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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지 Jan 09. 2021

공부하란 소리 안 하련다

큰 애가 가정통신문을 받아 왔다. 학교 봉사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서 보내신 것이었다. 학생들과 단합대회 차 근처 대학가 고깃집에 다녀올 계획이니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는 내용. 사제동행 고깃집이라, 중학생이 되니 그런 기회가 생기는구나. 나도 중1 때 처음으로 선생님과 학교 밖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담임선생님과 아이들 몇몇이 함께 관악산으로 등산을 갔다. 그때 찍은 사진은 어디 있을까. 아이에게 이야기하며 덧붙였다.

     
"그 선생님은 성적이 떨어지면 각목으로 발바닥을 때리는 분이셨어. 너무하지 않니? 넌 21세기에 학교에 다녀서 다행이야. 요즘엔 체벌 금지잖아."
"그러네요. 지금은 매를 때리지는 않죠. 대신 말로 마음을 때려요."
"그게 무슨 소리야?"
     
요즘 중학교는 꿈과 끼를 키우는 자유 학년제를 시행한다면서, 지필고사도 없는 데다가  원하는 수업 몇 가지를 선택해 듣잖아. 엄마 때와는 다르지 않냐고 물으려다 입을 닫았다. 그건 나의 바람일 뿐일지도. 사실 중학생 학부모로서 참석했던 참관 수업은 나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살벌한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간단히 진도를 나간 후 퀴즈를 내고 답을 아는 아이들에게 손을 들라했다. 발표한 학생을 출석부에 일일이 체크했는데 그 자료는 수행점수의 기준이 될 터였다.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니들은 교실에서 학교생활기록부의 항목과 특목고 지원 기준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여기가 공립중학교 맞는지, 마치 학원에서 주최하는 입시설명회에 온 것 같았다.
     
들어보니 아이의 마음을 때리는 말은 비교와 비하였다. "너흰 잘 모르는 것 같아. 다른 동네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2학년 때 시험 봐서 등수가 나와 봐야 정신 차리지.", "국영수가 중요해. 그중에서도 수학." 이 학교에 유난히 학업에 열의 있는 선생님들이 많으신 걸까?
     
"요즘은 등수 안 매긴다며."
"선생님께 여쭤보면 다 알려 주신대요. 그리고 네이버에서 표준점수 환산? 그런 거 하면 알 수 있대요. 그리고 엄마, 책 많이 읽는다고 지적받았어요."
"뭐라고?"

     
아이가 선생님들께 들었던 말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거였다.
"너희는 우선순위를 모르는구나. 책 많이 읽는다고 공부 잘하는 거 아니야."
몇몇 아이들은 독서를 문제 삼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는지 다른 선생님을 찾아가 정말 그러냐고 여쭤봤다고 한다. 그분은 안타까운 얼굴로 “선생님 말씀이 맞는데, 앞으로는 책 읽을 시간이 없을 테니 지금 읽어두는 게 나을 수도 있다.”라고 하셨단다.
     
쓴웃음이 났다. 사실 난 그 말씀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무기이고 문해력은 기본 소양이지만 다독이 반드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시험에는 알맞은 준비와 문제 푸는 요령이 필요하다. 수업시간에 잘 듣고 프린트를 외우고 문제를 많이 풀어봐야 한다. 시험 기간에 괜히 삼국지나 대하소설 잘못 잡았다가는 망한다.
     
하지만 아무리 선생님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해도, 옳은 말씀이라 해도 속상했다. 아이가 뭐라 말씀드렸어야 했을까? “공부 잘하려고 책 읽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 재밌어서 읽는 거예요.”라고 말했다면 좋았을까? 더 긴 조언이 이어졌을지도, “어머니, 상담이 필요할 것 같아요.” 라며 나에게 전화를 주셨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학창 시절은 자유롭고 편안할 거라 막연히 기대했다. 25년 전에야 중간 기말고사 끝나면 교실 뒷벽에 전교 석차 인쇄된 종이가 붙었고 떨어진 점수만큼 몽둥이로 맞았지만, 설마 이제 안 그러겠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시대라면서. 학벌보다는 적성과 흥미가 중요하다고, 평생 배우는 시대가 될 거라고, 상상할 수 없는 미래가 펼쳐진다고 하니까. 다행히 체벌은 사라졌지만 중학생이 된 아이는 의기소침하다. 초등학교 때는 꿈끼깡꾀만 기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시험에 석차에 교교 입시까지 주변에서 겁을 준다.
     
실은 나도 한몫했을 것이다. 예전에 아이가 물은 적이 있다.
“공부 못하면 어떻게 돼요?”
“공부가 다는 아니지만 공부 잘하면 편해. 대충 갈 길이 정해 지거든. 학교 성적은 성실성의 척도야.”
내 딴에는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려고 심사숙고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며 보였던 태도에서 그 애는 알았을 것이다. 90점을 받았을 때와 30점을 받았을 때 내 표정은 달랐을 테니까.

중학교 성적은 과목 점수가 90점 이상이면 A를 받지만 고등학교 성적은 철저히 상대평가라고 한다. 몇 년 후면 대입을 치르고 언젠가는 취업을 할 텐데 아이 세대도 나처럼 한국의 줄 세우기 식 평가에 익숙해질까. 행여 그럴지언정 기죽거나 마음 다치지 않게 내가 먼저 태세 전환을 해야겠다. 나라도 마음의 방패가 되어 줘야겠다.
“공부 못하면 어떻게 되냐고? 길이 더 넓어져. 네가 하고 싶은 것 하면 돼. 지금까지도 이렇게 잘 컸는데.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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