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젤로 Nov 09. 2023

우당탕탕 vs 꼬장꼬장

노년에도 행복한 부부관계를 위하여 

연애 9년 그 후 결혼 10년 차. 남편과 나는 청춘의 20대를 함께했고 한층 성숙해지고 있는 30대를 보내고 있다. 연애를 하면서 크게 다툼도 없고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10년 차가 위기라고 했던가. 아이가 한 명 더 태어나고 미국에 와 생활환경이 바뀌며 소소하게 맞춰나가야 할 점들이 이곳저곳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기도 멀기도 한 부부관계에 대 전문심리치료사님이신 원정미작가님의 웨비나를 들었다. 강의를 듣고 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는데,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작더라도 꾸준히 해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사실 상대방이 크게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작은 말이나 행동 하나에 유독 서운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왜 기분이 안 좋은지 내 감정의 원인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결국 내가 원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미국에 온 초기에는 내 계좌도 없고 차도 없어 남편 없이는 어디 나가기도 힘들고 자유롭게 돈을 쓰기에도 제약이 많았다. 게다가 영어실력도 부족해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자존감이 바닥이었는데 그동안 아무렇지 않았던 남편의 말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화를 내면서도 왜 화가 나는지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슬프고 답답했었는데 곰곰이 내 마음속을 파고들다 보니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라 돌아갈 회사가 있지만 만약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 이주였다면 정말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겠구나 싶었고 이주여성에 대한 관심과 공감력이 조금 깊어졌다.


웨비나가 끝나고 남편과 함께 서로에게 바라는 점 한 가지씩 얘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원했고 남편은 나에게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서 쓰고 뚜껑을 꼭 닫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너무 예상치 못했던 주문이라 '나에게 원하는 게 고작 치약 짜는 거라고?' 되물었는데 10년째 말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은 여러 번 얘기했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조차 없는 나 자신에게 놀랐고 이런 사소한 부분이 쌓여 불만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이제는 정말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치약은 표면적인 하나의 예시일 뿐이고 남편과 나의 다른 성향을 대변한다. 나는 조심성이 없고 중요한 것만 빨리빨리 챙기는 성향이지만 남편은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이다. 우당탕탕 여자와 꼬장꼬장 남자가 만났으니 사소한 갈등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나와 다르게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고 무던하고 말보단 행동파인 남편이 참 좋았다. 23세 처음 만난 어린 청년은 28세 꽃답던 나이를 지나 38세의 더 깊어지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있다. 글을 쓰는 소재에 남편이 항상 빠지지 않는 걸 보면 나에게 참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이구나 싶다. 결혼생활을 하며 가장 중요한 ‘상대방을 위한 꾸준한 노력’ 간단하지만 막상 어려운 이 노력을 치약뚜껑닫기, 치약 짜기부터 시작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법의 감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