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시작부터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2월이 되어서야 첫 글을 올린다.
앞으로는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지난번 처음 다도레에서 차에 대해 배웠던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려고 한다.
사실 주말 아침은 직장인에게는 매우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특히 나는 회사가 집에서 멀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아침 6시에 기상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밤에 늦게 자는 게 아닌데도 아침에 매일 졸린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하는지라, 주말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게 (그렇다고 해서 거의 9시를 넘어서진 않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렇게 한 달 동안 매주 일요일 아침 10시까지 다도레에 가서 차를 마시고 차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는 건 내가 소중한 걸 포기할 만큼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게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는 사무실에 있으면 내 자리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이렇게 차를 마시면서 빛을 받으면서 비타민D를 보충했다.
나는 다도레 공간이 주는 이런 따듯함, 고즈넉함이 마음에 들었다.
산화차는 부분 산화차와 완전 산화차로 나뉠 수 있는데,
백차와 청차가 부분 산화차, 그리고 흔히 우리가 아는 홍차가 완전 산화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백차와 청차는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차라 듣기에는 좀 낯설었지만, 한번 마셔보니 나는 개인적으로 접근하기 쉽고 나름 대중적인 차라고 느껴졌다.
아래 사진은 백차의 사진이다.
살면서 백차는 처음 마셔보는 것 같아 찍어놓았다.
얼핏 보면 녹차 같은데 녹차보다는 조금 노란빛을 띠는 게 특징이다.
내가 느낀 백차의 맛은 약간 좀 더 달콤한 녹차 같았다.
내가 마셔본 백차는 백호은침과 백모단이라는 차였는데,
백호은침은 약간 청포도 같은 깔끔한 맛이 강한 편이었고
백모단은 좀 더 바닐라향이 나는 것처럼 더 따듯한 맛이었다.
운남성에서 나는 차를 보이차라고 부르듯이, 백차는 중국 복건성에서 난다고 한다.
우리가 정말 모르는 차들이 많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청차의 대표적인 것은 우롱차다.
나는 대만에서 반년 동안 교환학생을 하면서 밀크티를 거의 하루에 한 잔은 마셨다.
그리고 우롱티를 베이스로 한 밀크티가 많긴 때문에 우롱티는 나에게 있어 향수를 자극하는 차이기도 하고 익숙한 차이기도 하다.
우롱은 제다하는 과정에 '유념'이라는 과정이 들어간다. 이는 찻잎을 비비면서 아로마향을 극대화하는 건데, '가향(인위적으로 향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연적으로도 향을 낼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이 날 중국의 무위산이라는 지역에서 나오는 '대홍포'라는 차와 대만의 '동방미인'이라는 청차를 시음했다.
대홍포는 무위산의 떼루아를 정말 잘 살려낸 차라고 하는데, 여기서 '떼루아'란 지리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바닷가 근처의 지역에 있는 해산물이 맛있듯이, 무위산만이 갖고 있는 특징을 담은 차라 미네랄향이 풍부하게 났다.
동방미인은 영국 왕실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선보이는 차인데, 여왕이 이 차를 'Beauty of Asia'라고 할 만큼 극찬했다고 한다.
역시 뭐든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동방미인은 정말 영국인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정도로, 사실 약간 인위적인 (뭔가 화장품스러운 맛도 난다) 맛이긴 하다.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나 또한 이 차는 밀크티로만 마셔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완전 산화차에 해당하는 홍차는 익숙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나는 그동안 홍차는 영구의 breakfast tea 정도만 먹었었기 때문에 새로운 홍차를 마셔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세계 3대 홍차는, 인도의 다즐링, 스리랑카의 우바, 그리고 중국의 기문홍차가 있다고 한다.
다즐링은 차의 샴페인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그 향미가 대단한데, 나는 이 날 한국의 홍차와 중국의 유명한 정산소종이라는 차를 대신 마셨다.
홍차는 모든 차 종류 중에 기가 가장 세다고 한다. 카페인도 제일 함량이 높고,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오후에 홍차를 마시면서 정신을 차리는(?) 용도로 마셔서 afternoon tea문화가 발달해졌다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중국 3개 홍자 (기문, 전홍, 정산소종) 중에 정산소종을 맛보았는데, 차를 만들 때 옆에서 미송(소나무) 땔감을 태우면서 자연적으로 스모키한 향이 입혔다고 한다.
그래서 차에서 은은하게 소나무 훈연향이 난다, 신기하다.
마지막날에 배운 흑차는 발효차이다.
찻잎이 본연이 갖고 있는 독성이 없어지고 더 부드러워진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건 보이차인데, 보이차를 마시기 전에 한국의 흑자 몇 종류를 맛볼 수 있었다.
띄움차와 자아청다(경발효숙차)를 맛보았는데, 띄움차는 고소한 누룩향이 났고 자아청다는 스님이 만드신 차라고 하는데 설명하긴 어렵지만 매우 깊은 맛이 났다.
보이차는 보이생차와 보이숙차로 나뉘고, 보이생차는 찻잎을 위조하고 살청하고 나서 내추럴한 상태에서 오랜 시간 묵힌 것이고, 보이숙차는 인위적인 발효라고 할 수 있는 악퇴라는 과정이 들어간 차라고 한다.
보이생차는 약간 입 안이 아린 맛이 날 때도 있는데, 숙차는 매우 매우 부드럽다.
보이차는 우리가 알다시피 시간이 지나서 에이징이 올라갈수록 그 가치가 더해진다.
또 고수차라고 해서, 100년 이상이 된 나무에서 딴 잎으로 만든 차가 맛있다고 하는데, 고수차는 일반 차에 비해 가격대가 몇 배 이사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이 너무나 매력적이기도 하면서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서, 역시 인간은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차는 실크로드를 통해 처음 탄생하게 됐다는 가설이 있다.
사람들이 실크로드를 다니면서 차가 발효를 해버렸는데 의외로 그 맛이 너무 일품이어서 나중에는 오히려 일부러 고온에 숙성을 시키고 먹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보이차는 처음 접했을 때 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녹차라는 맛은 익숙한데 보이차는 생소했던 것일까.
근데 최근에 또 보이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마시면 마실수록 맛있게 느껴진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온몸이 후끈해지는 게 느껴져서 겨울에 마시기 너무 딱이다.
보이차를 마시고 나서 광서성의 차인 육보와 호남성으 복전이라는 차까지 마셔봤다.
뭔가 지하실 냄새가 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나도 뭔가 익숙하지 않은 차들이라 어렵다고 느껴지긴 했다.
이렇게 4주간의 차에 대한 배움을 하면서 느낀 게 정말 많았다.
일단 나는 음료로서의 '차'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리고 나중에 나이가 들면 점점 차가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커피가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맛보면서 취향을 찾아가는 거지 뭐.
그런데 차에 대해 배우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꽉 막혀있는 사람이 아니라 되게 열려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누가 보면 주관이 없고 우유부단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알고 보니 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상황에 따라서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나라는 사람을 회사 하는 환경에 던졌을 때, 내가 어찌어찌 잘 적응한 것도 이 때문 아닐까?
그래서 내가 요즘 회사생활에서 만족을 못 느끼는 이유는, 나는 여러 가지 색을 입고 싶은 컬러풀한 사람인데, 회사는 회사가 지정한 특정한 색만 입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 답답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회사에는 다 그러한 비슷비슷한 색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나는 그에 비해 색이 짙지 않아서 잘 못 어우러지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좀 더 이런 나의 장점과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차에는 정답이 없다.
'이런 차가 좋은 차야'라고 하는 것 또한 사람이 씌운 프레임이고, 심지어 같은 찻잎이어도 이렇게 나라별로 지역별로 다 맛이 다른데, 하물며 사람별로 봤을 때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는가.
그리고 보이차 같은 경우에는 같은 찻잎인데 시간이 얼마큼 흘렀냐에 따라 그 깊이와 맛이 다르다.
나는 이러한 부분에서 차는 어찌 보면 사람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나이 때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 있고,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얻게 되는 삶의 지혜가 있고 여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게 고민과 생각이 많은 것도, 지금 내가 이 나이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고, 살아가려고 한다.