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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지 Mar 23. 2020

하루만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대학 동기들과 맥주를 마셨다. 일 년에 두세 번은 만나니 꽤 끈끈한 사이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은 이들. 회사, 주식, 정치, 영화... 화제가 떨어지면 옛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어쩌다 친해진 거지?"

"신입생 환영회 때 네가 내 옆에 있었잖아."  

"집 가는 방향이 비슷해서 친해졌지."

"우린 전공이 같아서 자주 만났고."

"너희는 담배 친구였잖아."


나? 내가 담배를 피웠다고? 맞다. 성인이 됐으니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술을 잘 못하니 담배라도 피우고 싶었다. 나는 주변을 신경 쓰는 편이라 상대와 장소를 가렸다. 선배들이 있는 곳이나 길거리에서는 피우지 않았다. 한 손엔 커피, 한 손에 담배를 들고 학교 도서관 앞에 듬성듬성 서 있던 학생들처럼 각성 효과를 얻으려고 피우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배를 피우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팠다. 친한 친구들 몇몇과 모여 있는 가장 편안한 분위기에서만 피웠다. 담배는 비밀스러운 친밀감, 일탈에서 비롯되는 해방감, 그리고 치기였다.


언제부터 안 피웠지? 끊은 기억도 없다. 친구들은 전공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모여 노는 일이 줄었다. 내게 필요한 건 학점과 공인 영어 성적, 인턴 경험이었지 흡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남들에게 '흡연자'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낮춰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땐 그랬다. 곧 수년이 흘렀고 예비 엄마가 될 즈음엔 담배를 혐오하게 되었다. 내 몸 안에 소중한 태아가 있기에 거리를 다닐 땐 반경 20m 내 흡연자가 있나 없나부터 살펴 피해 다녔다. 피부 고운 아이 낳으려고 가물치까지 고아 먹었는데 담배 냄새를 맡으면 헛일이 될 것 같았다.


담배 혐오는 갈수록 심해졌다. 유모차 끌고 가는 길에 담배 냄새가 나면 불쾌했고 세상에서 가장 몰지각한 이들은 길거리 흡연자인 것만 같았다. 가장 싫은 건 집 안에서 맡는 담배 냄새였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부엌 싱크대를 타고 남의 집 담배 연기가 올라왔다. 우리 식구는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내가 내 집에서 남의 담배 냄새를 맡아야 한다니. 화가 났지만 냄비 뚜껑을 개수대 구멍에  덮어 놓는 것 말고는 별도리가 없었다.


이제 나는 담배를 피우려야 피울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사십 초반에 접어들었을 뿐인데 곳곳에서 아픈 이들 소식이 들려온다. 투병 중인 친척, 돌연사했다는 대학 선배, 심장 혈관에 스텐트를 넣었다는 직장 상사 이야기에 겁이 난다. 100세 시대가 오면 뭐하나, 건강하게 늙지 않으면 긴 수명이 무슨 소용. 예전에는 조금 쉰 냄새 나는 밥도 먹고 사과도 우적우적 통째로 먹었지만 상한 음식과 사과씨에 독이 있다는 걸 안 후로는 절대 먹지 않는다. 식품성분표를 꼼꼼히 읽고 싫어하던 채소도 억지로 먹는다. 하물며 담배라니 사절이다.


20년 전에는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담배를 얻어 피웠지만 그런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었다. 흡연의 해악을 따지고 전자담배든 뭐든 다 똑같이 해롭다 생각하는 지금은 어른의 모습인가? 난 겁쟁이가 된 것 같다. 담배 좀 피우는 게 뭐가 어떠냐 했던, 심혈관질환도 암도 먼 나라 얘기 같던 그 시절에는 선배가 내뿜는 도넛 연기만 봐도 까르르 넘어갔고 안주 몇 접시면 밤도 새울 수 있었다. 2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돌아갈 수 없니까. 그래도 "하루만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뭘 할래"라고 누가 묻는다면?  없이 담배를 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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