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고 싶은 답답한 엄마들에게
"젤로님, 좀 더 깊숙이 한번 들어가 보세요"
꾸준히 해오고 있는 바라다 글쓰기클럽에서는 매월 말 과제처럼 한 편의 글을 제출한다. 위의 말은 3월에 '팔뚝 얇아지고 싶은 엄마입니다'라는 글을 쓴 나에게 포포포매거진 편집장 유미님이 내게 해주신 평이었다. 아마 유미님은 더 이어서 글을 써보면 좋겠다는 의미로 무겁지 않게 건네신 코멘트였겠지만 나에게는 작은 돌멩이가 가슴 안을 굴러다니는 것처럼 내내 불편했다. 그리고 몇 번을 이어서 글을 써보려 나를 표현해 보려 시도했지만 어느 벽에서인가 막혀버렸고 나는 번번이 글쓰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나를 찾으려는 애쓰기를 잠시 멈추고 그냥 편안히 책을 읽었고 1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아이 둘이 모두 잠든 저녁 9시쯤 밀린 일을 하기 전에 일단 책을 집어 든다. 육퇴 후 집정리든 샤워든 하다 보면 시간이 후룩 지나갔고 피곤해져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30분에서 길면 1시간 정도가 독서시간인데 하루하루 쌓인 이 시간 동안 완독한 책들이 꽤 많다. 책 읽기의 좋은 점은 쉬는 게 편하지 않고 무언가 계속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가진 나에게 죄책감이 들지 않는 휴식이자 불안함을 달래는 위로였다. 손이 많이 가는 책은 역시 자기 계발서와 육아교육서이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다양한 장르의 책을 편식 없이 고르려 했다. 서로 관심분야는 다르지만 나는 소파에 남편은 식탁에 앉아 함께 조용히 책을 보는 시간은 나에게 안정을 주었다. 책을 읽다 힐끗 남편을 보면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남편의 모습이 좋았고 의지가 되었다.
나는 외향적인 성향에 밝고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 성격이다. 사실 하루하루가 즐겁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거나 생각의 중심이 내가 될 때면 자신감이 낮아지고 가끔은 슬펐다. 곱게 키워주신 부모님 덕분에 ‘사랑 많이 받은 것 같아’, ‘부족함 없이 자란 것 같아’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는데 30대가 넘어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부정적인 감정이 죄스럽기도 하고 불편했다. ‘엄마의 20년' 책에서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나를 찾고 싶다고 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 말했다. 그럼 난 대한민국 사회의 실패작인 건가 싶어 기분 나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만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다니엘핑크의 ‘후회의 재발견‘ 브레네브라운 ’ 나는 불완전란 나를 사랑한다 ‘를 읽으며 나의 불편한 감정의 끝은 수치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이어트 얘기로 돌아와 보면, 정말이지 팔뚝이 얇아지면 그만큼 내 자존감은 높아질 것 같긴 하다. 나의 가장 큰 욕망이자 목표이자 스트레스인 다. 이. 어. 트. 그냥 편하게 이 모습으로 살까, 있는 그대로 사랑해줘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당당해야지 꼭 살이 빠져야 예쁠 텐데, 더 좋은 회사를 다니면 멋질까 같은 비교우위로 행복을 따지는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어땠으면 좋겠다는 욕망보다는 왜? 왜 그걸 원해? 진짜 속마음은 뭐야?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기 시작했다. 살이 찐 후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고 약속 잡는 게 참 스트레스였는데 비교적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괜찮았다. 아마 난 지금의 내 모습이 싫다기보다는 "살쪘네?'라는 과거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말이 듣기가 싫었던 것이다. 나에게 살쪘다는 말은 "왜 관리를 못 했어. 이젠 전혀 예쁘지 않아. 과거엔 잘 나갔는데 이젠 아니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미국 오기 직전은 둘째 만삭이라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임산부에게 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게 정말 싫었다. 초반에 배가 많이 안 나왔을 땐 주수보다 작은 거 아니냐 걱정의 말을 들었고 만삭땐 배가 큰 편이네 라는 말을 들었는데 둘 다 거부감이 들었다. 또 임산부에게 살이 많이 쪘다느니 둘째는 더 돌아오기 힘든데 관리해야 한다라는 말도 살에 대한 압박감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내 몸을 인생의 실패로 연결시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성취와 인정이 중요한 사람인데 내가 날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에게 화가 날 때도 내가 왜 그 포인트에서 서운했을까 뒤돌아 생각해 보면 '인정'이라는 감정이 깔려있었다. 창고살롱이라는 커뮤니티의 소모임살롱에 참여하며 이런 나의 성향에 대해서 한번 더 깨닫게 되었다. 윤승님의 저널링모임과 소영, 고운님의 나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을 통해 들쑥날쑥하던 감정이 많이 정리되었는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나누는 건 정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단단해지는 중이다. 깨지는 게 아닌 다듬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면 실패가 아닌 과정이라는 밝은 면을 바라볼 수 있다. 최근 여러 곳에서 다시 듣게 된 Connecting the dots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나의 고민, 여러 활동들, 육아, 그리고 애증의 직업, 일이 합쳐져 어떤 모양을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다이어트도 그동안 압박 속에서 억지로 했었다면 지금은 정말 날 위해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똑 떨어지는 결론도 없지만 나와 같은 세대인 3040 여성, 엄마들에게는 한 번쯤 거쳐가는 아니 거쳐가야만 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 시간이 여성들에게 조금 덜 답답하게, 조금 더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 걸 보니 나는 정말 마음의 여유가 생겼나 보다.
얇아진 팔뚝 인증샷도 올릴 수 있는 날도 꼭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