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감성 #19 손잡이
손잡이
타인의 공간을 처음 발걸음 하는 경우,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한 공간에 대해 하고 일어날 일에 대해 기대를 한다.
문을 열기 전 손잡이를 잡아본다.
손잡이를 잡는 행위는 공간 경험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잡을 때 소재, 뷰 역시 그 경험에 일조를 한다. 초인종 없이 어떤 감정의 멜로디로 공간의 열림과 닫힘을 알릴 수 있을 까. 손잡이의 섬세함은 공간의 결을 자아내는 역할을 한다.
현관
문을 열어 현관에 들어선다.
용산공원에 LH에서 건설한 옛 미군들의 집들이 공개되었다. 주택들 중앙에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있고 주위로 집들이 세워졌다. 정겨운 소리가 있었을 그 터를 지나 현관을 들어섰을 때, 남향의 빛을 고집했던 인식이 무색하게 빛의 따뜻함을 느꼈다. 아이들의 방이 있고, 부엌이 있고, 거실까지 쭉 이어진 열린 시야에 이야기를 써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놀다 씻지 않은 손으로 방에 들어가고, 부엌에서 저녁을 짓는 부모님이 아이들을 보며 옷정리를 시킨다. 밥 내음이 온 집안 거실과 아이들 방에 퍼져 가족을 설레게 한다. 현관문을 열면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 남쪽 빛의 발랄함과 다른 차분한 빛이 아이들과 함께 현관에 맴돈다.
집은 사람의 흔적과 기억으로 채워나가야 할 공간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온양미술관에는 너와집이라는 전통가옥을 해체해 이축한 건축이 있다. 외양간을 빛이 적게 드는 부엌(손님맞이 방)으로 개조하고, 여물통이 공간을 길게 가로질러 건너편 부엌과의 작은 경계를 만들었다. 방으로 들어가기보다 식공간으로 한번 완충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공간에 대한 불안함과 긴장감을 해소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집
인간이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 내력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을 용납할 수 있고, 무엇을 용납할 수 없는지.
재래 공법의 틀에 갇히지 않는, 양식미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 ‘내가 살고 싶은 집’이란 어떤 집인가.
-요코야마 히데오 [빛의 현관]
나는 일부를 내어 나를 보여주고, 따뜻하게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이다.
그 방식의 집이라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 다른 영역으로 통과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부엌을 향해 가는 길.
그 길에 대한 디자인에 따라 우리는 환대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나의 공간을 얼마큼 공개할지, 부엌을 향하는 동안 어떤 호기심을 불러일으킬지, 테이블을 어디에 배치할지에 대한 평, 단면적 고민이 먼저 이뤄지고 그 이후에 마감재에 대한 생각을 해보며 부드러운 빛 정도를 결정해본다. 주거, 오피스, 상업시설 모두 이러한 원리로 하나의 작은 공간에 경험을 담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