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토론토 시댁으로 갔다. 나도 곧 갈 건데, 나보다 일주일 먼저 갔다. 나는 재택근무가 가능하지 않고 남편은 토론토 가서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 휴가는 내가 도착한 날부터 일주일만 쓰기로 했다. 사람들은 토론토로 휴가를 떠난다는 사실보다, 남편과 아이들 없이 집에 혼자 일주일간 있다는 사실을 더 부러워했다.
육아를 하다 보면 30분, 한 시간의 자유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육아 동지들은 잘 안다. 그런데 무려 일주일 동안 이라니. 내가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자 둘째가 “엄마 나랑 떨어져 있어서 좋아?”라고 서운한 표정으로 물어볼 정도였다. 솔직하게 “슬프긴 하지만 사실 기대되기도 해”라고 했다. 이런 시간은 처음이라 정말 기대됐다.
우선 남편과 아이들을 공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코스코에 들렀다. 한국 화장품을 판다길래 갔는데, 찾는 화장품을 찾지 못하고 둘째 신학기 책가방과 실내용 운동화만 한 켤레 사고 나왔다. 다만 천천히 빠르게 카트는 끌지 않고, 쇼핑백만 어깨에 두른 채 쇽쇽 간편하고 느긋하게 획 둘러볼 수 있었다.
그다음 집으로 와, 첫 식사로 고등어 김치찜을 만들었다. 남편은 비린내를 싫어하고 아이들은 매운 걸 싫어하니 잘 못 먹는 메뉴였다. 가장밑에 양파를 깔고, 그 위에 저염 자반고등어를 물로 한번 씻어 반으로 잘라 넣고, 마지막으로 연초에 만들어 이젠 쉬어 터진 김치를 듬뿍 넣었다. 물을 자박하게 붓고, 다시마도 두 세장 넣고, 고춧가루와 설탕 조금 간장 조금, 다진 마늘, 생강 작은 거 한 조각을 넣고 끓였다. 온 집안에 맛있게 익어가는 고등어와 김치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 음식을 세끼 정도 먹은 것 같다. 혼자 먹으니 많이 안 만들었는데도 빨리 줄지 않았다. 아침은 토스트, 점심은 냄새 안나는 도시락, 이렇게 먹으니 저녁에 한 끼만 고등어 김치찜을 먹을 수 있었다. 코스코에서 돌아와 혼자 집에 처음 몇 시간 있을 땐 사실 좀 어색했다. 집안에 적막이 어색했고, 급하게 나가느라 가족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도 새삼 어색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다 커서 나가면 이런 고요함이 찾아오는구나 싶었다. 쓸쓸한 기분이 들기 전에 몸을 움직이며 요리를 했고 청소를 싹 했던 것 같다. 일주일간 집안상태가 첫날 청소한 그대로라 그것도 좋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우선 저녁 먹고 강가로 산책을 매일 나가야지 생각했다. 요즘 하도 오래 앉아 있고 걷는 시간은 줄어들어 허리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산책을 하려고 한다. 또 요가를 집에서 매일 해야지 생각했다. 일주일을 돌아보니 산책을 세 번 정도 했고, 요가는 5번 정도 한 것 같다. 우리 집은 ‘요가 소년’의 요가 채널을 좋아한다. 남편 같았으면 시간표를 만들어서 체크 마크 쳐가면서 할 일을 해 나갔을 텐데 난 기분 내 키데로 했다. 앞으로 자격증 시험이 줄줄이 있어 공부도 해야 하는데 공부는 많이 하지 못했다. 아직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은 느낌이다. 우선 휴가 좀 다녀와서 다시 수험생 모드를 장착해 보려 한다.
일주일간 혼자 지내면서 어떤 점이 가장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잠’ 일 것 같다. 아이들 과의 저녁 시간은 아침 출근시간 못지않게 분주하다. 잠들기 전 책도 읽어줘야 하고, 양치질도 시켜야 하고, 밖에 났다가 늦게 들어온 날엔 잠들 시간에 샤워도 시켜야 하니 전쟁터가 따로 없어진다.
잠들기 전 전쟁시간도 없고, 새벽에 나를 깨우는 사람도 없다. 예전엔 잘 안 깨고 자던 둘째가 요즘 새벽에 꼭 한 번씩 자기 방으로 나를 부른다. 화장실 가야 한다면서 부른다. 아이 손을 잡고 화장실까지 같이 걸어간 후, 다시 방에 눕히고, 자기 옆을 다시 지키고 있으라는 아이한테 매번 “엄마도 화장실 가야 해”라고 말하고 화장실 갔다가 조용히 내 자리에 눕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보통 그럼 아이도 나를 다시 찾지 않고 다시 잠에 들지만, 잠에 다시 혼자 들지 못할 땐 또 부르기도 한다. 그럼 새벽에 깨어 있는 시간이 어쩔 수 없이 길어지게 된다.
첫째는 나를 부르지는 않지만, 화장실을 우리 방에 와서 쓸 때가 많다. 그럼 또 나는 자다가 깬다. 조용히 나가는 아이에게 “잘 자”라고 말하고 다시 잠들려면 쉽지 않다. 분리 수면은 해야겠고, 아직 아이들은 어리다. 그래서 나는 11년째 통잠을 잘 못자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은 거의 매일 통잠을 잤던 것 같다.
내년에도 일주일 먼저 남편과 아이들을 시댁에 보내면 어머님이 싫어하실까? 하하하 이번에 해보니 매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