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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싱인더레인 Jan 28. 2022

Episode24.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슬픔


난임 생활을 하다 보니 감정이 무작정 튀어나올 때가 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데도 갑자기 슬픔이 밀려올 때, 그럴 땐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서 주의를 돌릴 만한 것들을 찾는다. 어떤 노래를 듣다가 슬퍼질 때면 다른 노래로 바꿔서 틀고, 책의 한 구절을 보다 눈물이 나려 할 땐 잠시 책을 덮는다. 그런데 가끔 가만히 있을 때 그 감정이 몰려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무기력해지면서 우울해지는 느낌. 평소엔 ‘이번 시술은 잘 될 거야’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지만, 이럴 땐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하지’ 두려움과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인다.     


남편과 함께 있을 땐 그래도 이 긴 시간을 함께 하는 동지가 있어 다행이다 싶다가도 떨어져 있을 땐 결국 병원을 다니며 마음을 쓰고, 몸 상하는 건 ‘나’ 일뿐이라는 생각에 억울한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특히 이식 시술 후 남편이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직장에 나가고 나면 혼자 남아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기다림의 시간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는 건 나일 거라고. 매일 이어지는 배 주사에 멍이 들었을 때도 그랬다. 임신을 위해 아픈 주사를 견디는 나 자신이 안쓰러워 울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여태까지 시술을 받으면서 가장 많이 운 적은 인공수정 세 번째 시술과 시험관 첫 번째 시술에 실패했을 때였다. 세 번째 인공수정 실패 땐 시험관 시술로 넘어가야 하는 게 너무 두렵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많이 울었다. 첫 번째 시험관 시술 땐 모든 조건이 다 좋았고, 특히 냉동 배아 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배아를 이식했기에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패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이식 땐 남편과 함께였지만, 결국 결과 확인은 혼자 병원에 가서 듣기에 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꾹 참고 있지만 차를 타고 오는 순간부터 눈물 바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에겐 혼자서 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친한 언니는 난임 병원을 다닐 때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결과를 듣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이 계속 나와서 눈에 손수건을 대고 있었다고 했다.      


힘들게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서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기도 하고, 일부러 드라마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연속으로 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슬픔이 잠재워지지 않았다. 자려고 하면 할수록 정신이 말똥말똥해졌고, 드라마를 봐도 스토리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땐 바다로 갔다. 긴 해안가를 걸으며 바람을 쐬고, 주변에 있는 것들을 둘러봤다. 자연 안에 있으니 모든 게 다 조그맣게 느껴졌다. 한참을 걷고 나니 내 안의 슬픔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곤 카페에 들어가 다이어리를 펴고 내 감정을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쏟아내고 나니 다음 스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그것들에 대해서도 쭉 쓴다. 내가 문득 슬플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그 페이지를 펼쳐보곤 한다. 극한의 슬픔에 빠져있던 나 자신을, 그 시기를 잘 지나온 나를 보며 이 슬픔도 곧 지나가리라는 걸 믿는다. 결국 난임 생활이 끝나면 지금의 슬픔도 저 멀리 보낼 수 있겠지. 나 혼자만의 슬픔을 언젠간 떠나보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끝이 보이지 않는 슬픔에도 끝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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