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됐으니 총 사도 되죠?

엄마는 총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역사를 바꾼 총 AK47』

by 미라지

생전 뭘 사달라고 졸라 본 적 없는 아들이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반 누구는 총 샀대요. 엄마, 나도 비비탄 총 갖고 싶어요. "

다른 장난감은 몰라도 총은 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날까 봐서요. 언젠가 놀이터에서 아이를 놀리고 있는데 5, 6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 서너 명이 비비탄 장총을 들고 우르르 지나간 적이 있어요. 진짜 총도 아닌데 그 모습이 어찌나 위협적이던지, 엄마들이 탄식을 내뱉으며 몸을 내던져 자기 아이 시야를 가리더군요. 일단 저는 시간을 끌기로 했습니다. 비비탄 총의 사용 연령이 만 14세 이상이라는 점을 강조했지요.

"지금은 안 돼. 중학생 되어서, 그때도 총이 갖고 싶으면 사 줄게."


중학생이 된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엄마, 이제 총 사도 되죠?"

"갑자기 무슨 소리니."

저는 제가 했던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만 아이는 잊지 않고 있었나 봅니다.

"안돼.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데. 비비탄 총 갖고 놀다가 총알이 눈에 들어가서 안과 가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대. 실명할 수도 있다고. "

"보호안경 쓰면 돼요.”

실랑이를 벌였지만 아이에게 했던 말을 지키기로 했어요. 단, 집 안에서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난생처음 총 공부

비비탄 총의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하더군요. 정식 명칭은 ‘에어소프트 건’이고요. 작은 권총뿐 아니라 제 팔 길이보다 더 긴 것도 있었습니다. 아이는 이미 총기 모델명을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건 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에 총이 나와서 인터넷에서 찾아봤답니다. 총을 모으거나 도색하는 친구도 있다 합니다. 대체 총의 매력은 뭘까요.


우선 제 눈에 다 똑같아 보이는 총을 구별하고 싶었습니다. 총기 도감 두세 권은 대출 중이었어요. 총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요. 아들 엄마나 '밀리터리 덕후'들이 빌려간 걸까요? 『GUN: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꾼 총기 53선』이 눈에 띄어 펼쳐 들었습니다. 20세기에 등장한 주요 총기를 권총 pistol, 소총 rifle, 기관단총 submachine gun, 자동소총 automatic rifle, 기관총 machine gun으로 나누어 소개한 책입니다. 53가지 중 정말 유명한 몇 가지는 기억해 두기로 했습니다.


무기는 빠르게 진보합니다. 무기의 성능 차이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니 적군의 무기를 베끼고 업그레이드하지요. 그런데 총은 의외로 발전이 빠르지 않다고 합니다. 일정 수준의 성능을 갖추면 개량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M1911이라는 권총은 미국의 콜트사가 1911년 개발한 모델인데 아직도 사용되고 있대요. 지난 100년간 전투기는 클래식한 복엽기에서 외계에서 온 듯 보이는 스텔스기로 바뀌었는데 말이지요.


권총 – 데저트 이글과 글록

권총은 구조상 회전식 권총과 자동권총으로 구별됩니다. 회전식 권총은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리볼버를 말해요. 6발 정도의 탄환이 장전되어 돌아가는 회전식 탄창이 특징입니다. 조작이 간편해 현재 우리나라 일선 경찰들도 사용하고 있지만 장탄량이 적고 재장전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어요. 이를 보완해 19세기 말 손잡이 부분에 탄창이 삽입되는 자동권총이 등장합니다. 총기 구조가 리볼버보다 복잡하지만 빠른 연사가 가능하고 대용량 탄창을 사용할 수도 있어요. 아이 앞에서 아는 척하려면 자동권총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글록과 게임에 등장해 유명해진 데저트 이글 정도는 알아두는게......


글록은 1980년대 권총의 역사를 바꾼 새로운 총이자 최초로 실용화된 플라스틱 재질 권총입니다. 군용 소모품을 생산하던 오스트리아 글록 사는 총을 생산해 본 적이 없었지만 전문가와 민간인의 자문을 얻어 글록을 개발했다고 해요. 부품 상당 부분이 고강도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글록은 장탄량과 성능 면에서도 혁신적이어서 오스트리아 육군의 제식 권총으로 채택되었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권총으로 자리매김해 이제는 액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대요. 무게가 가벼워 휴대가 편리하고 조작이 간편하면서도 뛰어난 안전장치를 갖추었대요. 하지만 성능이 좋다 보니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이나 2011년 노르웨이 테러사건에 사용되는 등 강력 범죄에 악용되기도 했다는군요.


데저트 이글은 군이나 경찰에서는 사용되지 못했지만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얻은 자동권총입니다. 1979년 미국 매그넘 리서치 사에서 개발되었는데 가장 큰 특징은 탄피 길이를 늘려 화약을 많이 넣은 매그넘 탄을 사용하다는 점입니다. 화력은 강력하지만 권총인데도 무게가 2kg에 달했고 구조도 복잡했습니다. 매그넘 탄은 발사할 때 오염물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총에 비해 관리도 어렵고요. 휴대, 관리가 어려우니 군인이나 경찰에게 적합하지 않아 사격을 취미로 하는 민간인에게만 판매되고 있대요. 특히 총기 관리가 필요 없는 컴퓨터 게임에서는 강력한 성능으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guns-34272_640.png 이걸 어떻게 다 구별하냐고요. 출처=픽사베이




기관단총 - 우지

기관단총은 기관총과 작동 원리는 같지만 무게가 더 가볍고 총신이 짧습니. 연속적으로 탄환을 발사하는 완전 자동식 권총이 발전해 기관단총의 모습이 되었다고 해요. 최초의 기관단총이라 불리는 미국의 톰슨 기관단총은 발사속도가 분당 1500 발이었대요. 하지만 초기에는 군납에 실패해 민간에 팔려 나갔고 1920-1930년대 갱들 간 싸움에 사용되기도 했다는군요.


아이는 우지 기관단총을 알고 있었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권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위력의 총이라 하더군요. 1981년 워싱턴 DC에서 존 힝클리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저격했던 총이 독일제 RG-14 리볼버, 경호원들이 옷 속에서 꺼내 든 총은 우지였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 경호에 사용될 만큼 성능이 확실하고 지금도 여러 회사에서 양산 중인 총입니다. 1951년 이스라엘 현역 군인이던 우지엘 갈 소령이 개발했대요. 이스라엘은 창군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기관단총을 수입했는데 곧 체코슬로바키아가 친소련 친아랍 노선을 걸으면서 무기 조달이 어려워지자 독자적으로 총기 개발에 나선 거지요. 저격 사건 전부터 이미 널리 알려져 전 세계에 천만 정 이상 퍼져 나갔는데요, 안타깝게도 숨기기 쉬운 작은 크기와 강력한 화력 때문에 테러리스트나 갱단의 범죄에 자주 이용되고 있다 합니다.


자동소총 – AK47과 M16, K2

냉전시대 공산 진영과 서방 지역을 대표하는 두 총이 소련의 AK47과 미국의 M16입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총이 K2니까, 이 셋이 책에 등장하는 53가지 총 중 가장 유명한 총이 아닐까 합니다. 자동소총은 발사속도 분당 600-800발, 유효사거리 수백 미터로 군인들의 개인 화기로 사용된대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의 군인이었던 칼라시니코프가 개발한 AK47은 기존 소총과 기관단총을 대체하고 성능, 사용, 관리 모든 면에서 탁월한 최고의 총으로 등극한 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은 자신만만하게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베트민군이 사용하는 AK47의 우수한 성능에 당황했다는군요. 크고 무거운 소총을 선호했던 전통을 뒤로하고 미 국방부는 강화 플라스틱과 항공 알루미늄으로 만든 M16을 제식 무기로 채택합니다. M16은 바로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었고 초기형은 몇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여러 차례 진화를 거듭해 AK47와 비견되는 최고의 총이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유사한 자동소총들이 서방 각국에서 개발되었고요. 지금 미군의 주력 소총인 M4카빈도 M16의 파생형이라는군요.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무기 국산화에 착수했는데 처음부터 고성능 장비를 만들기는 어려워 병사를 무장시킬 최소한의 화기인 소총 개발부터 시작했다 합니다. 1974년부터 미국의 M15A1을 라이선스 생산해 소총 제작 기술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했습니다. 최초의 국산 화기 K1은 기관단총이었고, 이어 Ak47과 M16의 장점을 딴 자동소총 K2가 개발되었는데요, K2는 국군의 제식 소총으로 1984년부터 보급되어 지금은 전군에 배치되어 있다 합니다. 한반도 지형과 기후를 고려한 총으로 나이지리아와 페루, 미국 등으로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없어지지 않을 총, 그래도 사라졌으면

도서관 서가 한 칸 가득한 전쟁과 무기사 관련서 중 AK47만을 주제로 한 책이 있더군요. 일본 저널리스트 마쓰모토 진이치의 『역사를 바꾼 총 AK47』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전문기자인 저자는 AK47이 아프리카로 퍼져나가 소년병의 손에 쥐어지고 내전과 테러에 사용되고 있는 현장을 취재, 고발했습니다. 2002년 러시아에서 AK47을 만든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고요. (칼라시니코프는 2013년 사망합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칼라시니코프는 나치의 총에 동료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 나치 독일보다 성능이 우수한 총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총상을 입어 침상에 누워있는 동안 AK47을 설계합니다. 기계를 좋아했던 그는 어린 시절 우연히 만져본 총의 ‘단순함’과 ‘완결성’에 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가 발명한 AK47은 부품이 8개밖에 안 되고 나사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자동소총의 가장 큰 문제였던 탄환 막힘을 해결했고 총기 관리도 매우 쉬워 분해, 청소, 재조립하는데 15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내전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나라들 즉 시에라리온, 소말리아, 콩고, 수단 등에서 소년 소녀 병사들이 탄생한 배경이 바로 AK47이었습니다. 다루기 쉽고 고장이 적어 연습하면 어린아이들도 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 나라의 총은 대부분 AK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무장 집단에서 소년 병사를 쓰는 이유는 아이들은 위협을 하면 말을 잘 듣고 가르쳐 준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래요. 감정을 억누르거나 욕망을 절제하는 훈련이 부족한 아이들은 총을 갖게 되면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총을 쥐면 자신에게 막대한 힘이 있다고 생각해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고 약탈과 폭행을 일삼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시에라리온 내전의 경우 식민지 해방이나 혁명 같은 명분이 없이 그저 싸우다 보니 싸우는 이유를 잊은 내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나건 누가 권력을 잡건 무정부 상태와 다름이 없어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아요. 치안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나라에서 자신을 지켜줄 것은 총뿐입니다. 저자는 “극단적으로 말해 시에라리온이라는 국가는 AK에 의해 붕괴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차나 전투기, 미사일이 아니라 AK만 쓰였기 때문입니다. 냉전 시대 소련에서 들여온 AK는 시에라리온이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민간인들 손으로 모두 넘어가 내전에 사용되었어요. 소말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도 나라 안 갈등의 이유나 무기 유입 경로는 조금씩 다르지만 정부와 치안이 부재하다는 상황은 모두 같았습니다.


유니세프나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무장 단체와 민간인을 대상으로 총기 회수 운동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섣불리 총기를 내어놓지 않습니다. 총기를 반환하면 일정 금액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지만, 치안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을 포기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소말리아 하르게이사라는 도시에서는 총을 볼 수 없는데, 하르게이사가 중심이 된 소말리아 북서부는 1991년 ‘소말릴란드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스스로 5만 정의 총기를 정부에 반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총기를 가졌던 이전의 민병대가 독립과 함께 군과 경찰이 된 거예요. 이 나라는 아직 국제사회에서 공식 정부로 승인받지 못하고 있지만 총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사례입니다.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실패한 나라들에서 언젠가 총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요.


책을 덮고 나니 장난감 총만 봐도 소년 병사들의 사진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아이에게 총과 아프리카 내전 이야기를 해 주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언젠가 책을 건넬 날이 있겠지요. 이제 막 비비탄 총을 갖게 되어 신난 아이에게 역사책을 들이민다고 흥미롭게 읽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더 필요한 것은 총을 즐길 시간이겠지요. 쏴 보고 만지고 분해하고 조립하다 보면 총의 의미와 역사에 관심을 가질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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