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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Sep 18. 2023

그 후로 1년 : 故 가수 박정운 1주기

수목장 추모 행사, 유작 음원 공개, 그리고...



갑작스러운 비보에 가슴이 서늘해졌던 2022년 가을.

어느덧 그 후로 1년이 지나서 또 한번의 가을이 되었다.


내 가수 박정운.

그의 1주기.


2023년 9월 17일 오늘.







<사랑>이라는 마지막 선물


팬들끼리 나눠가진 비매품 싱글 CD


고인의 유작 음원 <사랑>


2023년 9월 17일, 오늘 고인의 유작 음원인 <사랑>이 멜론, 벅스, 지니, 네이버 등 주요 사이트에 발매되었다. 2006년도 즈음에였나, 생전에 녹음해두었던 음원으로 '언젠가, 목 상태가 나아지면' 부르려고 했던 곡이라고 한다.


발매 이전에 이 음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꽤 오래 전에 녹음된 곡임에도 이미 음역이나 음색이 많이 버거운 듯한 내 가수의 소리에 - 사실은 많이 착잡했다. 속상했고. 그 단계가 지나고 나니 내심 미안해졌다.


예전, 소위 전성기 때의 목소리로만 그를 기억하고 싶은 건 어쩌면 나의 욕심 아닌가. 물론 누구보다도 자신의 예전 소리를 그리워하는 건 가수 자신이었을텐데.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든 노래를 계속 하고 싶어했고 이 음악도 '언젠가는' 세상에 내어놓고 싶어했다는데.


지난 1년 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리고 그 일들을 여기에 다 쓸 수는 없지만) 드디어 그 음원이 세상에 나왔다. 소박한 형태이지만, 그를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인 셈.








유작 : 고인이 생전에 남긴 작품


여러 사람들이 애써준 덕에 고인의 육성 유작 음원이 빛을 보게 되었다. 또 오늘 1주기를 맞이해서 관련 기사들도 게재되었다. 하지만 그게 마냥 반갑지는 않은 이유는 - 왜곡과 오보가 뒤섞여 있기 때문.


유작.

고인이 생전에 남긴 작품.


때로는 사정에 따라서 고인이 직접 창작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적어도 고인의 생전 의사, 유지를 담아내야 마땅할 일이다. 그게 유작이지 않은가.


그런데 자칭 고인의 '동료' 또는 '절친'이라는 이들이 고인을 기리며 유작 음원을 준비 중이라는 기사들을 보니 그저 입맛이 쓰다. 고 가수 박정운이라는 헤드라인을 달았지만 그 안의 내용과 사진들은 온통 자기 PR인 그 기사들.


백번 양보해서 '추모곡'이라면 어쩌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 그래, 가수 박정운 사망 또는 1주기라는 키워드와 연관 지어서 스토리텔링 하고 싶을 수도 있지. 어쩌면 그들은 속으로 '나는 고인과 가까운 뮤지션이며 이것은 그를 기리고자 하는 게 맞다'고 확신하는지도 모르지.


지만 -


스토리텔링도, 마케팅도, 세상에는 정도라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고귀한 인류애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어디 숟가락 얹어댈 데가 없어서 감히... 유작에 얹으시는지들.


이미 몇 차례 왜곡된 정보 전달이 된 바 있고, 팩트 체크할 창구가 마땅치 않으니, 몇 안 되는 기사들에서도 오보가 가득하다. 가수 박정운? 1주기? 유작? 아 접때 OOO이 발매하겠노라고 말했던 그건가보다! 라는 식으로 안이하게 쓴 것으로 보이는 기사들.


속으로 울컥해서 이거 일일히 오보 정정 요청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가도 - 무슨 소용이랴 싶어지고. 게다가, 음, 후략... 여기에 다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은 속에 조금 묻어두고, 오늘 다녀온 수목장 이야기나 남겨볼까.








일산 자연애수목장



1주기를 맞아 수목장에서 조촐히 모이기로 했다. DMC 출발 카풀팀과 만나기 전에, 간단히 꽃다발을 하나 샀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내 눈에 예쁜 걸 고르다 보니 핑크 계열의 소국.


영면에 든 분에게 불면증 해소에 긴장 완화 효과라니. 이거 블랙 유머인가. 난 피식 웃음이 나던데. 웃어줘요. 아무튼 찾아갑니다.





추석을 두어 주 앞둔 주말이어서 그런지, 수목장에는 방문객이 많았다. 노래비에 꽃다발에 모여든 사람들까지, 이 부근 풍경이 제법 이목을 끌었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꽤 기웃거렸다. 혹자는 잠시 멈춰서기도 하고, 또는 '아, 오늘 같은 밤이면 부른 가수 박정운...'이라며 탄식 같은 말을 남기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작년 9월과 비교해보면 많이 좋아졌네. 노래비에 미니어처 장식함, 그리고 1주기를 맞아서 방문한 이들의 꽃다발과 사진들까지 한가득. 꼬마 묘목 주변의 자리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입구 쪽 트인 위치여서 이 또한 마음이 좋다. (꽃다발이 많아서 주변에 잔뜩 늘어놨는데 우리끼리의 조촐한 추모 행사를 마친 후에는 주변을 다시 정리했음)





안녕. 오랜만이에요.


오늘도 눈물이 왈칵 날 줄 알고 손수건을 제대로 챙겨갔는데, 작년에 비해서는 한결 마음을 내려놔서인지 차분하게 인사를 드리고 다정하게 지켜보다가 올 수 있었네.


사실 한낮의 가을볕이 제법 뜨거워서 눈물보다는 땀이 더 많이 났잖아. 어제는 그리도 비가 쏟아져서 걱정도 했는데 이렇게 맑은 날씨라면 덥고 땀이 나더라도 감사할 일이지 뭐.


그리고 추모를 마치고 식당으로 이동하려고 차에 타는 순간부터 미친듯이 소나기가 퍼부었다는 오늘의 작은 에피소드. 나중에 다들 이야기하겠지? 그때 1주기 때 그랬잖아, 하고.






사실 뭐, 이 사람이 내 인생에 대체 뭐라고 이러고 있나... 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내가 아끼고 그리워하는 대상이 과연 당신인가, 언젯적의 어떤 모습의 당신인가, 싶어지기에.


음원 속의, 영상 속의 당신은 이제 너무 수십 년 전의 모습들인데. 내가 가장 사랑했던 소리는 당신의 생전에도 이미 잡을 수 없는 과거였을 뿐인데. 이미 당신의 지난 20년 간의 세월을 나는 잘 모르건만. 이제 와서 예전의 모습으로 이렇게 추모를 한다는 게 - 괴리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가수 박정운'이란 '인간 박정운'이라는 스펙트럼에서 극히 일부일지도 모르지. 일부 시기의 음악 활동을 제외하면 나는 그라는 사람을 그야말로 잘 모르는지도.


하지만 - 정신 차리고 보니 이거 뭐 평생을 좋아해왔지 뭐야. 그 멋진 소리를 다시는 실제로 들을 수 없다는 게 늘 가슴 뻐근하게 슬픈 것을. 기억을 더듬어보고 간직하려고 해도 그 흔적들조차 너무 오래되고 심지어 제한적인 게 안타까운 것을.


그래서 당신을 추모한다. 많은 재능을 지녔고, 빛나는 시기도 거쳤지만, 더 날개를 펼치지 못했던 박정운이라는 뮤지션의 삶을, 애도하고 추모하고, 그리고 기억한다.


그 말고도 세상에는 비운의 뮤지션들이 어디 그 하나 뿐이랴마는 그 중에서 내 마음에 머물렀던 내 가수는 당신이니까.




#가수박정운1주기

#박정운유작발매

#박정운디지털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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