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땅, 자바
중부 자바로 이사를 온 이후로 코로나 때문에 한번도 성당에 가지 못했다.
저번 주에 첫 미사도 드릴 겸 마글랑 산 속에 있는 마리아 동굴 성당을 부러 찾아갔다. 길을 잘못 들어서 좁고 가파른 산길을 5킬로미터 남짓 올라갔다. 인가가 드문드문 보이는 깊은 산속으로 드는 동안 무려 6개의 작은 성당과 마주쳤다. 이슬람이 강한 중부 자바에서 좀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마리아 동굴은 자바 섬에서 꽤 유명한 카톨릭 순례지다. 성당 사무실에 부탁드려 짧은 역사가 적힌 종이를 받아 읽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중부 자바 카톨릭의 시작점 같은 곳이었다.
1904년 이 동네에 살던 사리만이라는 남자가 이유를 모르는 병에 걸려 걷지도 못하고 살았다. 어느날 그에게 동쪽 바다로 가라는 환청이 들렸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한밤중에 아픈 다리를 이끌고 길을 나선다. 가던 중에 muntilan 동네에서 두 분의 네덜란드 신부님을 만난다. 그는 그 자리에서 강한 영성을 느꼈고 카톨릭에 입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그를 위해 신부님들은 쉬운 단어로 카톨릭 교리를 전한다. 그는 씻은 듯 다리가 나아 성경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해 1904년 5월 20일, 사리만과 2명의 친구가 원천수가 흐르는 소노 나무 아래에서 Van lith 신부님께 세례를 받았고, 그는 ‘바르나바’라는 세례명을 받는다. (바르나바 성인은 바오로를 교회로 인도했고 이방인의 사도라 불리운 분이셨다.) 세례명에 걸맞게 그는 머노래 평야의 주민들에게 카톨릭을 전파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자바 섬에서 주민들에 의해 일어난 첫번째 카톨릭 세례와 전교의 역사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같은 장소에서 171명의 주민들이 한꺼번에 세례를 받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후 1923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인 JB Prennthaler 신부와 주민들이 주변 산과 강의 돌을 가져와 이 자리에 마리아 동굴을 세우고 성당을 지었다. 1929년에는 교황 비오11세가 바르나바에게 카톨릭 훈장을 수여한다. 이 산골에 그토록 많은 성당이 있는 이유는 그들의 후손들이 카톨릭 신앙을 이어가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일년 동안 너무나 가까운 분들이 연이어 급작스런 사고와 병으로 하느님 품으로 드셨기 때문에 나의 기도는 그분들의 영혼이 천국에서 편히 쉬시길 바라는 것이었다. 나는 또 산 아래로 내려가 세속에 휘둘리며 살아갈 테지만, 당분간은 동굴 앞에서 드린 오늘의 기도와 영성체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
집으로 가는 길은 잘 닦인 도로를 이용했다. 그 산길에서 마치 사제관처럼 보이는 큰 성물 가게를 만났다. 엄청나게 많은 성물들이 꽉 차 있었고 집주인이 3년에 걸쳐 손수 지었다는 가게도 예뻤다. 거기서 십자가가 달린 촛대와 자연석으로 만든 묵주를 사들고 왔다. 내친 김에 점심도 거기서 먹었는데 Rica Ayam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오랜만에 밥 한그릇을 다 비웠다.. ^^
그리고 오늘 만난 신부님 말씀으론 족자에만 40여 개의 성당이 있고 마글랑에도 17개의 성당이 있단다. 이슬람 사원이야 여느 동네처럼 스무 집 건너 하나씩은 있지만, 이 작은 도시에 성당이 그렇게나 많다니 놀랍다. 사실 이 지역은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불교와 힌두 사원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직 10분의 1도 못 가봤지만, 옛부터 이곳이 신들의 땅이라 불리운 이유가 있었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