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2월 설날에 내려가서 뵙고 왔는데.. 3월 초에 겨우내 감기가 낫지 않아 진도읍내 병원에 가셨다가 그 길로 바로 목포로 다시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오셔야 했다.
뒤늦게 발견된 암이라 치료가 불가능했다.
3개월 가량 많이 앓으시다 6월 초에 돌아가셨다.
시어머님은 며느리 셋 모두가 정말 존경하던 분이셨다.
생전 잔소리가 없으셨고 늘 며느리에게 뭐든 믿고 맡기셨던 분이다.
딸 많은 집에 태어나 친정엄마에게는 딸이라고 구박을 받으며 유년기를 보낸 나에게는 시어머님의 사랑이 오히려 더 크다게 느껴졌다.
어머님의 장례식날 눈물을 많이 흘렸고 지금도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인다.
평생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키우시고 따뜻한 남쪽 지역이라 겨울까지도 1년 내내 일만 하시던 어머님이 갑자기 병을 앓다 돌아가셔서 내내 안타깝고 슬펐다.
시부모님은 해외여행도 칠순잔치를 기념해서 우리 식구가 간곡하게 설득해 모시고 간 중국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아버님도 농사를 접고 올라오셔서 진도에는 아무도 없다.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는 철철이 시부모님이 농사지으신 여러 가지 농산물을 넘치게 보내주셨다.
초여름이면 마늘 두 접을 손질하고 풋완두콩을 껍질까지 까서 늘 보내주셨다.
추석 때 내려가면 참기름을 소주대병에 담아주시고 참깨 또한 냉장고가 넘쳐나게 주셔서 주변지인들에게 인심을 쏘곤 했다. 김장 때가 되면 농사지으신 말린 고춧가루를 보내주셔서 친정에서 같이 담그는 김장 때 모자란 고춧가루를 위풍당당하게 보탤 수 있었다. 또 온갖 잡곡도 주셨는데 붉은 콩, 동부콩, 녹두콩 등 여러 가지였다.
어머님은 돌아가셨지만 아직 녹두콩과 붉은 콩이 남아있었다.
올봄에 조금 남은 녹두콩이 아까워서 혹시나 싹을 틔우려나 싶어 물에 담가보았다.
예상외로 거의 모든 녹두가 살아있었다.
어머님이 주신 귀한 녹두를 보존하고 싶어서 이 중 일부를 주말농장에 심어보았다.
이미 상추 등 다른 채소를 밭에 심은 후라 밭 둘레에 심었다.
남편은 녹두가 자라겠냐며 잔소리가 많았었다.
나는 녹두알 몇 십 개를 땅에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일단 심어보자고 했었다.
싹을 틔운 남은 녹두는 길러서 숙주나물로 만들어 먹었다.
처음 길러본 숙주나물인데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났다.
톡하니 눈이 튀어나온 녹두씨앗을 밭두렁에 심은지 열흘정도가 지나자 싹이 나왔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7년이나 지난 녹두가 모두 싹을 잘 틔웠다.
그리고 잘 자라났고 꽃을 피우더니 이제는 실하게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일요일인 어제 비가 내리기 전에 남편과 같이 주말농장에 나갔다.
지나가던 어르신께서 녹두를 보시고는 뭐냐고 물으신다.
녹두인데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예전에 주신 것을 아까워서 심어보았다고 말씀드렸다.어르신은 "아이고 정이 담긴 녹두네요"라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