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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희 Nov 12. 2023

숫자 '13'

미디어감성 #4 그대 어떻게 살 것인가

남겨진 비행운


지브리 작품은 공간과 시간의 장면 전환 방식에 늘 흥미롭다. 환상과 비일상적 장면이 중첩되어, 영화를 보고 나면 구름 사이를 비행하는 듯 긴 여운이 남는다. 마음에 남겨진 비행운 같다. 

그동안의 작품들, 

1980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이의 묘>, < 마녀 배달부 키키>
1990 - <추억은 방울방울>, <붉은 돼지>, <바다가 들린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귀를 기울이면>, <모노노케 히메>,
2000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고양이의 보은>, <벼랑 위의 포뇨>, 
2010 - <코쿠리코 언덕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 < 바람이 분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 <추억의 마니>
2020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전쟁과 남겨진 서민들의 마음, 그리고 패배를 인정하는 사회적 배경, 그중에 꿈꾸는 파란 하늘과 비행을 모티브로 그려진 영화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대중성 있는 영화를 제외하고 <반딧불이의 묘>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할 수 있는 처참한 고통과 아픔을 그려냈다. 애니메이션이 반드시 밝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편견을 깬 작품이었다. 마음이 아프고, 먹먹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최근 개봉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무려 10년을 작업한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주제의식이 총집합된 영화로, 공간이 전이될 때마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지속적으로 주인공과 관객은 판단과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무엇을 선택해도 좋고 나쁜 기준은 없었다. 단지 작자는 궁금했던 것 같다. 정말 여러분의 선택은 어떤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설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모든 장면을 지나, 마지막에 주인공은 13번째 돌에 대한 선택을 하는 상황에 놓인다. 주인공의 큰아버지가 악의로 물들지 않는 13개의 돌 탑을 쌓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라고 제안하자, 주인공은 나의 세상은 여기에 있지 않으며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며 거절한다. 마지막 선택은 모든 시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고, 이 영화를 만든 의미로 읽힌다. 인생은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이 단계적으로 오지 않는다. 분명, 힘들고 불안했고 슬픔이 있기에 잠시 온 휴식 같은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버티는 삶은, 또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은 괴롭다. 모든 상황에 단계란 없으며, 점과 같은 판단의 순간들이 모여 만든 길고 얇은 선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떤 상황에 놓이고, 어떤 마음이고, 어떤 판단과 결정을 했는지. 그런 나를 칭찬해 주었는지. 그런 하루가 모인 삶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지.



‘13’의 시작


주인공은 죽지 못해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도는 영혼들의 장소를 통과하는데, 이 모습이 마치 아널드뵈클린의 죽음의 성을 떠올리게 한다. 거대한 돌로 이뤄진 성벽으로 망자를 태운 배가 반복하여 오간다. 마지막 장면의 13번째 돌을 선택하는 장면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볼 만하다. 13일의 금요일은 예수가 죽은 날, 어떤 죽음과 연관된 숫자, 동시에 대조적으로  12라는 지구의 완벽한 수에서 하나가 더해진 신비한 숫자, 또는 불안한 숫자라고 한다. 안정이 없는 죽음의 성을 통과해 우리에게 주어진 13이란 의미, 주인공은 불안하지만 시작의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13번째 돌은 이 영화에서 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죽음의 성>, 아널드뵈클린

죽음과 삶의 경계 있는 13이란 돌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13의 돌을 시작으로 명명하고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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