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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인숙 Apr 09. 2019

조글로, 자바의 아름다운 지붕 (2)

글, 사진: 채인숙 (시인)




사실 인도네시아는 종족이나 지역별로 너무나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인도네시아’라는 국가 이름 아래 한데 뭉쳐있을 뿐 같은 뿌리를 가진 문화 예술을 찾기 힘들다. 이번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그 문화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정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수많은 종족의 전통 문화가 저마다 형체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잘 보존되고 있다. 각 지역이나 종족마다 전통 문화예술을 이어가는 교육 기관이 반드시 있고, 거기서 공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도네시아가 어느 나라보다 탄탄한 문화 예술의 토대를 가진 부유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주택의 형태야 얼마나 다양하겠는가? 자바와 술라웨시의 집은 마치 다른 나라의 주택을 보는 듯 형태와 외양이 완전히 다르다. 물론 동남아 대부분의 주택 형태가 그러하듯이 자바의 전통 주택 역시 대부분 나무로 지어졌고 매우 개방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지천에 나무가 빼곡하니 재료를 구하기 쉬운 탓이고, 습하고 더운 날씨에 최적화된 집을 지으려는 노력이 더해진 때문일 것이다. 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섬이 자바이다 보니 우리에게 일반적인 주택 형태로 알려졌을 뿐이다. 





▲ Sunduk [구글 이미지]




현재 자바의 대표적인 주택 건축 양식은 14세기 마자빠힛 왕조 시대에서 유래되었다. 집안에 벼의 여신을 상징하는 데위 스리(Dewi Sri)를 모시는 것은 아마도 벼농사가 시작된 선사시대부터가 아니었을까 싶지만, 주택의 구조와 형태에 종교와 철학을 반영하고 상징성을 부여한 것은 마자빠힛 시대에서 시작된다.  힌두교에 기반을 둔 마자빠힛 왕조는 하얌 우룩 시대 때 가장 번성하였다. 필리핀 남부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북부까지 아우르는 넓은 영토를 정복했고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밀접한 외교 관계를 맺었다. 16세기 초에 왕조가 멸망하자 발리 섬으로 쫓겨 가게 되었고, 그 후손들이 살아가는 발리는 현재도 힌두교를 믿는다. 




따라서 자바와 발리는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는 궁전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도시가 퍼져 나가는 힌두교 식 우주관을 상징하는 도시 형태를 보인다. 주택도 마찬가지여서 달람(Dalam)을 중심으로 4개의 주기둥(Saka Garu)을 세우고 중간 영역과 바깥 영역으로 확장된다. 





▲ 조글로 골조 설명 [이미지: 채인숙]





그 중에서도 특히 조글로 지붕은 상,중,하부마다 우주의 구조를 의미하는 여러 가지 상징을 두는데, 크게 천상 세계를 가리키는 상부와 인간계를 가리키는 중부, 그리고 어둠의 세계를 가리키는 하부로 나뉘어 진다. 상부는 영혼(Roh à mala)과 빛(Ajna à Ander)을 상징하는 지붕 꼭대기 장식과 투구 모양의 마름모꼴 윗지붕을 두고, 중부에는 하늘(Ether à Tumpang Sari)을 상징하는 완만한 아랫지붕과 우리가 마시는 공기(udara à Sunduk)와 불(api à Saka Guru)을 상징하며 탁 트인 공간을 내어주는 4개의 기둥이 있다. 그리고 하부에는 물(Air à Umpak)과 대지(Tanah à baturan)를 의미하는 기둥 받침과 마루가 존재한다. 




조글로 지붕은 각기 다른 경사를 가진 2단 형태로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경사가 가파르다. 때로 3단 이상 이어지는 지붕도 보이는데, 주로 귀족이나 왕가의 주택에서 명예와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원래 Tajug-loro(두개의 타죽이란 뜻)에서 파생된 Jug-loro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왕관을 의미하는 아랍어 Taju에서 왔다. 그러니까 상부 지붕의 가파른 마름모꼴 투구 모양은 원래 왕관을 상징하는 셈이다. 





▲ 자바 전통 서민 주택 형태 - 조글로 [구글 이미지]






▲ 조글로 내부 [구글 이미지]




자바인에게 집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성스러운 영혼과 세속적인 육체를 중계하는 공간이었다.  인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양에서는 태양신이 존재하는 동쪽을 가장 중요한 방향으로 여기지만, 자바에서는 태양신이 북쪽에 위치하고 북쪽의 머라삐(Merapi) 산에 약자들을 돕는 비쉬누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북향 집이 평안과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자바의 주택 구조와 상징에 관한 글은 언젠가 다시 자세히 글로 풀어 볼 생각이다.) 조글로 지붕을 비롯하여 각각의 공간은 단순한 주거의 기능을 뛰어 넘어 자바 인들의 전통적 우주관과 신앙을 나타내는 상징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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