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삶을 살아간다.
삶을 살아낸다.
이 두 문장은 단 한 글자만이 다르다.
'살아간다'에서 한 글자만 바뀌면 '살아낸다'가 되는데도, 그 한 끗의 간극은 크고 깊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일상이 차곡차곡 균일하게 쌓여가며 시간이 흘러가는 느낌인 반면,
삶을 살아낸다는 건 그보다 훨씬 더 무겁고 치열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한 끗 차이가 빚어내는 무게와 치열함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된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다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오고 나서야,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살아가는 삶에서 살아내는 삶으로의 전환은 '인생은 고(苦)'라는 말을 절감하는 과정이었다.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버린 삶에 허덕이다보면,
어느날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다 놔버리고 싶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풍랑의 압도적인 힘에 밀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휩쓸리다가,
이제는 끝없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일만이 남은 것 같은 절망스러움.
거기에 발을 담그고 나니 앞으로의 삶이,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그냥 살아간다고 살아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와 그냥 이대로 사라졌으면 싶은 그런 날이 왔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간절히.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부모님은 마음이 아플까봐, 친구에게는 부담이 될까봐.
그래서 제 3자를 찾았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조금은 시원할까 싶어 상담을 받아볼까도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아마도 마음이 아픈 많은 사람들이 나같은 이유로 위로받지 못하고 돌아섰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픈 마음에는 위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가까운 지인에게서 그것을 얻으려 하면 대가가 따른다.
한 두번쯤은 마음을 조금 털어놓고 펑펑 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그들도 지친다.
그들도 자신들만의 삶이 있고 각자 어려움이 있다.
내 어려움만 앞세워 내가 힘들 때마다 그들에게 도와달라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찾는 것.
그런데 이 말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무너져 너덜너덜해진 마음에는 스스로를 위로할 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너진 마음을 그때 그때 다독이지 못하고 보듬어주지 못하면,
내 마음이 그 상태로 딱딱하게 굳어갈 것 같았다.
그리고 무감각해질 것 같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종국에는 위로의 말도, 다독임의 온기도 느낄 수 없을 만큼 굳어져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 느낄 수 없게 되는 날이 오고, 그때가 되면 아마도 생을 마감하는 것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모든 것으로부터 문을 닫아걸고 단단히 굳어져버리기 전에 마음을 소생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나를 살아있게 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온당하게 삶을 누릴 가치가 있는 나 자신을 위해서.
이 글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삶이 무겁다고 느껴질 때,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내는 소소한 방법들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마음이 힘드신가요? 그럼 함께 해요.
이 여정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 끝엔 더 단단해진 스스로가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