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그리고 푸른 밤
[1년 후]
지안의 생일인 오늘
혁주는 지안의 부모님을 모시고 그녀의 납골함이 안치된 납골당에 도착한다.
그녀의 납골함 앞에 서 있는 선우와 마주친다.
“어..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네 사람이 함께 납골당을 나와 야외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으로 다가간다.
그러다 혁주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선우 쪽을 바라본다.
“혹시...바다 보러 같이 가실래요?”
“바다요? 갑자기요?”
“그래요. 선생님도 같이 가요.”
그렇게 혁주의 차량엔 지안의 부모님이 타고, 선우의 차량이 그 뒤를 따라 부산 해운대로 향한다.
차량으로 운전해서 가기에는 오래 걸렸지만 중간중간 휴게소도 들려가며 여행하듯 달려서 도착했다.
근처 파라다 호텔의 객실을 미리 예약해 둔 혁주를 따라 일단 지하 주차장에 선우의 차량도 함께 주차한 후, 로비로 올라온 네 사람
“하루 자고 갈 거라서 예약해 뒀는데, 어떻게 하실래요? 같이 있다 가실래요? 객실 두 개 예약하긴 했거든요.
아마 엄마 아빠 방은 킹사이즈 배드 하나 있고, 제 방은 트윈 배드라서...괜찮으시면...“
“음...그러시죠. 근데 내일 아침에 전 일찍 먼저 출발해야 할 거 같아요.”
혁주는 프런트에서 체크인하고 객실 키 두 개를 받아서 세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다.
네 사람은 가장 높은 층인 10층에서 내린다.
지안의 부모님 객실부터 열어드리고는 객실 키를 건넨다.
그리고는 바로 앞 객실 손잡이에 객실 키를 인식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 벽에 있는 키 텍에 꽂자 전체 전기가 들어온다.
가방에서 핸드폰과 지갑만 꺼낸 후, 다시 객실을 나선다.
두 사람은 자인의 부모님을 모시고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바로 나간다.
적당히 그늘진 벤치를 찾아서 앉은 네 사람
“지안이랑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걸...”
“그러게요...근데 사람 진짜 많네요. 모래가 안 보일 지경이네...”
“사람 개 많네, 이랬을 거 같은데요. 해운대가 아니라 이렇게 부모님과 같이 온 걸 좋아했을 거예요.”
“그치...”
혁주의 안내를 따라 지안이 다니던 부산여자중학교에 도착했고, 학교 앞 분식집 사장님이 혁주를 알아보았다.
“오랜만에 왔네?”
“저 기억하세요?”
“그럼~”
사장님은 혁주에게 말없이 무언가를 건넨다.
혁주는 얼떨결에 받아드는데, 사진 3장이었다.
사진을 한 장씩 보던 혁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 장 모두 분식집 사장님이 핸드폰 화면을 카메라 쪽으로 보이게 찍은 사진이었지만, 각각 다른 날짜였다.
사장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사장님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혹시...사장님도...”
“나는 2015년에서 왔고, 지금은 포토 부스 라던데, 나 때는 사진관이었어. 내 딸이 2005년도에 부산여중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었거든...
이렇게 세 번 시도 했는데...실패했어...그땐 사진사 아저씨도 계셨는데 더이상 사진을 안 찍어 준다는 거야...다시 못 돌아와도 좋으니까
다시 돌아가게 해달라고 사정했더니 내가 눈 뜬 곳에서 보이는 시계는 다 부시라더라...그래서 다시 돌아오자마자 보이는 시계 다 부쉈더니
매일 눈 뜰 때마다 난 여기서 눈을 뜨고, 아침마다 내 떡볶이를 먹고 등교하는 우리 딸내미 얼굴을 매일 봐...“
“갇힌 거예요? 그래도...현생을 사셔야죠...”
“우리 딸내미 없는 현생 따위...그래도 지안이는 성공 했나 보네...”
혁주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푹 쉬고는 부산여자중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지안의 미술 선생님 정란을 찾는다.
다행히 아직까지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정란은 여전히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란에게 지안의 부고 소식을 전하자 정란은 눈물을 참으려다 참지 못하고 결국 오열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온 후, 지안의 부모님을 집에 모셔다드리고 나서 인생 컷 스튜디오 앞을 지나간다.
없어진 줄 알았던 스튜디오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으로 들어서자, 포토 부스가 보인다.
괜히 긴장되어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포토 부스 안으로 들어갔고, 코인도 바로 보였다.
“진짜 있다고? 왜? 왜 아직 안 없어진 거지? 지안이 가고 나서 당연히 없어진 줄 알았는데? 왜지?”
혁주는 떨리는 마음으로 코인을 집어 투입구 안에 넣고, 눈을 질끈 감는다.
천천히 눈을 다시 뜨자, 혁주의 눈 앞에 펼쳐진 곳은 지안과 처음 만났던 라온제나 아카데미였다.
넓은 공간에 런웨이를 본떠서 만들어 놓은 무대와 세 벽면 전체에는 거울이 있었다.
그곳에서 워킹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주변을 둘러보던 혁주가 뒤를 돌자, 지안이 있었다.
[초승달 - 김경미]
얇고 긴 입술 하나로
온 밤하늘 다 물고 가는
검은 물고기 한 마리
외뿔 하나에
온몸 다 끌려가는
검은 코뿔소 한 마리
가다가 잠시 멈춰선 검정고양이
입에 불린 생선처럼
파닥이는 은색 나뭇잎 한 장
검정 그물코마다
귀 잡힌 별빛들
나도 당신이라는
깜깜한 세계를
그렇게 다
물어 가고 싶다
[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이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