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의 의미, 그리고 아주 사소한 연락이 바꿨을지 모르는 것들
* 나는 학생이지만 동시에 종합학원에서 중등 수학을 가르친다. 정규 강사는 아니지만, 25년 11월부로 학원 본원에선 중등 수학 전담으로 있다. 때문에 주 3회, 시간대도 쓰는 강의실도 고정되어 있다.
아직은 학생 신분이기에, 수업은 보통 저녁 5시~8시에 진행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5시에 수업이 있어 4시 40분에 맞춰 학원에 도착하였다. (여담이지만 히터가 좀 오래돼서 강의실이 덥혀지는 덴 시간이 좀 걸린다)
항상 가는 강의실 201호 문을 열려는 찰나, 문 앞에 공지가 보인다.
12:00 ~ 13:00(점심)
18:00 ~ 19:00 (저녁)
학원 독서실 사용자들의 식사장소입니다.
해당 시간대에는 이 강의실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보자마자 어이가 없었다. 내가 17시부터 20시까지 수업인데, 수업하다가 중간에 나가라는 거야? 더군다나 나는 17시부터 교실을 써야 하고, 공지엔 식사가 18시로 되어 있다. 누가 봐도 우선순위는 나한테 있다. 보란 듯이 무시하고 문을 열자 치워진 교탁, 학생들 책상조차 기존 배치에서 식사용 배치* 로 바뀌어 있었다. 그 배치를 보자마자 눈이 좀 돌았다. 이 강의실, 일주일의 절반을 내가 쓰는데 지금 나한테 동의를 구하는 그 어떠한 연락도 없었으면서 멋대로 바꾼다고?
* 원래 둘이 붙어 앉는 책상이 3줄, 그냥 개별 책상이 3줄 있었는데 전부 1인책상으로 바뀜
그래도 원장님께 화를 낼 수는 없으니, 물 한 모금 마시고 옆 대강의실 문을 두드렸다. 원장님이 멋쩍은 얼굴로 나오신다.
선생님 수업이시죠?
애들이 많지는 않으니까, 그냥 202호에 가서 수업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여기를 식사장소로 쓸지, 아니면 독서실 내에서 식사공간을 제공할지는 결정이 안 되었을 거라서요.
중요한 건 이거다. 201, 2호는 말만 들으면 그냥 옆 방이다. 그런데 실제로, 201호는 통창에 비교적 넓고(수용인원이 202호의 2배다), 202호는 창문도 조그맣고(창문 열면 그냥 주택 옆면?이 보인다.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됨) 남자화장실 바로 앞에 있는 데다 수용인원이 훨씬 적다. 교탁도 없다 !
나도 나름 4년차(23년 8월부터 있었으니) 이고 학력도 대졸이다. 그리고 전담으로 맡는 애들이 있는데 너무 무시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이 학원에 있어야 하는지부터, 나를 가르치셨던 모든 선생님들의 잔상이 스쳐 지나가면서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더군다나, 만약 식사하는 사람이 많아서 수용인원상 201호는 식사공간 우리가 202호 가야 할 것 같다, 고 어제나 나 오기 전에라도 전달해서 동의를 구하셨다면 나는 ok 알겠습니다, 했을 것이다. 당연한 거니까. 만약 1월 1일 신정이라 연락하기가 껄끄러우셨다면, 최소한 오늘 나 출근 이전에는 연락을 주셨어야 했다. 시간대를 조정해보자던가(식사시간이든, 강의시간이든), 내가 수업하는 날엔 다른 장소를 식사에 쓴다던가 이런 식으로, 협의점은 얼마든지 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밥 굶으면 안 된다 주의라서 사비로 애들 간식 자주 챙겨줬었고 지금 애들이야 내가 상황을 좋게 설명해주면 되는 일이니까)
이걸, 내가 출근하고 나서, 공지를 확인하고 여쭤본 다음에야 알게 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시였다. 좋게 생각해보려고 마음을 몇 번을 추슬렀는데도 결론은 동일했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면, 존중이 없는 거였고 나와 내가 맡는 수업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나의 역할을 정말 존중하셨다면, 17시부터 수업이니 내가 수업하는 강의실은 식사 장소 후보에서 배제가 되었어야 하는 게 맞다. 하다 못해 잠깐의 통화를 위해 빈 강의실 잠깐 쓴다 해도, 정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고 들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이미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을 식사장소로 쓰겠다는 생각을 하지?
더군다나 201호가 고정이었다 보니(2024년 6월부터, 평일 수업은 201호였다. 다른 학년이 섞여서 인원이 과도하게 많아지는 경우에만 위층 더 넓은 강의실을 썼더랬다) 학생도 수업 흐름도 자료도 다 201호에 있다. 그런데 사전 연락/합의 없이 '오늘은 그냥 옮겨주세요~'하는 건, 그냥 내 role을 삭제했다고밖엔 보이지 않는다. 더 화가 나는 지점은, 내 학력/전공/연차 등을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이 학원과 함께했던 시간이 있고 정규직이 아닐지언정 다해 온 책임이 있는데, 그에 비해 너무 가벼운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업은 수업이고 선생이란 사람이 부정적인 감정을 전파해서는 안 되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Happy new year, 기념으로 복테(복습테스트) 보자, 뭐 틀렸어, 뭐가 어려워, 하면서 수업을 마쳤다.
수업을 하고 나서도 아까의 나쁜 기분이 가시지를 않아서,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닌가 이해해보려 여러 시나리오를 그려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내 연락처를 아는 선생님이 안 계신 것도 아니다. 심지어 한 분은 본원(전체 학원) 원장 한 분은 분원 원장으로 계신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이게 신정에, 혹은 오늘 오전에 급박하게 결정된 일은 아니었을 텐데. 내가 201호에 수업하는 걸 모르셨을 분들도 아니다.
만약 식사 장소가 결정되지 않아서 오늘 내가 도착한 이후 말한 거라면?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졌다. 오늘까지도 결정이 안 된 거면 내 수업에 우선권이 있어야 하는 건데 왜 내가 옮겨야 하지?
애들이 적어서 말씀을 안 하신 걸까? 어차피 옮길 수 있다고 판단해서? 그렇다면 나에게 202호에서 방학 기간 동안 수업해달라, 등의 협조를 구하는 연락을 미리 해 주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책이 한두 권도 아닌데.
가장 현실적이고 이해가 되는 건, 내가 정규 강사가 아니니 고려의 대상도 무엇도 아니었다는 거다. 설령 저 결정이 오늘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나에게 말을 전해야겠다는 시나리오가 있었다면, 나에게 연락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내 연락처를 아는 선생님들과는 개인톡을 오래 주고받았기에, '정규' 강사분들끼리 연락을 취했다면, 최소한 내가 생각했을 때 어려울 일은 전혀 아니다.
누가 되었든 나에게 연락해서 사정을 설명한다던가, 동의를 구해야겠다던가 하는 시나리오 자체가 없었던 것이고, 늦게 결정되었을 만큼 학원의 우선순위가 아닌 일에도 내 수업이 밀릴 만큼 나는 존중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 학원과 함께했던 시간, 다했던 책임이 있는데 이를 한순간에 무시당한 것이라 화가 났던 거고. 이게 최소한,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이해이다.
4-1. 그렇다면,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지 뭐 1년도 채 안 된 뉴비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이건 항의할 수 없었을까? 뭐, 눈치는 보였을 것 같다. 실제로 2023년 8월에 이 알바(원래는 수업이 아닌 테스트 알바만이었다) 시작한 이후, 2024년 6월에 수업을 맡는 보조강사가 되기 전까지, 가끔 강의실을 비워줘야 할 때면 다른 곳을 물색하느라 바빴다. (심지어 작년 말(11월)엔 고3들의 수능 직전 수업이 있다고 해서, 이때는 오늘과 똑같이 출근해서 전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양보했다. 수능 일주일 전의 고3이 대상인데 당연하지..)
그러나 24년 6월부로는 상황이 바뀌었다. 내 지분이 올라갔고, 분원 원장님을 통한 사전 공유 및 설명은 디폴트였다. 정규직이 아닐지언정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 받는 기본적인 존중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눈치는 보일지언정 내가 뉴비여도 맡는 role에 따른 권리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4-2. 뉴비든, 비정규직이든, 이런 신분이 언제부터 이런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는 딱지가 되었을까.
오늘 내가 체감한 답은, '남아 있을 사람에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에, 설명은 언제나 힘 있는 쪽에서 먼저 사라진다'는 거였다. 쉽게 말해, 나는 어찌 됐든 이 아이들과 방학을 함께하기로 했다. 이건 다른 말로 '나는 떠나지 않을 것'을 '정규' 선생님들은 아시기에 '시간을 쓰고, 말을 고르고, 상대를 고려하는 일'인 최소한의 사정설명조차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셨다는 것.
즉, 어차피 나는 여기에 있으므로 납득이 아닌 순응만 하면 된다, 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협의점을 도출하는 게 아닌, 우리 결정에 너가 따라줬으면 좋겠어, 하는.
나름대로 추스리고 글을 썼다지만, 나는 학원 비난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의 학부 때부터 몇 년을 함께한 이 공간에서, 나를 좋게 봐주셨고, 그래서 기회가 생겨 단순한 채점알바에서 수업을 맡게 되고, 고등부 클리닉을 병행했었고, 지금처럼 중등 전임이 될 수 있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일로 비롯된 앙금은 여전히 묻는다. 어떤 시점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지, 그리고 그 기준은 누구에 의해, 얼마나 쉽게 정해지는지에 대해서.
분명해진 것도 있다. 존중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분명하게 요청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설명받지 못한 일 앞에서 침묵하는 선택 또한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는 사실.
이 글은 결론이 아닌 나의 기록이다 - 존중은 거창한 게 아니라, 한 통의 연락과 한 번의 합의에서 시작됨을 잊지 않기 위한 기록. 그리고 애증이라고 하기엔 '증'이 바늘구멍만큼뿐인 이 공간에서, 오늘처럼 조정사항이 발생할 때, 그것이 ‘통보’가 아니라 ‘사전 설명과 합의’의 형태이기를 희망함을 나름대로 말하기 위해서. 불만이 아니라, 애증이 다시 '애정'으로 회귀 가능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남기는 메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