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답하는 엄마에서 질문하는 사람으로

by 미라지

노답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제 아이는 말문이 늦게 트였습니다. 두 돌이 지나니 "엄마, 딸기 우유." 정도의 대화가 가능했어요. 긴 문장으로 술술 말할 날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지만, 크고 보니 과묵한 아이였습니다. 입을 열면 어찌나 반갑던지요. 학교에 들어가서도 일과를 조잘대기보다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엄마, 내가 마시는 물보다 오줌 양이 더 많아요. 왜 그럴까요?" 같은 질문에 저는 당황하곤 했습니다. 육아서에서 배운 것처럼 "글쎄다, 너는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라고 매번 반문할 수는 없었지요.


저는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에 답을 해 주고 싶어서요. 만약 아이의 질문을 받아주는 학원이 있었다면 보냈을까요?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은 있어도 질문을 받아주는 학원은 없었습니다. 엄마로서 자식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려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저 말고는 답을 해 줄 이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저의 독서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겁니다. 노답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아이 잘 키워 보려고요.


아이에게 답을 할 때 지식뿐만 아니라 제 가치관이 전달될 거라 생각하니 말 한마디에도 신중하고 싶었습니다. 깨끗한 백지상태인 제 아이에게 세상을 아름답거나 추하게 덧칠해 보여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되도록 중립적이고 사실적인 답을 주고 싶었어요. 청소년 권장도서와 인기 교양서를 참고하여 아이가 커서 읽었으면 하는 책을 골랐습니다. 아이 이유식 만들 때 온도와 식감이 괜찮은지 먼저 맛을 보던 마음으로요.


제가 고른 책을 아이도 읽어주었으면 하고 내심 바랐지만, 그 애는 자신만의 책 취향이 있더군요. 저는 아이 학교에서 나눠 준 필독서 목록을 들고 중고 서점을 돌며 책을 사 모았지요. 하지만 아이는 집에 사 둔 책보다는 학교 도서관에서 직접 책을 골라 읽고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책들을 제게 추천하곤 했어요. 그렇게 아이는 저의 책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제 자신의 질문에 답할 겁니다

이제 아이는 제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유튜브를 보거나 위키백과를 읽고, 고급 정보가 많다는 브런치를 찾습니다. 간혹 "유한회사가 뭐예요?", "메탄과 LNG는 어떻게 달라요?" 묻기도 하지만 답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엄마는 만물박사가 아니란 게 벌써 들통났거든요. 그리고 저에게 새로 알게 된 사실을 가르쳐 주곤 합니다.


앞으로는 저를 위해 읽을 겁니다. 모자람을 발견하고 채워 넣는 인생을 살라던 누군가의 조언처럼, 저만의 질문을 발견하고 답을 채우는 독서를 할 겁니다. 역사도 좋고 옳고 그름에 관한 책도 좋습니다. 왜냐고 질문하는 법을 알려준 아이에게, 그리고 엄마로 사는 시간을 견디게 해 준 책들에게 고맙습니다.


제 글을 아이 앞에서 무식해 보이고 싶지 않았던 초보 엄마의 분투기로 보셔도 좋고, 육아가 답답했지만 책 읽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었던 이의 독서 기록으로 보셔도 좋겠습니다. 중고생 자녀 추천도서 목록과 요약이라 생각하셔도 좋지만, 행여 제가 오독한 부분이 있다면 아직 부족한 탓이니 양해를 구합니다. 옆집 아줌마의 책장에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슬쩍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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