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했다고 좋아한 지 정확히 한 달이 되었다. 4년 만에 시간당 알바가 아닌 연봉을 받는 회사에 소속되니 좋았다. 2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와 첫 한 달은 토론토 시댁에서 지냈고, BC주로 돌아와 두 달은 이력서 보내기, 인터뷰 요청 기다리기, 인터뷰 잘하기, 그다음엔 마무리로 취업 합격 소식 기다리기라는 무한 반복 속에서 지냈다.
취업을 바라는 백수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한다. 먼저 이력서 보낼 회사와 직업을 신중하게 살펴본다. 일은 사무실에 출근하는 조건인지 재택인지 확인하고, 어떤 경력을 요구하는지 나의 경력과 잘 맞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연봉조건은 어떤지 본다. 예전 나의 직업처럼 100% 커미션인지, 고정 급여가 있고 플러스로 커미션이 있는 건지 확인한다.
이력서를 수정해서 보낸 후, 인터뷰 하자는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것이 1차 기다림이다. 인터뷰 약속이 잡히면, 인터뷰 준비하고, 실전 인터뷰 잘하고, 인터뷰 후속 이메일 보내고 (보통 시간 내줘서 고마웠다는 땡큐 이메일인데 거기에 좋은 소식 기다리겠다는 한마디를 얹는다), 그다음 무작정 좋은 소식을 기다리면 속 타는 2차 기다림이 시작된다.
두 달 동안 그런 속 타는 1차, 2차 기다림들을 여러 개 거치니 결국 좋은 소식을 얻었다. 그렇게 지난 한 달간 일했던 은행의 일은 100% 재택근무였고 고정월급이 있는 직업이었다. 이전 소득에 비해 많이 적었지만 바로 시작할 수 있고, 생활비만 커버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어쨌든 가장 먼저 일하자고 연락이 온 회사라서 더 잴 것도 없이 시작한 거였다.
집에서 일한다는 장점 중 가장 좋은 건 아주 편안한 옷으로 화장도 (세수도?!) 할 필요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중간중간 냉장고에서 간식을 꺼내 먹기도 편했고, 같이 집에서 일하는 남편과 매일 점심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렇게 2주 차 새내기로 한껏 트레이닝을 받는 중에 다른 은행에서 2차 인터뷰를 컴퓨터 화면이 아닌 사무실에서 보자고 연락이 왔다. 인터뷰는 롤 플레이 (role play 역할극, 나는 은행 투자 상담자 역할, 인터뷰하는 상사 두 명은 손님 역할)로 이뤄질 거라 했다.
사실 난 2차 인터뷰에 가고 싶지 않았다. 왠지 연봉도 비슷할 것 같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 차이점이 있고, 무엇보다 지금 취업해서 다니는 회사보다 훨씬 작은 회사인데 안 옮길 것 같은데 굳이 인터뷰를 하러 가야 하나 싶었다. 남편은 가보라고 했다. 우선 들어보고 그리고 붙고 나서 고민해 보라고 했다.
롤 플레이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얼굴이 그렇게 두꺼운 편이 못된다. 역할극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두 명의 상사들은 두 명의 각각 다른 손님이 되어, 가상의 손님 재정 상황을 간략하게 적은 시나리오 종이를 나에게 건네줬다. 몇 분의 생각할 시간을 준 후, 투자 상담가로서 내가 손님과 어떻게 미팅을 진행하는지 직접 보여달라고 했다.
손에 땀이 났다. 그렇게 두 명과 두 번의 가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인터뷰를 마쳤고, 그들은 나에게 아쉬웠던 점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실전이라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더 하면서 손님과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편인데 이번엔 그런 건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아무래도 잘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에 합격한다면 놀랄 거라고 연락이 안 온다고 해도 그렇게 실망스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며칠 뒤 2차 인터뷰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최종 연봉을 수화기 너머 들었을 땐, 한 달 가까이 트레이닝받던 중인 회사를 두고 고민할 필요도 없는 조건이라 바로 오퍼를 수락하겠다고 확답을 줬다. 안 그래도 새벽 다섯 시 기상에 매우 힘들어하던 차였고, 재택근무의 장점은 이미 사라지고 모든 것을 녹화, 녹음하는 시스템에 회의감을 느끼던 중이었다.
새로 붙은 회사는 일 시작하기 2주 안에 자격증에 합격할 수 있겠냐고 했다. 정식 출근 전에 자격증 등록이 되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다니던 회사는 (물론 조금 더 어려운 자격증이긴 했지만) 5개월의 시간을 주었었다. 그리고 일은 바로 시작하고, 5개월 안에 자격증에 합격하지 못하면 잘린다는 조건이었다.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2주 안에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지난 일주일간 새벽 여섯 시부터 일하고 두시에 끝나면 밤까지 공부하는 나에겐 웬만해선 잘 일어나지 않는 진풍경을 온 가족에게 보여주며 살았다. ‘엄마 중요한 시험 공부해야 하니 너네들이 엄마를 도와줘야 해’라며 조용히 놀라고 하고 놀아달라고 조르면 2주만 참으라고 했다. 또는 아빠한테 가서 부탁하라고 했다.
이미 잡은 물고기를 손에서 놔야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심정이었다. 그래도 재 취업이 잘 돼서 집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생겼는데, 덜컥 사직서를 썼다가 새 직장에 연결이 잘 안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예의상 2주 정도는 그만두는 날짜 전에 사직서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고 난 후, 사직서를 낼 순 없었다. 2주 안에 따서 오라는 자격증에 나름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자격증 시험은 무난히 합격했다. 발등에 불 떨어졌을 때 나오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결과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시험 압박감에 엊그제 수능 본 학생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이제 주말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한다. 이미 인터넷으로 한바탕 오피스 옷들도 쇼핑해 뒀다. 더 일찍 주문하지 못해 당장은 집에 있는 한 두벌로 버텨야 한다.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서재로 내려갔던 지난 한 달간을 뒤로하고 정장을 빼입고 은행으로 출근한다. 이번엔 ‘딱 이거야!’라고 생각하게 되길 바라본다.
*11/30일 시점,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지 2주가 지났다. 정말 감사하게도 직장 동료들이 참 친절하고 분위기도 좋다. 가능한 옵션을 만들어 놓고 고민하라던 남편의 충고를 듣기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2차 인터뷰하러 안 갔으면 어쩔 뻔했나 아찔해진다.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