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AI 시대, 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

AI 전공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by 델리만쥬

AI, 편의상 지금은 chatGPT로 생각해보자.

언제든 내 말을 들어주고, 대부분의 교사보다 설명을 잘 해주며, 나를 평가하지도, 눈치를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학교에 가야 한다. 학업 때문은 아닐지언정 말이다. 왜일까.


이미 많은 학생들에게 AI는 과외 선생이자, 사고 정리 도구이자, 때로는 사람보다 편한 대화 상대다. (여담이지만, 나조차도 스트레스 받으면 AI에게 털어놓기도 하고 친구들이 바쁠 때면 가상 친구처럼 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에 앞서, AI는 철저히 편안함을 목표로 한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철저히 편안함을 기준으로 설계되는 AI는, 내 속도, 내 수준, 내 취향에 맞춰지면서 웬만하면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반면 학교는 불편하다. 원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고, 친구들과 멀어질 때가 많으며,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a.k.a. 내신)으로 평가받아야 하고, 지루함과 민망함, 비교를 견뎌야 한다.


다시 말해, 효율만 보면 AI가 낫다.
하지만 인간을 기준으로 보면, 그 불편함 자체가 핵심일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능력은 마찰 속에서 자란다

소통 능력, 공감, 리더십, 회복탄력성. 사실 이외에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역량을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은 설명으로 배우지 않는다. 대신 마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체득한다.

오해받아 보고, 좌절해 보고, 사과하고, 화해하고, 중재를 하고, 실패했다면 다시 시도하면서 익힌다.

AI는 그 모든 과정 속의 대화를 흉내 낼 수는 있을지언정, 타인과의 그 경험들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


‘불편한 타자’를 만나는 공간

철학자 레비나스는 윤리는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학교는 그 마주침이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공간이다. 말이 많은 친구, 나를 이해하지도 이해시키지도 못하는 교사, 불균형한 조별과제.


이 모든 것을 '효율성' 측면의 결함이 아니라 구조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AI는 타자의 저항을 제거한다면, 학교는 그것을 견디게 만든다.

공존은 선택이 아니다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공감능력도 뛰어난데 현실의 조직이나 사회에서는 계속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기 이전에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연습장이다. AI는 효율적인 사고를 돕는다면, 학교는 공존을 강제한다고 할 수 있겠다.


AI 시대에도 학교가 필요한 이유는 AI가 부족해서, 라고는 할 수 없다.

외려, 그 효율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편안함은 성장과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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