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을 찾아서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뜨거운 여름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걷는 여행을 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하고 잡아둔 2박 3일의 휴가. 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6월 중순이 맞나 싶었지만,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빼 둔 일정이었기 때문에 미루거나 조정할 수 없었다.
일단 가보자. 늘 그렇듯이, 최종 목적지는 있지만 세부 계획은 없다. 충북 제천에 잡아둔 숙소를 향해 출발한 지 두 시간째 고속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벌써 지친다. 중간 기점에 위치한 아울렛에 들려 배를 채우고 나서니 그제야 길이 뚫린다.
푸릇푸릇한 6월의 산과 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의 여유를 찾은 우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본격적인 휴가 모드로 전환했다. 체크인 가능 시간이 다 되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자, 이제 어디로 가 볼까? 지도 앱을 켜 보니, 단양이 근처였다. 저녁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들린 단양 구경시장과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서 들린 도담삼봉. 이름난 곳에 볼 것 없다는 말이 딱 맞다. 두 곳 모두 그냥 관광지였다.
얘기하고 싶은 곳은 바로, ‘카페산’이다. 사실, 시장에서 들렸던 기념품 가게에서 단양을 대표하는 장소가 그려진 스티커를 몇 장 구매했다. ‘단양역’은 안 가봤지만 상징적이니까, 도담삼봉은 워낙 유명하니까 한 장씩 챙겼는데, ‘카페산’은 주황색 벤치와 어우러진 풍광이 인상적이었고 바로 가 볼 곳이어서 챙겼다.
구불구불한 경사 길을 꽤 올라갔다. 이왕이면 노을이 지는 것을 보겠다고 시간을 맞췄다. 마지막 주문 시간을 30여 분 남겨두어서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다. 이 정도 높이면 풍경이 멋있겠다, 날씨가 맑으니, 노을이 예쁘겠다는 정도의 예상은 충분히 가능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주문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 앞으로 홀리듯 다가갔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우리나라 만세!라는 내적 외침과 동시에 “와…, 와…”만 연발했다.
자몽 음료와 망고 음료 각 한 잔씩 시켰던 것 같다. 풍경 값이 더해진 탓에 가격은 꽤 높았다. 그런데,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스티커 사진에서 봤던 주황색 벤치가 왜 주황색이어야 하는지 불그스름하기도 하고 노르스름하기도 한 노을빛이 은은하게 반짝이며 곡선을 그리듯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에 가만히 내려앉는 이 그림 같은 장면을 두 눈으로 보면 수긍이 간다. 붉은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주황색이 된다고 했지 아마.
내가 시킨 자몽 음료를 마시다가, 남편의 망고 음료를 뺏어 마시며, 여전히 “와… 와…”하던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눈물이 났다. 어느 포인트에서 눈물이 날 만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살면서 해외여행 가 볼 만큼 가 봤고, 주말이면 산책이니 드라이브 나가서 콧바람 쏘이고, 산이며 바다며 안 가본 것 아닌데, 나는 그냥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울컥했다. 이 바람, 이 온도, 이 습도, 그리고 이 풍경을 고이고이 꾹꾹 눌러서 눈과 마음에 담았다.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는 문어체적 표현을 이렇게 몸소 실천할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원래, 너무 행복하면 눈물이 나는 거야.”라는 남편의 덤덤한 위로조차 마법을 부리듯 감동적인 서사로 다가왔다.
낮에 오면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던데. 저녁 늦게 온 탓에 보지 못했지만, 그보다 값진 경험을 했으니 이로써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