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피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새로운 직장은 취업한 지 일 년이 되어감에 따라, 많은 일들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도 늘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방과 후 예체능 학원을 한 명당 두 개씩 다니고 있어 화, 수, 목, 금, 토 운전기사 노릇도 해야 한다. 이렇게 나만 운동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간 혼자만 훅 늙을 것 같아, 아무것도 없는 월요일 저녁엔 요가 수업을 다닌 지 두 달째 되었다.
회사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의 능력치가 올라갔듯이, 개인사에서도 처리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집 주인의로서 관리하는 세입자 수는 줄었지만 그렇다고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의 가짓수가 줄어든 건 아니다. 각종 전기세, 가스, 물세, 재산세, 등을 매달 챙겨야 하고, 월세를 늦게 보내는 세입자가 없는지 매월 1일은 통장에 돈이 들어왔나 안 왔나 신경 써야 하고, 집 고치는 각종 전문가들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어, 필요할 땐 바로 전문가를 보내야 하기도 한다.
세입자 관리 외에도 개인적인 투자 어카운트들도 챙겨야 하는데 액수가 커짐에 따라 하루하루 시장에 따라 변동되는 금액도 달라지니, 이쯤에서 팔아야 할 종목은 없는지 또는 이쯤에서 새로 더 사야 하는 종목은 없는지 한 번씩 결정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은 친구들과 플레이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하니, 엄마들 연락처를 잘 저장해 뒀다가 간간히 문자를 날려야 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가 00 이와 놀고 싶어 하는데, 언제 시간 되세요?”라고 말이다.
요즘은 하나밖에 없는 12살 어린 남동생의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다. 캐나다에 사는 큰 누나로서 엄마와 무뚝뚝한 남동생 사이에서 사다리 역할도 하고 있다. 나의 주된 역할은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남동생에게 연락이 자주 없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절대로 잔소리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는 데 있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커피 한잔 내려마시고, 온 가족의 도시락 4개를 매일 싸는 일도 중요한 일과이다. 아이들은 도시락 외에 간식도 챙겨 보내야 하는데 친구들 간식에 비해 내가 싸주는 사과는 빈약하다고 불만이다. 과자 사탕은 너무 달아서 안 사게 된다.
학교에서 매주 이메일도 보내오는데, 언제 소풍을 간다던지, 소풍 가는 걸 허락한다는 종이에 서명을 해서 보내줘야지만 참여할 수 있다던지, 어떤 날은 핫 런치라고 식당에서 단체로 점심을 주문하기도 하는데, 미리미리 신청해서 돈을 내지 않으면 우리 아이만 특별한 점심에서 소외되는 서운함을 겪을 수도 있다. 또는 우리 아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간 책을 어느 날까지 반납해야 한다는 이메일을 받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돌아가는데, 잠시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미끄럼틀 아래로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내가 좀 전에 어디 있었더라’라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다시 체크하면서 올라오고 싶지 않으면, 지금 있는 곳에서 내가 무얼 하던 중이었는지 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그나마 밀리고 있는 게 있다면 집안일인 것 같다. 청소는 어쩔 수 없이 순위에서 최하위에 있다.
차분히 앉아서 민화도 그리고 싶고, 책도 맘 놓고 읽고 싶고, 글도 더 쓰고 싶다고.. 생각만 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