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짝 타고 솔로를 여행하다
수라카르타 하루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에 치여서 숨이 가쁜 날들이었는데, 회사에 새로 입사한 직원이 결혼해서 27살의 앳된 신부가 왔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여기까지 와 준 용감한 친구가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할 것 같으니 둘이 가끔 여행을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우리에겐 ‘솔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수라카르타는 빠꾸부워노 술탄이 독립 전까지 다스리던 땅이어서 왕궁과 전통문화가 비교적 잘 살아있었다.
오랜만에 베짝(인력거)을 타고 왕궁과 주변 수비대 마을(왕궁의 수비, 부엌, 농장 등등이 있는 주변 마을), 그리고 왕궁 옆의 바틱 마을을 돌았다. 비 온 뒤라 바람이 선들선들 참 좋았다. 베짝 운전수 할아버지가 가이드처럼 온갖 설명들을 해 주셨는데, 계속 족자카르타보다 수라카르타가 마따람 왕국의 적통이라는 걸 어찌나 강조하시는지… ㅎㅎ.
그건 사실 맞다. 원래 족자는 빠꾸부워노 2세가 솔로 강가로 천도를 하던 시기에 절반 정도의 영토를 빼앗아 분리독립한 술탄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는 솔로 왕가도 족자처럼 왕족이 다스리는 특별자치구로 인정을 받은 두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런데 예전에 1700년대 수낭 꾸닝의 반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빠꾸부워노 2세가 제압을 하지 못하고 네덜란드동인도회사에 도움을 요청해서 왕위를 유지한 전력이 있는 데다가, 1945년 이후 재점령하러 들어온 네덜란드에 대항했던 독립전쟁기에도 빠꾸부워노 12세는 아무런 정치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수카르노 대통령이 솔로의 급진공산당들을 제압하느라 군사를 동원해 대신 곤욕을 치뤄주기도 했다.
이런 전력들이 수라카르타의 라이벌인 족자카르타의 하멩꾸부워노 왕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독립전쟁이 끝난 후 족자는 특별자치구로 남아 하멩꾸부워노 9세가 주지사가 되었지만, 수라카르타는 특별한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왕가는 상징적 존재로 남게 되었다.
수라카르타 오른쪽으로 흐르는 솔로 강 덕분에 우리에게는 도시 이름 자체가 ‘솔로’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왕궁과 엔틱시장과 여러 군데의 솔로 전통 바틱 박물관을 돌았다. 족자와 솔로의 바틱을 비교할 수 있어서 꽤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노래 중 하나가 “Bengawan Solo”다. 솔로 강이란 뜻인데, 인도네시아로 공연을 오는 외국 연주자들이 단골 메뉴로 부르는 노래 중 하나다. 한국에도 가야금 연주자이신 이정표 님이 한국어로 번역한 버전이 있어서 가끔 듣는다.
https://youtube.com/watch?v=XuuU4ksIETg&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