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부딴과 명옥이네 앵두나무
12월 우기에는 자바섬 곳곳에서 람부딴이 붉게 익는다. 연말과 연초로 이어지는 두어 달 남짓, 빨간 종이 매달린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것처럼 람부딴 열매가 빼곡히 달린 나무들 사이로 저녁 산책을 나간다. 람부딴은 껍질에 마치 머리카락 같은 술이 달려있어 Rambutan(머리카락이란 뜻)이라는 단도직입적인 이름을 가졌는데,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 나무다. 우리 나라로 치면 감나무쯤 되겠다.
람부딴이 붉은 색을 띄기 시작하면 길다란 나무 채를 들고 열매를 따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자주 본다. 나무 아래 잠시 멈춰 서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람부딴 가지를 툭 꺾어서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건네준다.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고 쪼개듯 껍질을 벌리면, 하얀 열매의 속살이 뽀얗게 드러나고 촉촉한 물기가 자르르 비친다. 그 자리에서 알사탕 까먹듯이 람부딴을 쏙 빼먹는다. 하아, 입 안 가득 싱싱한 단내가 가득 퍼진다.
(람부딴 나무)
어린 시절을 보낸 남해안 바닷가의 소도시는 산과 들과 바다가 모두 있는 풍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노릇인지 사람들은 늘 가난에 시달렸고, 시장통 근처만 가도 험한 자연을 상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특유의 거친 입담이 사방에서 들렸다. 친구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집 마당에서 홍합을 까거나 쥐포 공장에서 쥐치 껍질을 벗기는 일을 했다. 봄에는 모내기를 하고 가을에는 추수를 돕거나 과일을 따느라 학교에 빠지는 아이들도 많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형제들은 세계명작 100권을 월부로 사들이고 그 책을 전부 읽는 것이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우리 집이라고 별다를 거 없이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을 텐데, 친할머니부터 외할머니, 그리고 어머니까지 시골에서 보기 드문 자존감을 가진 여성들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다. 여자 형제가 셋이나 되었지만, 누구에게도 원치 않는 부엌 일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아무튼, 우리 집에 책을 빌리러 오는 친구들 중에 과수원집 명옥이가 있었다. 봄이 지나면서 날이 조금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뻔질나게 명옥이네 집으로 가는 산길을 올랐다. 집 앞 과수원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장독대 옆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앵두나무에 조랑조랑 매달린 빨간 열매를 톡톡 따먹는 재미는 어디 비할 바가 없었다. 물론 동네 욕쟁이로 소문 난 명옥이 할머니는 앵두를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고 번번이 호통을 치셨지만, 우리는 앵두를 담는 종이 봉투를 열심히 접으면서 눈치껏 앵두 씨를 내뱉았다.
과수원 규모라고 해봤자 텃밭 수준이어서 그 집도 늘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명옥이는 5학년 때 대전에 사는 고모네로 입양 아닌 입양을 갔다. 그 후로 명옥이를 딱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고등학교 때 집에 잠시 다니러 온 명옥이와 시장통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키가 훌쩍 컸고 서울 말(그때 내 귀엔 충청도 사투리가 서울 말로 들렸다)을 쓰는 명옥이가 무척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턴가 람부딴 나무를 볼 때마다 명옥이네 앵두나무가 생각나 울컥, 목이 메곤 한다. 겨울이면 빨갛게 얼었다가 봄이면 앵두 빛깔처럼 되살아나던 명옥이의 붉은 뺨도 떠오르고, 함께 읽었던 소공녀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도 떠오른다. 나는 가버린 그 모든 시간들이 한없이 그립고, 문득 서럽다. 아... 이토록 붉은 것들. 영영 만날 길 없는 이름들이 람부딴 가지마다 방울방울 매달려 있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인도네시아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며, 인도네시아 인문창작클럽에서 활동한다.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격주로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