 2008년 대학 수학 능력 시험 결과가 나오던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의 진로를 위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순간이 왔다. 그 갈림길에서 선택을 한다는 것은 차선책 중 그나마 나은 최선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스로 남들보다 노력을 크게 하지 않았으니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차선책 선택지는 등록금이 타 시립대학교에 비해 적게 들어가는 2년제 시립 전문대학을 가느냐, 통학하기엔 거리가 있는 지방의 4년제 대학교에 가느냐였다. 당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이렇다 할 꿈이 없던 시기라서 한 번에 정하기 쉽지 않았다. 그때 가족들은 내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4년제 대학교 가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알지도 못하는 대학교 나오느니 그냥 집 가까운 전문대학 가서 공무원 시험이나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순순히 그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공무원 시험을 볼 목적으로 2년제 전문대학의 행정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1학년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1학년 학기가 끝나갈 때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1년의 휴학 기간 동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빠른 포기를 했다. 포기한 이유는 공무원이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내 용돈은 내가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 아르바이트도 함께 병행했기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복학 후 빨리 졸업해서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간 첫 직장에서의 2년
나의 첫 직장으로의 취업을 떠올리면 옛날 속담인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 속담은 '자기는 하고 싶지 아니 하나 남에게 끌려서 덩달아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의미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복학해서 함께 수업을 듣던 같은 과 친한 친구가 학기 중에 먼저 취업을 했다. 친구에게 어떻게 취업이 가능했는지 물어봤다. 친구는 자신이 취업하게 된 과정을 알려줬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고용 형태 중에 '파견 계약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당장 졸업을 앞두는 상황이 코앞에 오자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급하게 취업 포탈에서 우연히 발견한 친구가 들어간 회사의 '파견 계약직'으로 취업을 하게 됐다.
첫 직장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은행의 영업점에서 모이는 서류 중에 반송이 필요한 미비 서류를 문서고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내가 맡은 일의 성격을 본다면,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면 간단하게 사무보조 업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맡은 일의 중요도가 비교적 낮았기에 야근할 필요성은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완벽한 나의 워라밸이 지켜졌던 시기이다.
첫 직장에서의 2년은 대기업의 체계적인 시스템과 조직에서 회사 생활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한 경험이 쌓이는 시간이었다.
쉬는 건 죄악, 주말 이틀 쉬고 이직한 회사에서의 2년
파견 계약직의 계약 기간은 2년이다. 2년 계약 기간의 끝이 3개월 남았을 때였다. 점점 또 마음이 불안해졌다. 계약 기간이 끝나서 회사를 그만두고 쉰다면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때 취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보다가 전산회계 자격증을 취득하면 취업이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 당장 학원에 가서 수강 등록을 했다. 그리고 평일에는 회사-학원-집, 주말에는 도서관을 다니면서 3개월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첫 직장에서 그만두고 바로 갈 수 있는 회사를 알아보다 보니, 이직할 회사도 파견 계약직이었다. 하지만 첫 직장에서의 파견 계약직과는 성격이 달랐다. 파견 계약직으로 2년이 아닌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파견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는 고용 형태였다.
첫 직장이 있던 곳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또 다른 회사였다. 그때, 첫 직장에서의 퇴사 일이 금요일이었으니, 주말 이틀 쉰 다음 날인 월요일에 바로 이직한 회사로 출근했다. 그래서 원하던 대로 쉬지 않고 바로 이직할 수 있었기에 안도했다.
이직한 직장에서 내가 맡은 일은 중요도가 비교적 높은 업무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때부터 내게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돌이 항상 내 어깨에 얹어진 것 같다. 그때부터 야근이 있는 , 워라밸이 잘 지켜지지 않는 직장 생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책임감으로 열심히 일하던 회사에서 2년이 되던 때에 조직 개편으로 인한 대전 지방 발령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현실적으로 열심히 일하던 회사에서 눈물을 머금고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작은 회사를 가더라도 꼭 정규직으로 취업해야지.'
비자발적으로 생긴 나의 첫 휴식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은 마음이 불편해 쉰다기보다는 자기 계발을 더 집중해서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3개월이란 시간의 쉼 이후 바로 스타트업으로 정규직으로 이직했다.
두 번째 직장에서의 2년은 첫 직장과 같은 대기업이지만, 조금은 더 직장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책임감과 함께 일하는 동료가 주는 힘, 그리고 협력의 중요성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시 내게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