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두가 잠든 밤, 홀로 깨어있다 오래전 아이의 성장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촬영해 두었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부터 찍어둔 동영상을 가끔 보는 편인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 딸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으면서 감격스럽기도 하고,
아기가 그토록 사랑스러웠는데 그 시절엔 왜 힘든 마음이 더 컸을까 하는
후회와 반성도 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하지만 마냥 편안한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15년 전의 나와 마주 하게 되었다.
영상 대부분을 아이 아빠가 촬영을 해서 출연진은 언제나 아이와 나, 둘이었다.
영상 속 아이는 옹알이를 하고 어느 날 기기 시작하고 잡고 일어서기도 한다.
첫걸음을 떼다 넘어져 울고 어설픈 발음으로 엄마, 아빠를 연습한다.
그렇게 아이가 내게 얼마나 큰 웃음과 행복을 주었던 존재였는지 새삼 떠올려 본다.
그러다 영상 속 늘 아이 곁을 맴도는 한 사람,
엄마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던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졌을 법도 한데 그 밤,
나는 오래전 그 시간 속의 내가 너무나도 생생하다.
육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한 사람, 늘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
출산 후 빠진 머리가 새로 자라기 시작하면서 앞머리는 잔디인형처럼 삐죽삐죽 솟아있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어디인지 바로 알 수 있는 바지까지...
아이를 보며 항상 웃고 있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사람.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15년 전으로 돌아가 내가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고 잠시 후 나는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가 15년 전의 어리던 나를 지금의 내가 위로할 수 있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내게 어떤 말을 들려주면 좋을까.
정말로 그럴 수만 있다면 제일 먼저 나는 지금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리던 나를
말없이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등을 쓸어주며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아기를 낳고 키워보니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가신 엄마가 더 사무치게 보고 싶지?"
"철없던 딸로 살았던 날들이 후회와 눈물로 그리움이 될 줄 몰랐지?" 토닥토닥...
"잠도 제대로 못 자고 24시간 아이만 바라봐야 해서 문득문득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 알아, 그 마음 다 알아."
"그런데 말이야 생각보다 아이는 금방 자라더라고. 시간이 언제부턴가 멈춰버린 것
같고 영영 이 시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더라."
"점점 좋아질 거야.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며 이 순간도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운 내. 넌 지금 잘하고 있어."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한 사람의 엄마가 되고,
대부분 여자의 인생이 그렇다지만 유독,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두렵고 무겁게만 느껴졌던 그 시절,
일찍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그리며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초보 엄마,
그 시절의 나를 찾아가 위로해주고 안아주며 등을 쓸어내려 주고 싶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